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에 집중하다

일상성을 벗어나 낯섦의 영역으로

by 강센느

누구든 불편함을 싫어한다. 불편한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 불편한 도구, 불편한 작품 등 불편한 것들은 늘 우리의 마음을 찝찝하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준다. 이러한 연유로 우리는 익숙하고 편한 것들에 길들여진다.



편하고 익숙한 것은 우리에게 일상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일상성은 우리의 삶을 점점 단조롭게 만든다. 단조로움은 목적성과 다양성을 상실하게 한다. 목적성과 다양성을 잃은 삶은 어떤가? 그것은 마치 꽉 찬 달걀판에 있는 속 빈 달걀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꽉 찬 달걀판처럼 삶이 충만하고 규칙적인 것 같지만 그것을 막상 깨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달걀판의 한 자리를 차지할 때에만 비로소 가치를 가지는 삶, 혼자서는 그다지 큰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삶.


과거,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낯설게 하기'라는 용어로 예술의 목적성을 설명했다. 자동적이며 습관화된 틀을 깨기 위해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것이 바로 예술의 목적이라는 게 그 요지인데 이러한 맥락에서 나아가 더 확장된 생각을 해보면 우리 삶을 낯설게 하는 것들은 대개 불편한 것들이다. 우리는 불편한 것들을 맞이했을 때만 비로소 일상성을 탈피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누구나 옳다고 동의하던 나의 주장에 누군가 반박을 시작한다면 그것은 분명 불편한 일임과 동시에 내 주장의 부족함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즉, 일상성의 영역이었던 내 주장이 낯선 영역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가 맨 처음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 세상 전체가 불편함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집중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 뉴턴 등의 학자들이 있었기에 우주관은 더욱 과학적으로 진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비단 과학의 영역에만 적용되는 얘기가 아니다. 만나기 불편한 사람, 불편한 장소, 불편한 물건 등 오늘부터 불편해서 피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살펴본다면 삶의 많은 것들이 일상성을 깨고 낯설어질 것이며 그것이 곧 다시 일상성이 되어 삶의 영역을 확장하게 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