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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 Oct 12. 2021

이어폰이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가도 놀라지 말아요

틱 장애로 산다는 것은 #01 - 출근길의 날으는 이어폰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가는 이어폰을 본 일이 있소?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내 꼴이 참으로 유쾌하오.


개뿔. 내 꼴에 스스로 연민하여 눈물을 흘릴 수도, 그렇다고 재밌다고 깔깔댈 수도 없는 이 병. 나는, 지금도 여전히 틱 장애 환자로 살아간다.



틱 장애가 무엇인지 정도는 대부분이 알고 있을 테다. 몇 년 전 꽤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도 틱 장애 환자가 등장하니 말이다. 또 어디였더라, 예전 모 프로그램에서 원치 않는 순간에 욕을 뱉는 음성 틱으로 괴로워하는 분도 출연한 바 있다. 안타깝게도, 병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나는 그분의 자살을 자살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틀림없는 병사다.


그런가 하면 틱 장애가 있는 척하며 사람들을 속인 몹쓸 인간도 있었지. 이름조차 밝히기 싫어 익명 처리하지만 유튜브 좀 본다 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는 사건일 것이다. 참 용기 있는 사람이다 생각했는데, 사건의 전말을 알고 나니 허탈함이 몰려왔다. 누군가에게 내 병은 그저 조회수를 위한 소재거리일 뿐이구나.


앞에서 나는 고개를 마구 흔드는 틱 증상이 있다고 고백했다. 이 증상이란 게 내가 원치 않는다고 해서 끝까지 참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때와 장소를 가리는 일은 당연히 어렵다. 종종 그것은 견딜 수 없는 패배감으로 나를 몰고 가곤 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신호가 바뀌기 전에 빨리 뛰어가야 하는 긴박한 상황. 불안하고 긴장되면 더 심해지는 증상 때문에 길을 건너지는 못하고 열심히 고개만 흔들다 신호를 놓쳤다. 머리를 흔들면서 가다간 내가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차마 그 선택까지는 하지 못한 것이다.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고, 그 빨간 불빛을 바라볼 때 내 속에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친다.


이쯤 되면 하늘을 나는 이어폰이란 무엇인지 궁금할 수도 있는데, 사실 별 건 없다. 하필 요즘 대세가 무선 이어폰이라 나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아, 이 놈의 무선 이어폰이 뛸 때는 안 빠지는데 머리를 흔드는 순간엔 쉽게 빠져 휙 날아가 버리더라. 출근길마다 이어폰 하늘 구경시켜주느라 아주 죽을 맛이다. 구경 마치고 횡단보도에 떨어진 걸 주섬주섬 주워야 하는 건 내 몫이니까.


안경도 마찬가지다. 삼층에서 바깥을 구경하고 있는데 또다시 증상이 도졌다. 그럼 어떻게 되나. 바로 다시 도리도리 티가 열리는 거지. 안 그래도 모르고 밟고, 자다 깔아뭉개고, 내 온갖 부주의로 헐렁해진 안경은 그대로 밑으로 추락. 완전히 부러지는 않았지만 초점이 맞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해 먹은 안경만도 여럿이다.


사실 틱을 안고 살며 망가지는 물건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다. 내가 고개를 흔들다 이어폰을 하늘로 날릴 때, 버스 옆자리 사람에게 의도치 않은 머리카락 공격을 했을 때, 나는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 사실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울 것이라는 건 단순한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그 시선은 부풀려지고, 금세 하나의 진실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쯤 되면 시선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혹은 나에게 닿지도 않은 시선 때문에 위축된 것인지의 여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게 된다. 나는 금세 한없이 작아져 그토록 끔찍하게 생각하는 새대가리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어폰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가다 바닥에 훅 떨어지면 누군가는 놀라 나를 바라볼 세상. 혹시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그런 모멸감을 주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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