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개관으로 대구가 떠들썩할 즈음, 업무차 개관전을 한 바퀴 둘러본 날이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바로 옆 대구미술관이 막 오픈한 해외교류전도 보고 가자 싶었다. 다소 발음하기 어려운 이집트 예술가 ‘와엘 샤키’ 전이었다. 고요하고 차분한 간송미술관 전시와 달리 떠들썩한 음향소리가 미술관 입구 로비까지 흘러나왔다. 판소리인가? 소리꾼의 창과 전통악기의 흥겨운 가락이 혼재된 시끌벅적함이었다.
전시 리플릿을 보니 와엘 샤키는 “영화, 퍼포먼스, 이야기 형식을 결합하고 회화, 드로잉, 조각, 설치, 음악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며 총체적인 예술을 선보이는” 작가이다. 그는 대구미술관의 후원으로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하면서 한국전래동화를 소재로 ‘러브 스토리’란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한국의 러브 스토리라면 춘향전인데..,’ 하며 전시실 입구로 다가갔다. 메탈 그린 컬러로 반짝이는 벽이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 벽에 작고 흰 글씨로 작가와 작품 소개가 빼곡히 적혀 있었지만 메탈 컬러에 눈이 부셔 글을 읽기 힘들었다. ‘그래, 불친절함은 예술가들의 전매특허지. 일단 예쁘니까 봐준다.’
전시실로 들어서자 어두컴컴하고 넓은 공간에 서너 개의 영상이 제각각 소리를 내며 동시 상영 중이었고, 전시실 중앙 우측으로 볏짚단이 비스듬히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그 아래쪽으론 하얀 쌀이 섬처럼 소복이 쌓여 있었다. 딱히 관람순서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발길 닿는 대로 이리저리 돌아보았다.
영상은 모두 명암이 반전되어 등장인물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고, 배경은 각각 한국의 강가와 바닷가 그리고 한옥마을에서 촬영한 듯 보였다. 전시 공간 가운데 볏짚단이 제단처럼 쌓여 있기도 하고, 명암이 뒤집힌 화면에 판소리 가락이 울려 퍼지니 묘하게 기괴하고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어린 시절 공포의 대명사인 ‘전설의 고향’에 입장한 기분이다. ‘러브 스토리’라는 작품명과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는 이 생경함 속에 과연 이집트 예술가의 어떤 심오함이 담겨 있는 걸까.
다행히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창은 한국말이라 굳이 자막을 읽지 않아도 스토리를 알 수 있었다. ‘금도끼 은도끼’와 ‘토끼의 재판’은 대충 아는 동화인데 ‘누에 공주’는 처음 듣는 이야기다. 하긴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의 모든 전래동화를 다 아는 건 아니니까. 이집트 예술가가 들려주는 ‘누에 공주’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선 이마를 탁, 쳤다. ‘아, 누에가 공주였구나. 난 정말 몰랐네.’ 하긴 비단 만드는 명주실을 뽑아내는 벌레라니 왠지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연이 있어 보인다.
사연인즉, 적장의 목을 베어 오는 장수에게 공주를 시집보내겠다고 말한 왕과 적장의 목을 베어온 말, 그리고 말과 기꺼이 결혼하겠다는 공주 사이에 일어난 비극이다. 당황한 왕은 말을 죽여버렸고, 공주는 말의 가죽이라도 달라고 간청했다. 어느 날 회오리바람에 말가죽과 함께 사라진 공주, 온 나라를 뒤져 드디어 찾은 말가죽 안에는 하얀 벌레만 가득했다. 이를 본 신하는 벌레가 공주의 뽀얀 살결을 닮은 것으로 보아 공주의 소생이 틀림없다고 왕에게 아뢰고, 왕은 이 벌레를 고이 모셔 귀히 보살피라 명했다.
공주는 왜 말을 그토록 사랑한 걸까,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았다. 다만 이 동화의 교훈은 ‘약속을 잘 지키자’이다. 그렇다면 공주의 행동은 ‘전심을 다해 약속을 지키려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와엘 샤키는 이것을 ‘사랑’으로 보았다. 내가 손해 볼지언정 약속을 지킨다는 건 ‘성실’과 ‘신의’인데, 그게 ‘사랑’이라고? 문득 성경의 ‘사랑장’이 생각났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린도전서 13:4-7)
‘그렇지, 사랑은 이런 거지. 약속을 지키고(누에 공주), 정직하게 행하고(금도끼 은도끼), 정의를 택하는 것(토끼의 재판).' 풀리지 않던 의문이 한 방에 해소된 것처럼 뒤통수가 시원해졌다. ‘오오~ 멋지다.’ 정의와 정직, 신의를 주제로 한 한국의 전래동화를 ‘사랑’으로 풀어낸 와엘 샤키! 그의 기괴한 표현마저도 포용하게 만드는 독창적인 발상에 내 마음도 흥분되었다.
이런 내 마음을 더욱 들뜨게 만든 영상은 폐가전으로 꾸민 무대 위에서 핑크색 사자탈을 쓰고 가볍게 풀쩍풀쩍 뛰노는 북청사자탈춤 공연이었다. 두 마리 사자, 아니 그 안에 든 네 사람의 발동작을 한참 바라보노라니 내 어깨도 들썩인다, 춤알못인 내가 봐도 ‘탈춤이 이렇게 힙했나’ 싶을 정도였다. BTS와 댄스배틀을 벌여도 좋을 만큼 멋짐이 폭발하는 춤사위다. 경쾌하게 펄럭이는 핑크색 사자털마저 사랑스럽다. 다만 이 영상의 문제점은 전래동화들 사이에 혼자 생뚱맞게 튄다는 점이다. 여기에 또 작가의 어떤 심오함이 담겨 있으려나.
풀리지 않는 의문이 너무 많은 전시여서 결국 한 달 만에 다시 미술관을 찾았다. 이번엔 해설사가 있었다. 덕분에 궁금증이 대부분 해결되었다. 전시실 좌측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한 <북청사자탈춤> 영상은 판소리 무대에서 고수의 역할이라고 한다. 와엘 샤키가 한국전통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방문한 안동 하회마을에서 북청사자탈춤을 보고 그 흥겨움에 반했고, 판소리라는 아주 한국적인 무대공연 방식을 자신의 작품 배치에 반영한 것이란다. 3개의 러브 스토리를 보는 동안 북청사자탈춤은 무대 위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흥을 돋우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눈이 부셔 글자를 읽기 힘들었던 메탈 그린 컬러에 대한 의문도 풀렸다. 보는 각도마다 다른 빛깔로 보이는 메탈 컬러를 사용한 의도는 “기록된 역사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라는 와엘 샤키의 중심 질문과 맞닿아 있다.
유독 그린 컬러인 이유는 사막이 대부분인 이집트에서 살다가 한국에 와보니 초록으로 뒤덮인 산이라는 존재가 놀라웠기 때문이란다. 하긴 우리나라 국토의 70%가 산지이니 내가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초록산이 그에게는 신비로운 풍경일 수 있겠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메탈 그린 컬러'와 ‘러브 스토리’로 풀어낸 예술가의 시선에 깊이 공감했다. 역사가가 아닌 예술가가 바라보는 역사는 또 이렇게 창의적이고 아름답구나, 에로스가 아닌 사랑 이야기로 내 마음을 사로잡은 와엘 샤키에게 경의를 표한다. 한국인인 나도 미처 알지 못했던 한국인의 '사랑장'을 발견한 기쁨에 벅차오르는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