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여만 주신다면 뭐든 합니다요
가감 없이 솔직한 초보 선생님의 좌충우돌 수업 적응기 #04
앞에서 한 이야기를 굳이 한번 더 꺼내자면 내 애매한 직업은 카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그렇게 칭한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아메리카노나 대충 내리다 퇴근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맹하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주일에 3일만 바짝 일하면 되었으니 조금 더 열심히 해보자 마음먹은 무렵이었다.
바로 그 시점에 면접 기회가 들어온 것이다. 단 이틀만 일하면 되는 파트타임 강사.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당연 쥐꼬리겠지만 용돈벌이나 더 하자 생각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실은 결혼 준비를 위한 자금 마련이었다. 앞 장에서 언급한 나의 소중한 인간 내비, 아니 남자 친구와는 2년 가까이를 만나던 시점이었으니 결혼 얘기가 오갈 법도 했다. 가뜩이나 남자 친구는 나이가 제법 있는 편이었다. 띠동갑의 차이라 남자 친구의 나이를 처음 들은 날 엄마는 기함을 했더랬다.
아무튼 남자 친구의 나이도 있겠다, 나도 빨리 정착하고 싶겠다, 하루하루 결혼의 환상에 젖어 결혼 얘기만 고장 난 테이프처럼 반복하던 때였으니 나는 돈이 필요했다. 그것도 무진장 많이.
한 회사를 꾸준히 오래 다니지를 못했으니 당연히 돈도 모을 수가 없었다. 텅 빈 지갑은 탈탈 털어야 먼지만 자욱했으니, 이대로 가다간 결혼은커녕 서울역 한 구석에 자리라도 마련해야 할 판이었다. 그들의 세계에도 텃세라는 게 있어서 꿀 자리는 쉽게 얻지도 못한다던데.
이틀이나마 놀지 않고 더 일을 하면 그만큼 돈이 더 들어온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힌 나는 몸이 힘들 것조차 고려하지 않았다.
각설하고, 면접날로 돌아가 보자면 상당히 훈훈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면접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압박면접의 압 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원장님은 연신 따뜻하게 웃으며 질문하셨고, 나는 그 웃음보다 뜨거운 차를 홀짝이다 혀를 데어가며 답을 했다. 그래, 센 척 좀 해봤고 솔직히 긴장했다. 분위기가 좋았던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게 편안한 분위기였다고는 못 할 일이다.
그동안 내가 면접을 거쳐 온 많은 회사들이 그랬듯, 이곳도 나의 짤막한 경력들에 의문을 품었다. 바이럴 마케팅은 거짓말을 해야만 한단 생각이 지배적으로 들어 나와 맞지 않아 퇴사했고, 앞서 근무한 두 군데의 학원들은 코로나 시국에 경영이 어려워져 잘리고 말았다.
물론 말이 좋아 그 이유지, 생초보였던 내가 영 적응을 못하니 쓸모가 없겠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어버버 하다가 아까운 시간만 다 흘려보냈으니.
내 짧은 이력의 이유를 솔직하게 대답하고, 또 다른 질문에 답을 하고, 질문하면 답하고. 뻔한 면접을 이어갔다. 면접 한 두 번 경험한 것도 아닌데 어쩌면 이렇게나 긴장되는지.
"우리 학원은 이런 프로그램을 써요."
한창 질문이 이어지다, 원장님은 이내 질문을 거두고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어떤 교재로 수업하는지 볼 수 있는 안내문 같은 것이었다. 아이들이 실제 수업하는 교재도 볼 수 있었는데, 와! 이건 너무 재미있어 보이잖아!
과장 하나 없이 나는 내가 이 학원 선생님이 된다면 하게 될 수업이 무척 재미있어 보였다. 교재를 보는 순간 의욕이 미친 듯이 불타올랐다. 어떻게든 이 학원에 합격해 뼈를 묻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 들어찼다. 지금이라면 책꽂이 뒤에서 STAY! 를 외치겠지만.
아, 이건 물론 농담이다. 나는 지금도 전혀 힘들지 않게 수업을 즐기고 있다. 진쨔야. 진짜라니까. 아, 뭐야. 코는 왜 길어져.
그 순간의 나는 눈이 아주 초롱초롱해져서 원장님을 빤히 바라보았을 것이다. 저 꼭 하고 싶어요. 하게 해 주세요. 잘할게요. 뽑아주세요. 온갖 애원 눈빛 발사.
"선생님이 정말 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시간이..."
아뿔싸, 순조롭게 풀려가나 했는데 이번엔 시간이 문제였다. 카페에서 일을 하는 요일은 월, 화, 목이었는데 공교롭게도 학원에서 원하는 날짜가 화, 목이었던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거대한 난관이었다. 아주 심각한 선택의 기로. 나는 이제는 다 식어빠진 국화차를 입에 머금고 굴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