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혼자 살 수 없다

물론 따로 또 같이 사는 것은 쉽지 않다

by 센짱
재밌을 것 같은데 나는 같이 사는 건 좀... 힘들 것 같아.


나는 친구들과 따로 또 같이 살고 있다. 여럿이 같이 산다고 하면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상황만 되면 당장 들어오고 싶다 한다. 반대로 신기하다는 눈빛과 목소리로 자신은 절대로 그렇게 살 수 없다는 사람들도 많다. 같이 살고 있지만, 후자의 입장을 너무나도 이해하고 공감한다. 다른 존재들과 같이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니까.


인생 최초의 공동 주거 생활, 그러니까 가족과 사는 집에서 공동주거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이 시작된다. 분명 유전자를 공유하고 가장 가까워야 하는 사람들인데도 어찌나 각자 다른 규범을 가지고 사는지! 놀랍지 않은가. 오랜 세월이 무색하게도 각각의 규범들은 절대로 융화되는 법이 없다. 그래서 갈등은 꼭 같은 레퍼토리로 반복된다. 데자뷔 같기도 하고, 도돌이표 같기도 하다. '이 놈의 집구석'이란 표현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인생 최초의 공동 주거 경험은 독립에 대한 열망을 인큐베이팅한다.


가족과의 집을 떠나면 많은 경우 경제적인 이유로 기숙사 또는 친구와의 자취 생활을 같이 한다.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의 같이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많은 이들이 결심하게 되는 것 같다. '절대로, 절대로 같이 안 살아.' 가족보다 더 한 존재가 있다는 걸 경험하고 쇼크를 먹는다. 차원이 다른 존재 방식을 부닥쳤을 때 우린 쇼크 아닌 쇼크를 받기도 한다. "도대체 왜...? 이걸 이렇게...?" 그렇게 가능한 한 혼자 살면서 마음껏 자신만의 리듬에 따라 사는 자유로움을 잃지 않기로 결심한다. 마음의 평화가 우선이다. 우리가 누군가에 콩깍지가 씌어 결혼생활을 하기 전까지. 파트너와의 결혼생활도 결국 다른 존재와의 공동 주거이고, 허니문 시즌이 지나면서 거슬리던 것들이 이제 쌓이다가 결국 내 입을 통해 뛰쳐나온다. "야, 양말 여기다가 벗어놓지 말라고 했잖아!!!!"


친구들과 함께 따로 또 같이 살고 있는 우리 집, Seoul Nooks도 물론 이런 굴곡을 겪었다. 다양한 국적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기 때문에 다양성 만큼의 중재나 이해가 더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청소에 있어서 누군가가 더 나서서 하는게 길어져 지치기도 했고, 코로나로 모두가 재택을 하게 되면서 키보드 소음에 대한 각자 다른 예민도와 취향이 만나 싸움이 나기도 했다. 쓰고 난 칼을 쓴 자리에 그대로 방치하는 친구가 있었고, 이를 보고 누군가는 또 많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 놈의 집구석을 내가 나가던지 해야지"하고 지친 친구가 홧김에 이 말을 내뱉었다. 이 커뮤니티를 시작하고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으로선 속상한 말이었다. 한편 함께 살아가고 있는 1인이기도 하기 때문에 무한 공감했다.


갈등을 통해 우리 커뮤니티는 진화해왔다. 타운홀을 통해 2주에 한번 전문적인 청소 서비스를 받기로 결정했고, 주중 시간 공용 타운홀을 코워킹 공간으로 간주, 기계식 키보드는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 자리에 오래 방치된 칼을 보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호소하였고, 칼은 제자리를 찾아 가기 시작했다. 타운홀을 바쁘다는 핑계로 더 이상 미루지 않고 2주에 한 번씩 정기화하기로 했다. 사람은 고쳐쓰기 어려우니, 애초에 협력적인 하우스메이트만 들이기 위해 입주신청과 결정 과정에 정성을 쏟고 있다. 그 결과 지금은 작년에 비해서 정말 평화로워졌다.

최근에 들어온 한 친구는 과거 공동주거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 때문에 서울눅스에 들어올 때도 걱정이 없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우려가 무색하게도 이곳에서 평화롭고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감동과 뿌듯함, 그리고 자랑스러움이 동시에 들었다. 결코 평화롭지 못했던 순간들을 헤쳐나오며 이룩한 평화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가 불만을 가지게 되는 것들이 발견되거나 생길 수도 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한 갈등은 늘 필연적으로 잠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양성이 가져다주는 즐거움과 성장의 가능성과 함께 오는 갈등의 가능성을 파도 삼아 잘 서핑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핑을 계속 탈 수 있을까? 이 서핑은 분명히 에너지가 많이 든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그냥 혼자 편하게 살라는 부모님의 말에 그만 이 파도타기를 그만두고 편하게 해변 앞에 선탠이나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한편 내가 혼자 산다면 아쉬울 것들을 나란히 떠올려보았다. 애초에 나는 왜 언제부터 이렇게 같이 살기 시작했더라. 나는 왜 그렇게 같이 살려고 했던가. 그리고 그 기억을 한참 더듬다가 결론을 내렸다.

나는 혼자 살지 않겠다.
아니, 살 수 없다.


현재보다 규모에서 줄일 수는 있겠지만, 여전히 따로 또 같이 사는 삶을 선택하겠다고, 혼자 사는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도대체 왜??" 이때까지 열거한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같이 살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왔기 때문이다. 더 낫다는 것은 어떤 모습이며, 같이 사는 것이 어떻게 그런 모습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앞으로의 글에서 찬찬히 공유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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