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서림 Jun 12. 2023

돌려받지 못한 돈 2

이 글은 글쓰기 모임 과제로 작성한 것이다. 소설(이야기) 5단 구성에 입각하여 전체를 구성해 보고 후에 살을 붙였다. 경험했던 사실에 입각하여 썼지만 나의 기억에만 기대어 일부 내용에는 왜곡과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먼 훗날 '그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 기억의 오류를 바로잡아 주기를 바라며 썼다.


제목 : 돌려받지 못한 돈

줄거리: 대학원 석사 논문을 쓸 때 일이다. 사례가 부족해서 1차 논문 심사에 떨어졌다. 성매매 중 젠더폭력을 다룬 주제라 인터뷰이(interviewee)를 만나기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일을 그만 두고 쉼터에서 교육을 받은 뒤, 공예품 강사로 활동하고 있던 현이라는 사람이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그렇게 논문을 보강한 뒤 최종 심사에 통과할 수 있었다.

감사 인사를 전하던 날, 현이 씨는 뜻밖의 부탁을 해 온다.





[위기] 인터뷰, 졸업, 마지막 약속


"그게 전부예요."

인터뷰는 세 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처음보다는 두 번 째, 두 번 째보다는 세 번 째 이야기의 결이 더 세밀하고 솔직했다. 그럴수록 나는 스스로의 표정을 검열했다. 혹시 내가 동정하거나, 슬퍼하거나, 추궁하거나, 무표정하지는 않을까. 있는 그대로 내 감정을 다 드러내자면 분노하고 눈물 흘리다 당황하는 쪽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현이 씨 이야기를 다 쓸 수는 없다. 그리고 십 수년이 흐른 지금, 현이 씨의 이야기는 모두 잊혔다. 그게 맞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구체적인 사실보다는 어떤 느낌이다. 현이 씨가 노력했다는 느낌. 그리고 현이 씨는 자기를 찾기 위해 스스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자발성을 강조하는 단호한 목소리에 난감해하던 내 느낌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주변에 사람은 없었고 햇살은  책상 위 싸라기눈 같은 먼지를 비추고 있었다. 공기는 차고 의자는 딱딱했다. 그곳이, 지금까지 머물렀던 어떤 자리보다 내게 가장 알맞은 자리 같았다.
-최진영, 내가 되는 꿈, H



남녀는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동거하고 살다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일곱 살 때쯤, 여자 쪽 어머니 집에 아이를 맡기고 떠났다. 최진영의 소설, '내가 되는 꿈' 속의 '나'처럼 외할머니집에 맡겨진 현이 씨는 어디에 있어도 불편했다. '부모 없는 애'가 겪는 멸시와 동정, 괴롭힘은 일상이었다. 열 살이 되기 전부터 자기를 아는 불편한 사람들 곁을 떠나 '내'가 되고 싶었고,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 지름길은 '돈'에 있는 거 같았다. 자연스럽게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번졌고, 고등학교 졸업 전에 외할머니 집을 가출하여 '그 일'을 하게 되었다. 중졸에 젊은 몸이 당장에 할 수 있는 일.

 

현이 씨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지만 빙빙 돌리지 않았다. 모든 언어가 명확했다. 그 사람이 겪었던 일들은 11월의 새벽공기처럼 서늘하게 기관지를 타고 소리가 되어 풀렸다. 나는 한참이나 습기가 차오르는 눈을 깜빡였지만 현이 씨의 눈동자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렇게 세 차례의 인터뷰를 마쳤다.


마지막 인터뷰날, 맑게 갠 하늘처럼 파란 편지 봉투에 인터뷰 사례비 20만 원을 넣어 전달했다. 그 사람이 조금은 개운해졌기를 바라는 마음에 색깔 봉투에 돈을 담았다.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이런 걸 챙기냐고, 자기는 돈을 바라고 인터뷰를 한 건 아니었다고. 처음에는 이걸 왜 할까, 회의적이었는데 다 말하고 나니 후련하다고, ' 현이 씨는 '미'와 '솔' 사이의 톤으로 얘기했다. 다행이다. 이 인터뷰가 현이 씨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무척 기뻤고, 마침내 졸업할 수 있어 행복했다. 탈고를 하고 나니, 부족한 점들이 잘 보였다. 이렇게 고쳐 쓰고 보완하면 좋겠다는 의지도 생겼지만 막상 책상 앞에 앉으면 의욕 상실 상태에 빠져 인터넷 서핑만 해댔다. 아, 그만 마침표를 찍을 때구나. 나는 확실히 연구보다는 구체적인 기획과 실무가 좋았다. 그동안 공부하면서 쌓은 이론적 기틀을 실무에 요긴하게 쓰자는 쪽으로 진로 방향을 잡았다. 후련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논문에 도움 주었던 사람들을 방문하여 감사인사를 전하기로 했다. 그 사이 연락이 끊긴 사람들이 많았다. 여덟 명 중 단 두 명만 연락이 되었고, 한 명은 지방에 있어 만나기 어렵다 했다. 연락이 되고, 만날 수 있었던 사람은 현이 씨뿐이었다.


"졸업이라니 정말 잘 되었어요."

포니테일로 상큼하게 올려 묶은 머리가 잘 어울렸다. 감사하다는 얘기, 날씨얘기, 연예인 누구누구 얘기, 논문 쓰면서 겪었던 위기, 다 쓰고 나니 후련하다는 얘기. 인터뷰가 끝나고 나니 목소리를 내는 쪽은 나였다. 한참 TMI를  방출하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번 고마웠다는 얘기를 끝으로 그만 일어나려 했다.

"저 돈 좀 빌려줄 수 있어요?"

"네?"

"아는 동생이 곤란한 상황이라고 저한테까지 문자를 보내왔더라고요. 백 육십오만 원."

나는 인터뷰이와 금전 거래를 하지 말라는 선배들의 조언과 함께 통장에 잔고가 얼마나 있지를 동시에 헤아렸다. 2 백만 원이 좀 안 되는 돈이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절정] 돈을 다 갚지 않은 채 잠적한 현이 씨

[결말] 그대로 흘러버린 시간

작가의 이전글 돌려받지 못한 돈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