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철이 들었다기보다는
오늘의 콘텐츠는 '소버 큐리어스'에서 시작됐습니다. '취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는 소버(sober)와 '호기심'을 뜻하는 큐리어스(curious)의 합성어인데요. 술에 취하지 않으려는 라이프스타일입니다. 지인들과 만날 때 술을 먹지 않거나, 줄이는 음주 문화라고 할 수 있죠.
소버 큐리어스 트렌드가 생기게 된 건 크게 2가지 이유로 추측돼요.
1. 건강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숙면, 체중관리 등 이른바 건강지능(HQ)의 중요성이 부각된 거예요. 젊었을 때부터 혈당이나 노화를 관리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거죠. SNS에서 금주를 비롯한 건강관리 콘텐츠가 인기를 끈 것도 한몫했고요.
2. 관계를 만드는 데 술이 필수가 아니게 됐어요. 술은 마시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도 하지만, 주로 모임에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자주 쓰이는 도구이기도 해요.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술을 마시지 않아도 성립하는 커뮤니티가 생기기 시작해요.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가볍게 교류하는 '서울모닝커피클럽'처럼요.
결론적으로는 음주하면서 얻게 되는 즐거움보다 자기관리의 성취감이 더 커졌어요. 가장 큰 이유였던 술이 필수인 ‘관계’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소버 큐리어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요즘 젊은 세대가 참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절약과 재테크가 유행이기도 하고, 러닝처럼 스스로를 관리하는 트렌드도 꽤 오래 가고 있죠. 이러한 방향성은 이로워 보여요. 젊을 때부터 인생을 관리하고 ‘갓생’을 살아가려 한다는 증거니까요.
다만, 이 안에는 또 다른 슬픈 이유가 있다고 봐요. 미래에 대한 불안, 포기, 위축이라는 부정적인 키워드로도 해석할 수 있거든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술 마시면서 놀 여유를 잃었어요.
1. 생존이 더 중요해졌어요. 주니어의 종말, 연봉의 격차, 전업자녀 등 사회에 나가기 전부터 불안감이 가득한 말로 도배가 돼요. 더 이상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현재를 즐길 수가 없게 된 거예요. 게다가 즐거웠던 친구와의 술자리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확인하는 자리가 돼요. 돈도 돈이지만, 술자리 이후의 공허함과 죄책감을 감당하기 어렵고요.
2. 꿈이 언제부턴가 사치가 됐어요. 꿈을 자랑하면 "너 그거 해서 잘 벌 수 있어?"라는 질문이 먼저 나오는 시대예요. 스스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잠을 못 이루는데, 사회의 시선은 날카로워요. 돈 앞에서 꿈이란 단어는 작고 초라해지죠.
3. SNS를 보면 비교를 피하기 어려워요. SNS에는 행복하고 완벽한 사람들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분명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일했는데도 온라인에서는 나보다 대단한 사람들만 있는 느낌이에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아예 유흥을 포기하게 만들어요. "이러다 나만 뒤처지면 어떡하지?"라는 공포가 오히려 젊은이들을 '갓생'으로 몰아붙이는 셈이에요.
이제는 잊혀져 가는 욜로도 그렇고, 학생들의 명품 소비 등 젊은 세대의 사치가 문제시됐던 시기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요. 지금 소버 큐리어스를 비롯해 절약, 운동 등의 키워드가 부각된 트렌드에 대해 가볍게 "철이 들었구나" 정도로 보긴 어려울 것 같아요.
미래를 더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지금 더 열심히 산다는 멋진 태도일 수도 있지만, 극도로 커진 불안감이 현재의 여유를 없애버린 건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큐레터에서 2월 12일 발행한 아티클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