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코리빙 <서울눅스> 밥상의 풍경 두번째
다섯이 같이 산다고 해서 다섯 명 모두가 같은 함께 하는 밥상의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조립식 가족인 우리는 ‘진짜 가족’과는 달리 함께 하는 식사를 기본으로 전제하거나 기대하지 않는다. 누구도 서로의 식사에 책임이 없다. 오늘 집에서 밥을 먹는지, 회사에서 먹고 오는지 등을 확인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혼자 먹게 되었다고 서운해하거나 반대로 미안해하지 않는다. 이게 더 낫다는 건 아니고 그냥 그런 차이가 있다는 소리다.
조립식 가족의 집에서는 제각각 돌아가던 서로의 시계가 맞아 들었을 때 함께 하는 밥상이 펼쳐진다. ‘열려라 참깨!’하면 문이 열리는 것처럼. 11시 반에 식사 준비를 시작해서 12시 반에 식사를 마치는 사람과 1시에 식사 준비를 시작하여 2시에 식사가 끝나는 사람은 만나기 어렵다. 거기다가 주중에 사무실로 출근하거나 저녁이나 주말엔 다른 약속이 많은 이들은 밥상을 함께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특히나 야근을 밥 먹듯이 하다 보면 식사는커녕 며칠 동안 얼굴을 못 보기도 했다. 잠만 잘 거면 집은 왜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
그래서 사무실로 출근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나는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주중에 밀린 잠을 주말에 몰아 자듯, 사무실의 유령이 되어 누리지 못한 집에서의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기꺼이 도비가 된다. 코로나나 수입 변화 등의 외부 요인 등으로 인해 식사 또한 집에서 그리고 해서 먹는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차 많아지던 시기에 주방에서 가장 자주 마주친 것은 임예였다. 방도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우리는 친한 여자 친구들끼리 월경 시기가 같아지듯 주방에 출몰하는 시간마저 12시로 싱크 됐다.
오랫동안 팀워크를 다져온 끼니 협동조합처럼 움직였다. 어떨 때는 이미 각자 가지고 있는 것을 꺼내 간단히 데우기만 해서 합을 맞추기도 하고, 어떨 때는 각자 가진 재료들을 퍼즐 맞추듯이 해서 요리할 메뉴를 결정하기도 한다. 하나씩 맡아 볶거나 다듬기도 하고, 조리와 정리를 나누어서 맡기도 한다. 시원한 국에 일가견이 있는 나는 종종 국을 만들었다. 임예는 맛있는 반찬과 후식을 나눴다. 백반집이 부럽지 않은 한상차림이었다.
“야, 우리 진~짜 잘 먹고 잘 산다. ”
'진짜'라는 단어에는 늘 강세가 들어갔다. 지이인짜가 되기도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가득 담겨 기쁘다못해 화가 난 것 같은 진짜가 되기도 했다. 거기엔 아직 미생의 삶을 사는 우리가 챙겨먹는 밥상이 우리의 삶에 비해 비현실적이라 그런 것도 있었다. 각자도생했으면 단출했을 밥상이 호화로워졌다. 우리의 현실과 밥상은 인지부조화를 일으킬만 했다. 그렇지만 현실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밥상은 현실이 아닌가.
밥을 먹으면서 우리가 쉬지 않고 나누는 이야기도 한상차림이었다. 계급 문제, 페미니즘, 열등감 등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는 오고 갔다. 풍성한 그 식탁 위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치고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랬다. 미생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식탁 앞에서 만큼은 온전히 살고 있었다.
“와, 이거 진짜 맛있다! 미쳤다! 요리까지 잘하면 어떡해? ” 리액션이 생생한 임예는 내가 한 요리 위로 이렇게 칭찬을 아끼지 않고 토핑 했다. 진심 100프로의 무농약 칭찬에 내 효능감도 잠깐 한 단계 부풀어 오른다. 세상의 변화에 도움이 되고 싶었던 어릴 적 꿈과는 달리 스스로를 돕는 것조차 버거운 때 내 요리가 가까운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그것에 대해 인정을 받는 기쁨은 소소하지만 하찮지 않다. 밥알과 함께 삼킨 그런 대화의 기억은 내가 지하로 땅굴을 파고 내려갈 때 미끄럼틀을 타지 않도록 저지선의 역할을 한다.
식사가 끝나고 나면 임예가 식기들을 헹궈 식기세척기로 옮겨 넣었고, 나는 사용한 테이블들을 전부 닦고 싱크대의 거름망을 비웠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 눈 깜빡할 새도 없이 정리는 끝났다. 정리하는 과정에서도 수다는 이어지기 때문에 그 마저도 노동보다는 놀이로 승화하게 된다. 식사를 준비하고 정리하기까지 우리의 손발은 착착 맞았다. 버터처럼 스무스했다(smooth like butter!). 아, 참고로 우리는 아미다. 밥 먹고 나서 BTS 영상을 틀어놓고 한 곡에 맞춰 노래와 춤을 춰야 그제야 우리의 밥상 리츄얼은 끝이다.
“오후도 힘내!” 그러고 서로를 응원하고 각자의 전쟁터로 돌아간다. 또 다음의 리츄얼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