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한 번의 장례식과 한 번의 결혼식, 그리고 낯선 손님> 다음 이야기입니다.
기대와 달리, 홈스테이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무래도 온전히 자발적 참여가 아니었던 탓일 게다. 홈스테이 장소인 우리 집에서 국제교류 프로그램이 열리는 서울을 매일 기차로 왕복해야 한다는 현실은 생각보다 고되었다. 간신히 작별을 고했던 '만원 지하철'과 ' KTX 출퇴근의 피로'가 환대의 허울을 쓰고 일상 속으로 다시 비집고 들어온 기분이었다. 게다가 이 홈스테이를 수락할 당시 내게 정보가 충분치 않았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설령 정보가 충분했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었겠지만 말이다.
이유는 이랬다. 지난해 중학교 1학년인 조카는 일본 후쿠오카로 문화교류를 다녀오며 현지 가정의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식사와 잠자리는 물론 낚시와 지역 상점 투어까지, 일본 가정의 따뜻한 호의를 듬뿍 누리고 돌아온 것이다. 그에 대한 답례로 동생네 집에도 홈스테이 제공 요청이 들어왔으나, 행사장인 서울과 너무 먼 지역적 한계가 발목을 잡았다. 동생네 집보다 우리집이 교통편이 나았다. 결국 "작년에 조카가 받은 게 있으니 우리도 베풀어야 한다"는 동생의 간곡한 부탁이 내 문을 두드렸다.
강아지와 단둘이 사는 비혼 1인 가구인 나에게, 중학생 남자아이의 세계는 도무지 데이터가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중학교 3학년쯤 되는 소년이 무엇을 먹고 싶어 하는지, 어떤 대화가 적절한지 알 턱이 없었다. 나는 그저 성인의 준거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청결한 잠자리, 어색하지 않은 식사, 정해진 시간의 교통편 제공.
이 모든 것을 홈스테이 가정에서 오롯이 부담해야 한다니. 교통비와 문화체험 비용은 동생이 지불했고, 식사비까지 내겠다는 것을 내가 만류했다. 비록 지금은 백수 처지라 해도 조카와 그 친구를 위한 식사비나 간식비 정도는 기꺼이 내줄 만한 어른이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 비용보다 더 큰 문제는 '문화교류의 장'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었다. 기본적인 접객만으로도 '이게 맞아'라는 의문이 자라난 마음속에는, 낭만적인 환대의 여유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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