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신의 노래를 듣는 순간이면 마음이 편했다. 실력을 따라갈 수 없으리라는 질투 비슷한 것이 언뜻 올라오는 때도 있었으나 한때의 치기 정도로 치부될 만했다. 어린아이처럼 꺅꺅대며 스타의 뒤를 쫓을 나이는 한참 지난 지 오래이다. 하지만 한순간은 울컥 그런 감정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작은 자취방 안에서 낡은 헤드셋을 통해 열리는 세계는 그의 세상과도 다름이 없었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자주 소리가 끊기는 낡은 헤드셋도 상관이 없었다. 작은 자취방 안의 큰 세상에 취해 있을 때면 무엇도 그를 방해하지 못했다. 사랑 노래를 들으면 지난 사랑이 돌아왔고 이별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차가운 순간이 고였다. 연애조차도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이 그저 지루했다. 이 세상 안에서라면 그게 무엇이든 쥘 수 있었다. 불필요한 감정 낭비 없이도.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아무 생활도 하지 않는 히키코모리는 아니다. 그의 특별한 세상이 열리는 것은 일상생활이 모두 정리된 저녁의 어느 순간이었다. 멀쩡하게 회사에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웃고 이야기를 해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로 허전함을 채웠다. 꽉 채워 드는 편안함은 허전함을 안았고 그 속에서 그는 그저 행복을 느꼈다. 더 이상 무언가를 채우는 것은 불필요한 낭비였다.
그는 헤드셋을 벗었다. 노래가 끊긴 집안은 고요했다. 이곳에 사람이 든 것은 몇 번이나 되었던가. 평소엔 전혀 느끼지 못한 외로움이 문득 끼어들었다. 물론 그는 감정 자체를 외로움이라 정의하지는 않았다. 또다시 몸을 타고 기어오르는 이유 모를 불쾌함이 전부였다. 어쩌면 방금 전 노랫말의 여파 일지 모른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굿 바이. 화면 속의 남자 가수는 노래했다.
굿 바이. 문득 여태까지의 사랑을 돌이킨다. 굿 바이라 부를만한 이별이 정말 있었던가. 물로 그녀들과 추하고 거친 이별을 맞은 것은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이별이었고 그리 대단
치 않은 안녕이었다. 그런데 정말, 굿 바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던가.
고요한 집안에서 그는 픽 짧게 웃었다. 왜 오늘따라 이런 생각들이 자꾸만 고여 드는지. 거품이 빠진 맥주 캔을 들이켠다. 미지근한 맥주는 영 맛이 없다. 문득, 아주 문득 외로움이 스쳐간다. 외면해도 더는 어쩔 도리가 없다. 외로움의 형태가 분명하다.
우습게도 그 이유조차 알고 있다. 우연히 만난 동호회의 그 여자.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여자는 그를 퍽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어린 나이인 여자의 관심은 퍽 부담스럽기도, 어쩌면 기분이 좋기도 했다. 스스로도 그 감정을 정의할 수 없었다. 여자를 만난 후 한동안 잊고 산 외로움이 자꾸만 온몸에 고인다는 것만이 그가 내릴 수 있는 생각의 전부였다.
굿 바이. 다시 헤드셋을 든다. 소리가 끊기는 헤드셋을 다시 머리에 쓴다. 남자 가수는 여전히 노래한다. 이 말이 뭐라고 그렇게 어려웠을까. 형체가 흐릿하던 외로움에게, 굿 바이. 좋은 이별이란 없다지만 지루한 감정에까지 적용될 만한 말은 아니다.
남자는 맥주 한 모금을 다시 들이켠다. 그리 역한 맛은 아니다. 아주 살짝 단 맛이 고이는 듯도 하다. 굿 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