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적인 사람들의 co-living 둘러보기
Porch
Seoul Nooks 의 현관을 들어서며 생각합니다. 나는 혼자 살 수 없는 걸까(can’t), 살지 않는 걸까(won’t)? 나 혹시 의존적인 사람인가? 독거한다고 해서 독립적인 건 아니잖아? 노쿨 암쏘리…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주거생활을 공유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공유주택’, ‘쉐어하우스’ 같은 말들이 있지만, 저는 Seoul Nooks 의 라이프스타일을 co-living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우리말로는 ‘공동생활(?)’쯤이 될까요.
언어가 인식을 결정하는지 언어에 인식을 반영하는지 그런 건 잘 모르지만,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는 아무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이름이 생활의 형태를 결정하고 생활의 형태가 그 이름에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Seoul Nooks 에서의 생활을 ‘공유주택’이나 ‘쉐어하우스’라 부르기가 주저되는 이유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만을 공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독립성을 존중, 보장하면서도 관계를 맺고 공동체(community)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물리적인 공간을 공유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난이도가 높고, 깊은 의미를 가지며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Living Room
더 이상 혼자서 살고 싶지 않고, 원룸에 살고 싶지 않아! 삶(life)이 있으려면 삶을 담을 거실(living roon)이 필요해! 무엇보다 저는, 혼자 사는 제 모습이 좀 마음에 안 들었어요.
어딘가 무기력하고 게을러지는 모습. 혼자서 다 못 먹을 음식을 배달해서 꾸역꾸역 먹고 남기고 쓰레기를 양산하고. 밥 먹었던 테이블에서 두 발짝 걸어가면 있는 침대에 털썩 누워선 꼼짝 없이 있는 것. 잠자는 시간을 계속 미루면서 스크린을 스크롤 하는 것. 피드는 계속 리프레시 되는데 내 정신과 육체는 배터리가 소모돼 가는 것. 그렇게 집중력을 잃어버린 채로 깊은 생각이나 감정의 스위치를 끄고 내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이 차가워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런 모습 말예요.
내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의지나 호의에 슬쩍 기대서 힘을 내보기도 하고, 또, 내 쪽에서도 타인에게 친절과 배려를 베풀면서 공동의 이익/선에 기여하면서 살고 싶었어요. 원룸이라는 섬에 더 이상은 고립되고 싶지 않았어요.
Seoul Nooks 의 리빙룸은 월요일 부터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저녁 8시까지는 코워킹 아워(co-working hours)로 운영됩니다. 그리고 평일 저녁 8시 이후와 주말엔 휴식 시간(chillout hours)로 운영돼요. 5인 미만의 범위 내에선 이웃에 사는 친구들이나 이전 하우스메이트들이 랩탑이나 책을 챙겨서 함께 일/공부하러 오기도 한답니다.
어제 저녁엔 효창공원 근처에 사는 영효가 퇴근 후에 자격증 책을 들고 공부하러 왔었어요. 금요일 밤에 공부하러 갈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면서. 집에서 야근하는 Chris와 셋이서 아주 조용하고 평화롭게 각자만의 생산적인 시간을 보냈습니다. 칸막이 독서실이나 큐비클이 더욱 집중이 잘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흰 다른 사람의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각자의 할 일에 집중하게 되는 편이거든요. 밤 열시까지 이어진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영효가 고마워 하는데, 오히려 제가 고마웠어요. 집중력 떨어지는 금요일 밤 시간에 스터디 메이트가 되어주어서!
Kitchen & Dining Room
냉장고와 부엌을 공유한다는 것은 정말 많은 규칙이 필요한 일이에요. 냉장고 및 찬장 그릇장 수납(aka 테트리스), 쓰레기 분리수거와 음식물쓰레기 처리부터 설거지, 청소, 환기, 행주질과 걸레질까지… 그래서인지 부엌 곳곳엔 정말 귀여운 공지사항이 붙이 있어요.
아침이면 크리스가 내리는 커피 향, 옆집 사장님이 주신 크로와상 생지를 오븐에 굽는 고소한 냄새 가득해요. 창가에선 정원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맨살에 닿고요 새소리도 들려요. 얼마 전 햇살 내리쬐는 오후엔 외출에서 돌아온 예지가 양 손 가득 케익을 사 왔어요. 마침 태은이 좋아하는 케익 집 앞을 지났다고. 생각이 났다고. 부랴부랴 체리주스를 꺼내 얼음을 띄우고 호다닥 여자들만의 티타임을 가졌어요.
태은이 얼마나 자아가 통합된 성숙한 사람인지, 林예지가 얼마나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같이 있기에 즐거운 사람인지, 또 千예지가 얼마나 흥쟁이 끼쟁이이면서도 이타적이고 마음 넓은지에 대해 서로 칭찬하면서.
Seoul Nooks 의 운영자인 千예지는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연결(connection)을 느낄 때 순수한 기쁨을 느낀다고 해요. 아름다운 말이죠? 독립적인 성인들이 모여 산다는 것은 정말 많은 갈등과 의사소통 그리고 합의의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 번잡한 삶을 자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언제까지나 혼자서 살 순 없으니까. 인간은 가족이든 유사가족이든 어쨌든 공동체를 이루어서 살아가야 하니까. 좋은 공동체는 애정과 노력 둘 다를 필요로 하는 거니까.
우리집 사람들 사이에 connection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장소는 아마도 주방일거예요. 냉장고에 전 하우스메이트 Travis가 남기고 간 고추장이 있네요. 스위스에서부터 개 당 2만원짜리 한국 배를 사서 동치미를 담가 먹는 한식 덕후 녀석… 덕분에 오늘 저녁은 떡볶이를 만들어서 다 같이 나눠먹어야겠습니다!
Bed Room
베드룸에선 오로지 잠과 레져 독서에 집중합니다. 정신이 깨어있는 사람, 그래서 눈이 반짝이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선 베드타임이 정말 중요하니까요.
George는 저녁 시간엔 공동 공간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요. 다음날의 업무 및 소셜 라이프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 미 타임(me time)을 가지는 것인데요. 그 시간에 주로 책을 읽는다고 했습니다. 그럼 영국에서부터 책을 싸짊어지고 온 거야? 라고 물어보니, 원랜 그랬었는데 편리함에 굴복해 이젠 킨들을 애용한다고 해요.
아, 킨들은 3층 연암방에 살고 있는 태은의 최애템이기도 합니다. 태은의 킨들엔 만화도 잔뜩 들어 있답니다. 태은의 저녁시간은 스위스로 돌아가면 한동안 만나지 못할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채워져 있어요. Chris와 George가 여행을 떠난 지난 밤엔 태은이 친구들을 초대해 베드룸에서 맥주 타임을 가졌답니다. 거실에서 두 예지는 브루클린 나인나인을 보고 있었어요. 태은의 친구 중 하나도 브루클린 나인나인 팬이라고 해서 반가웠답니다, 역시는 친구의 친구는 나의 친구 :)
Chris의 저녁은 친지들과의 통화입니다. 불가리아에서 한국에 온 지도 벌써 5년, COVID 상황으로 인해 오랫동안 고국의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달래는 것이겠죠? 알아들을 수 없는 불가리아어에서 크리스의 들뜬 기쁨만은 선명하게 들립니다.
Back to the Porch
정원을 향해 큰 창이 난 2층 방에서 George의 리즈(Leeds) 사투리 가득한 말소리가 들리네요. 아마 회사와 콜을 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실없이 농담하며 수다 떨 때와는 다른 사뭇 진지한 목소리입니다. 저녁까지 열심이로군. 생각해요. 누군가의 말소리를 들으면서 불켜진 집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퍽 좋습니다.
타인과 삶을 공유함으로써 젊음을 밀도 있게 쓰고 싶은 여러분을 기다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