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마 Jul 09. 2023

감정 정리와 문학에 대하여

따뜻한 몸과 감정을 가진 독자들에게

  문학은 삶에 도움이 된다. 가끔 감정이 본인보다 커지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도움이 된다. 외로움, 분노, 혼란과 같은 한 단어로 설명 가능한 감정뿐 아니라 ‘이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 ‘남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충동’, ‘내가 속한 도시에서 나 같은 사람들을 찾고 싶은 마음’ 같은 정체 모를 연결감까지 다룰 수 있는 지도이다. 이 지도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무도 우리에게 직접 이야기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 문학이라는 지도와 감정적으로 엮여 있다.


  문학을 읽는 방법은 제각기이다. 단숨에 읽으며 그 안에 감정을 두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고, 인물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사람들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내가 이런 인물을 찾았는데 아주 매력적이니 너도 한번 만나 보라고. 이 인물을 만나고 기분이 더 나아졌다고.

  나는 문학 책을 이루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처음 보는 깊이의 감정, 언젠가는 이해하고 싶은 대사, 아름답고 정확한 묘사, 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말들을 찾는다. 밑줄을 그으면 문장이 내 것이 되는 것 같다. 나를 설명하는 말, 나 대신 설명하는 문장들을 클립보드에 저장해 언젠가 꺼내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무기가 되거나 나를 들여다보는 실마리가 될 수 있도록 모아 둔다. 가끔은 감정을 한 마디도 표현하지 않지만 감정을 전하는 문장들도 있다.

뭐든 잊히는 법이 없다. 잊히지 않고 이 세상의 지상이나 지하 어딘가에 쌓인다. 게다가 멈추는 법도 없으며, 그것이 문제다. 먼지 쌓인 폐허에서 일어나는 황금빛 바람처럼 자꾸만 밀려온다.

/ 올리비아 랭의  <<강으로>>에 나오는 문장이다. 발 밑에는 시간이 쌓여 있으며, 우리는 사건과 역사에서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 그 사실은 안정과 연결감을 줄 수도 있고,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답답함을 느끼게도 할 수 있다.


  밑줄을 긋고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인물들을 사랑하게 된다. 나와 같은 말을 하는 인물들을. 교집합으로 만나 차집합으로 눈을 돌려 결국은 내 안의 인물을, 인물 안의 나를 들여다보고 합집합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문학을 통해 인물의 마음에 들어가보았으므로 나는 지금까지 내가 사랑한 인물들의 합이다. 나는 <악어 노트>의 라즈이고, <등대로>의 릴리 브리스코이고, 스기마쓰 성서의 단서를 추적하는 주인공이다.


  그래서 인물들과 함께하는 나는 읽을수록 강해지고, 나를 둘러싼 감정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된다. 나를 향한 말이 아니지만 위로가 되는 말, 등장인물의 입을 거쳐 선명해지고 증폭되는 감정들, 전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내미는 경험을 통해 나는 문학과 함께 존재한다.


  감정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이 문학 읽기를 더 즐기는지는 모르겠지만, 문학이 감정적으로 예민한 사람에게 보조 바퀴를 하나 더 달아줌은 분명하다. 이야기를 읽고 치유되거나 이해받거나 공감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문학을 도구로 이용해 보기를 추천한다. 스쳐지나가는 작품을 잡아보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먹는 영혼의 음식처럼 감정별로 도움이 될 만한 작품을 찾아두자. 미숙함에 관대해지고 싶을 때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을, 아무도 용서하고 싶지 않을 때 정보라의 <저주토끼>를 읽는 것처럼.

작가의 이전글 독자가 브런치에 글을 써도 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