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 카레에서 졸업하겠습니다

따로 또 같이 먹으면 일어나는 일들

by 센짱

어찌 보면 이렇게 큰 집에서 큰 가정을 이루고 살게 된 건 손이 커서 인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유난히 손이 컸다. 2인분을 목표로 하면 4인분이 나왔고, 4인분을 만들려고 하면 7인분 정도가 되었다. 홈파티 같은 걸 하면 매번 음식이 남아서 난처해하면서도 준비할 때면 부족할까 봐 조마조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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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면 큰일 날뻔... 대형 야끼우동 / 대형 비빔면 / 대형 떡국

그런 인간이 밥을 1인분씩 해 먹는 게 어찌나 귀찮고 허탈한 일이겠는가! 혼자서 밥을 해 먹는 것은 비효율 그 자체다. 밥을 해서 치우는 영겁의 시간에 비해 밥을 먹는 시간은 찰나같이 느껴진다. 돌아서자마자 또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시간의 미스터리는 주부뿐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봐야 하는 1인 가구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식사 준비 시간과 실제 식사 시간, 이 두 시간의 대차대조표는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법이고, 1인 가구의 식단은 자연스럽게 카레를 중심으로 진화한다.


아, 카레는 1인 가구의 영혼의 동반자 그리고 구원자! 많이 하면 6번까지 먹을 분량이 나오고, 다른 반찬이 필요치 않다. 심지어 건강하기까지! 한 냄비 가득 만들어서 냉장고에 비축해놓으면 그러게 든든할 수가 없다. 질리지도 않는… 줄 알았지만 그렇진 않았다. 안타깝게도 결국 질려버리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인생 섭취 카레 섭취 총량 임계치에 도달한 느낌이랄까. 듣는 카레는 섭섭하겠지만 이제 작별을 고할 때가 된 것이다.


‘ 덕분에 자취를 시작했던 17살부터 30대 초반까지 잘 생존할 수 있었다. 인체의 70퍼센트가 물이라고 하는데 나는 어쩌면 너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너고 너는 나다. 고마웠다. 하지만 이제 가끔씩만 보자. 미안하다. ’


먹는 빈도는 줄었지만 아예 끊을 수 없는 것이 카레다. 여전히 카레를 이따금씩 하고, 한번 하면 정말 많이 한다. 소량으로 카레를 만들면 괜히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카레의 본질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효율성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제는 여럿이 살기 때문에 대량으로 해놓은 카레를 일주일 내내 먹지 않아도 된다. “카레 많이 했는데 먹을래?” 바로 주방에서 마주친 친구를 초대하기도, 카톡방에 올려서 먹고 싶은 사람 알아서 편하게 먹으라고 한다. 그렇게 나눔 받은 친구가 다음에 다른 음식을 나누는 아름다운 순환이 이루어지면 금상첨화. 가끔 어떤 친구는 다른 종류의 카레로 보답하기도 한다. “네가 해준 카레 방식이 건강하기도 하고 맛도 있더라고! 나도 이번에 많이 만들었으니 편하게 먹어! 아 나는 시금치도 넣고 호박도 넣었어! ” (아… 의도한 바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땡큐… )

카레에카레로.jpeg 카레 한번 만들어줬더니 그 이후 주야장천 카레 만들어 먹었던 죠지....

카레처럼 1인분만 하기엔 아쉬운데 그렇다고 그 이상 만들어서 쟁여놓고 또 먹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파스타나 볶음밥이 대표적이다. (기름을 많이 쓰거나 조리도구를 많이 써서) 은근히 설거지가 번거로운데 그렇다고 저장해놓고 먹을 정도로 소중한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맛도 떨어진다. 1인분 할까 2인분 할까 고민할 때 마침 다른 하우스메이트가 주방에 들어오면 이건 같이 먹으라는 계시(?)쯤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뭐 먹을 거야?”

“어 글쎄, 지금 고민하는 중!”

“그럼 내가 김치볶음밥 만들건데 같이 먹을래? 먹을 거면 내가 2인분 만들게”

“아이구 당연히 좋지!”


평소에 개량한복을 입고 다니며 한국어가 나보다 더 유창한 티보는 마치 전생에 한국인이었던 마냥 당연하게도 한국요리를 했고, 그것도 아주 능숙하게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예쁜 계란 프라이까지 얹힌 김치볶음밥은 맛있고 또 놀랍게도 매웠다. 그렇게 편하게 한 끼 해결했으니 뒷정리는 당연히 내가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기쁘게 대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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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 포인트 : 김치볶음밥 색깔 & 완벽한 참깨 고명까지


티보가 지내던 때로부터 1년 후에 합류한 트래비스 역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의 입맛을 가지고 있었다. 얘도 전생에 한국인이었나? 아니면 사실 한국인인데 미국인인 척하고 있는 거 아닐까? 이런 의심이 합리적으로 느껴질 만큼 일어나자마자 아침식사로 김치를 한가득 꺼내 먹었다. 나도, 시골에 계신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안 먹는데… 어느 점심 그가 주방에서 요리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나 역시 주방에 들어갔고, 그 역시 물었다.


“파전 먹을래?”

“파전?????? 점심에????? 그래 ㅋㅋ 좋지. 나 냉동 해물 있는 게 그거 쓸래?”

“좋아 좋아.”


평일 점심시간에 파전이라니. 식당에서 반찬으로 나오는 파전이 아니라, 홈메이드 파전이라니. 점심이지만 파전을 먹는 데 그냥 먹을 수 없어서 냉장고에 있던 막걸리를 꺼내 조금 곁들여 마시니 기가 막혔다. 무엇보다 손에 기름 묻히지 않고 먹으니 더 맛있었다. 거기다가 냉동칸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냉동 해물을 털어내 저장 공간도 확보할 수 있었으니 일석이조였다. 트래비스 쪽도 마찬가지다. 그냥 파전이 아니라 해물파전으로 격상되었고, 설거지 노동에서 해방되었으니 일석이조. 양쪽을 더하면 일석사조. 함께 식사하면서 즐거웠으니 일석 오조로 치자.


이렇듯 식사가 풍성해진다는 것은 여럿이 같이 살 때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중 하나다. 누리는 가치에 비해 들이는 시간이 줄어 결국 모두 어느 정도씩 시간을 벌게 되는 실익은 물론이거니와 나의 일상을 채우는 음식의 라인업이 상당히 다양하고 풍부해진다. 카레로 시작해서 카레로 돌아와 다시 카레로 시작되는, 도돌이표 같던 식단에는 꽤나 흥미로운 리듬과 변주가 생긴다. 기쁨을 함께 나눌 또 다른 사람이 있고 뒷정리를 맡길 수 있다는 사실은 평소 하던 것보다 품이 더 들어가는 요리를 도전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의 맛의 세계가 조금씩 확장된다. 좀 더 많은 경우 각자 먹을 것을 따로 준비해 같이 앉는데, 따로따로 놓고 보면 단출한 밥상도 합하면 다채로워진다. “이것도 좀 먹어봐” 조금씩만 나눠도 밥상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다채로워진 밥상 위로 오고 가는 다양한 이야기들, 주방에서 집안으로 퍼져가는 다른 냄새까지. 함께 하는 밥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감각을 자극한다. 이는 풍요로운 삶의 밑바탕이 된다. 식사 시간 동안 나눈 대화를 통해 새로운 자극을 얻고 유대감을 느끼면서 남은 하루를 잘 살아낼 에너지를 다시 얻는다. 혼자 먹을 때는 종종 주유하는 차 마냥 무의식 중에 후다닥 때우거나 해치운다. 시간을 유용하게 쓰기 위한 목적 하에 무언가를 보면서. 자기 계발 영상이든, 보고 싶지만 못 보는 드라마 영상이든. 그러면 무엇도 기억에 안남곤 한다. 무엇을 먹었는지, 무슨 맛이었는지, 무엇을 봤는지. 같이 하는 밥상에서는 혼자일 때보다 더 지금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매 밥상은 하나의 유니크한 기억이 되어 오래 남는다. 여러 번 되새김질할수록 더욱 강하게 퍼져가는 맛있는 기억들이 오늘도 하나씩 쌓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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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