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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셍지 Sep 23. 2021

Forever 27

스물 일곱에 세상을 떠난 아티스트들을 기리며


메멘토 모리: 죽음을 잊지 말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잊지 말라. 이 문장은 ‘언제나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가며 현재의 삶에 충실하라’는 의미로 쓰인다. 많은 이들이 삶은 유한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지만, 죽음이 우리 곁에 존재함을 자각했을 때 무력감이 아니라 살아갈 의지가 생긴다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죽음이 있다. 안타까운 죽음부터 거룩한 죽음, 누구도 알지 못하는 죽음부터 기록된 죽음까지. 죽음에도 다양한 이유와 양상이 있는 것처럼 죽음을 받아들이거나 추모하는 과정에도 여러 방식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주변인의 죽음에 죽을 듯 아파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며, 또 의연하게 딛고 일어서기도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메멘토 모리’라는 단어는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메멘토 모리’가 ‘죽음을 잊지 말라, 그리고 현재의 삶에 충실하라’라는 본래의 의미 이외에도 ‘죽음을 잊지 말라, 한 번뿐인 죽음에 마음껏 슬퍼하라’라는 의미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이렇게는 어떨까. 메멘토 모리를 ‘한 사람의 삶만큼 의미있는, 잊히지 않고 사람들에게 계속 회자되는 죽음’으로 본다면. 어떤 이들의 죽음은 삶만큼이나 큰 영향력을 갖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은.

모두가 결국 죽음에 이른다. 아무도 영원히 살지 못하며, 두 번의 죽음을 맞이하지도 못한다. 삶과 죽음의 질량은 누구나 같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에게 와닿는 부피는 각각 다르기에, 나는 어떤 죽음을 회상할 때면 가슴이 부풀어 도통 가라앉지 않는 기분이 들곤 한다.


그 중 한 명이 커트 코베인이다. 다들 한 번쯤 들어본, 9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권총자살로 최후를 맞이한 남자. 그는 뮤지션으로서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지만, 인간으로서는 정반대로 최악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그의 유년시절은 몹시 불행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 이후 커트는 반사회적으로 변하며 마약에 빠져 살고, 유일하게 음악에만 의존하며 성장한다. 그에게 음악이란 단 하나의 탈출구이자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이런 음악의 특별함을 세상이 알아본 건지 커트 코베인이 속한 신인밴드 너바나는 고작 600달러를 들여 만든 데뷔앨범 [Bleach]를 내자마자 대형 기획사들의 러브콜을 받는다. 그리고 기획사들 중 하나와 바로 계약을 하게 되는데, 이후 발표한 앨범이 그 유명한 [Nevermind]이다. 이 앨범을 통해 커트 코베인은 엄청난 거물로 성장하고 ‘X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라는 별칭 또한 얻는다. 하지만 그 부와 명성은 오래 가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불행으로 얼룩진 삶을 살았던 그는 세계 최정상의 뮤지션이라는 타이틀을 단 채 이른 생을 마감한다. 커트 코베인은 정상의 자리에서도 여전히 마약 중독자였으며, 여전히 우울했다. 그의 죽음이 전설이 된 데엔 시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모두가 원하는 최고의 자리에서 미스터리하게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이 클 것이다. 사람들은 불행한 천재의 죽음을 애도했고, 동정했으며 동시에 그에 열광했다.


그렇다면 커트 코베인이 있던 90년대를 지나, 작년 우리를 뜨겁게 달궜던 스타의 비보를 기억하는가? 그 날을 잊지 못한다. 추운 겨울, 팬들의 뜨거운 눈물로 녹아내린 12월 18일. 그룹 샤이니의 멤버 김종현이 사망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활발히 활동하며 밝은 웃음을 보였던 그이기에, 단순 사고가 아니라 자신의 결정으로 생을 마감한 종현의 죽음은 팬들에게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다.


팬들 뿐만 아니라 추모의 물결은 다양한 곳에서 일었다. 이승한 평론가는 ‘종현이 남기고 간 빛을 기억하며’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이런 말을 전했다. 우리는, 있는 힘껏 자신의 진심을 말하고 상대를 위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이기에 종현을 사랑했다고. 남은 우리에게 마저 할 수 있는 숙제가 있다면 그가 세상을 대하던 섬세하고도 구체적인 사랑의 불씨를 우리의 삶 속에서 온전히 살려내어 이어가는 것이리라고. 수고했다고.

종현의 이름 석 자엔 모두 ‘쇠 금’자가 들어간다. 그렇기에 샤이니라는 그룹과 참 어울린다고 생각한 적 있다. 팬들의 마음속에서, 무대에서 빛나던 종현. 이제는 정말 별이 된 그에게 고생했다는 짧은 한 마디를 전한다.




27 club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를 아는가? 아니면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로버트 존슨, 브라이언 존스, 제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아니면 이전에 언급한 커트 코베인과 종현을 기억하는가? 이들은 공통적으로 27이라는 나이에 생을 마감한 뮤지션이다. 사인은 보통 약물중독, 자살, 우울증 등이며 죽음의 실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음악계에서는 이렇게 만 27세에 요절한 천재 아티스트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엮는데, 영원히 27세로 남게 됐다는 의미에서 "27 Club"이라고 불린다.


왜 하필 27이라는 숫자일까. 어떤 오컬트적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27이라는 숫자의 숨은 비밀과 공통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다. 27세가 유명 뮤지션들이 마약에 빠져드는 시기라든지, 회사와 계약이 종료되는 시기라든지. 하지만 사람은 언제든지 죽는다. 27세에도, 28세에도, 29세에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실제로 외국의 리서치 결과를 보면 뮤지션의 죽음은 27세보다는 56세나 28세에서 더 많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유는 그저 우연이다. 사람들은 27세에 생을 마감한 유명 뮤지션을 여럿 알았을 뿐이고, 그들의 죽음이 미스터리했기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 천재 뮤지션이 27세에 죽음을 맞이하는, 기묘한 우연이 계속되다 보면 조금씩 필연처럼 느껴진다. 그 과정에서 27이라는 숫자에 매료된 것이다. 사람들은 불행한 천재의 자살을 동경하며, 유명한 예술가의 죽음에는 누구보다 드라마틱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추정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바로 27club이다. 그들은 ‘불운의 천재’라는 숭배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유명한 뮤지션의 불행한 죽음에 깃든 ‘미스터리함’이다. 참 이상하다. 안타깝고 모호한 죽음일수록 사람들에게 더 많은 파급력을 갖는다는 게. 하지만 이 미스터리하고 불행한 죽음을 통해 27club은 더욱이 신화적인 존재로 거듭난다.




커트 코베인의 자필 유서

삶보다 영원한 죽음

커트 코베인의 유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리고 기억해주기 바란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것보다 일순간에 타오르는 삶이 더 괜찮다는 것을.”

이는 커트가 포크 가수 닐 영의 노래 My My & Hey Hey 에서 따온 구절이다. 아직까지 커트 코베인의 죽음에 관한 의견은 여러 가지로 나뉘지만, 수많은 낭설의 진위여부를 떠나 유서 속 이 가사는 심금을 울린다. 이유는 역시 문장이 그의 삶과 너무도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삶보다 영원한 죽음을 믿는가? 27club을 신화적 존재로 만든 것은 그들의 삶 자체와 더불어 죽음의 원인, 영향력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삶과 함께 죽음을 회상하며 죽음까지도 예술의 일부, 더 나아가 그들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정상의 위치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27세의 뮤지션들은 예술 그 자체가 되어 우리의 마음속에, 역사 속에 영원에 가깝게 기억된다.


일순간에 타오르는 삶을 살다 간 27club의 뮤지션들을 더욱 기리며 추모하고, 기억한다. “Memento Mori” 이 단어를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의미와 더불어 ‘당신의 죽음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의미로 세상을 안타깝게 떠나간 27club에게 바친다.



*출처

"종현이 남기고 간 빛을 기억하며", 사설, 『한겨레신문』, 2017.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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