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에게는 ‘회사 일로 바쁘다’는 전능한 핑계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퇴사 후 관계가 단절될까 걱정했던 적도 있지만, 오히려 내 일상은 사람들로 더 북적거린다. 봉사 모임부터 강아지 놀이 모임, 전 직장 동료들과의 만남까지. 혼자서도 잘 지낸다고 자부해왔건만,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집 밖을 나서 누군가와 마주 앉게 된다.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더 사람의 온기를 필요로 하는 존재였던 모양이다.
나이가 들수록 장소와 시간, 사람에 대한 선호 해상도는 더욱 선명해진다. 웬만한 호기심은 머릿속 시뮬레이션만으로도 결론이 난다. 가봤자 피상적인 얘기만 겉돌다 과거만 곱씹게 될 동창 모임이나, 내 감정이 설 자리가 없는 먼 친척의 경조사는 이제 연습 삼아 거절하는 법도 배웠다. 하지만 ‘도리’라는 이름으로 날아드는 생애사의 초대장들 앞에서는 여전히 마음이 서성거린다.
퇴사 후, 나는 한 번의 장례식과 한 번의 결혼식을 맞이했다. 지난 1월에는 올케의 아버지, 즉 남동생 장인어른의 비보가 들려왔고, 다가오는 3월에는 왕래가 거의 없던 사촌 동생의 결혼식이 기다리고 있다. 가족의 외곽선이 점점 좁아지는 세상에서 나에게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관계들이다. 일 년에 한두 번도 마주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슬픔과 기쁨은 분명 존중받아야 마땅하나, 그 자리에 어울리는 표정과 자세를 빌려 입고 서 있는 내 모습은 가끔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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