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나는 브랜드마케터'였'다. 광고대행사에서, 스타트업에서 여러 브랜드를 담당하면서 브랜드 마케팅이라는 것을 했더랬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광고주 혹은 우리 회사의 브랜딩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답답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내 브랜드 만들면 이렇게 안 해야지"
아마도 그런 생각과 함께 시나브로 창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일하면서 반면교사로 배운 것들만 잘 지켜도 평타 이상의 성공은 할 것 같았으니까.
직장 생활을 돌이켜 보자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브랜드 마케팅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고 또 그나마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기도 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담당하게 됐을 때는 마치 내가 그 브랜드의 대표라도 된 양 주인의식을 가지고 몰입해서 일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럴 때는 몰입한 만큼 성과도 잘 나와서 내부에서 받는 평가도 대개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가 브랜드 마케팅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감'이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잘 알지만 어쨌든 그때는 그냥 내가 타고난 브랜드마케터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근자감 가득한 브랜드마케터로서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나는 퇴사 후 잠깐 쉬어가던 타이밍에 돌연 이쯤에서 창업을 해볼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 생각도 자만감의 발현이었던 것 같다. 애송이 주제에 겁도 없이.
어쨌든 나는 뜬금없이(정확히는 겁도 없이) 창업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결과를 바로 말해주자면 2년간 고군분투한 끝에 망했다. 처음부터 망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나름 직원 없이 혼자서 연매출 3억 원이라는 숫자도 달성해 봤고 다른 브랜드에게 콜라보 제의도 받는 등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결국 나는 지속적인 성장세를 만들지 못했다. 그렇게 브랜드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폐업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전에 회사를 퇴사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막막함이 밀려왔다.
회사는 퇴사하면 퇴직금이라도 주지만 내 회사는 폐업하면 그런 거 없다. 그저 사업하면서 받은 대출과 이자만 남을 뿐이다. 그리고 회사는 퇴사할 때 "이 회사가 나랑 안 맞았을 뿐이야!"라고 정신승리할 수 있지만 내 회사는 그런 거 없다. 그냥 내가 못해서 망한 거다.
나는 한동안 감당하기 힘든 패배감과 좌절감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따금 자만감 가득했던 지난날의 나에 대한 혐오감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브랜드에서도 반면교사로 배울 게 있지 않을까?"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반면교사는 참 좋은 학습법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부정적인 것에 더 강한 자극과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반면교사로 배운 것은 더 강하게 뇌리에 박힌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직장인일 때 짜증 나고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는 순간들에 반면교사를 떠올리며 뭐라도 배우려고 노력했다.
"나는 저 사람처럼 일하지 말아야지", "나는 저렇게 브랜딩 안 해야지", "나는 저렇게 기획서 쓰지 말아야지" 물론 그때 그렇게 배운 것들을 잘 실천했다면 내 브랜드가 망했을까 싶지만... 뭐 어쨌든 반면교사가 좋은 학습법이라는 생각엔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나는 망한 내 브랜드를 통해서 반면교사로 배움을 얻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앞으로 나는 '내 브랜드를 망하게 만들었던 10개의 생각'을 주제로 글을 연재해보려고 한다. 그 10개의 생각을 미리 공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도 브랜드 하나 만들어볼까?
내가 좋아하니까 남들도 좋아하겠지?
누구에게 팔아야 잘 팔릴까?
이쯤이야 조금 바꿔도 괜찮겠지?
이 정도 디자인이면 있어 보이겠지?
이 정도 가격이면 사겠지?
이 정도면 달라 보이겠지?
물 들어올 때 노 젓자!
마케팅 예산 좀 늘려볼까?
내가 이거까지 해야 돼?
어떤가? 그냥 제목만 봐도 '망삘'이 스멀스멀 올라오지 않는가? 이 글은 앞서 말했듯이 반면교사로 배움을 얻고자 쓰는 글이다. 그러니 이 글의 반대로만 한다면 적어도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왜냐면 내가 이대로 해서 망해봤기 때문...)
그리고 돌이켜보니 내가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내 브랜드를 망쳐갔던 순간들은 마치 '냄비 속 개구리'와 같았던 것 같다. 브랜드를 망치는 생각들은 처음엔 달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노우볼처럼 불어나서 브랜드를 뭉개버린다. 냄비 속 개구리가 뜨뜻함에 취해 자신이 삶아지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듯 말이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제목을 <냄비 속에 들어간 개구리>로 정했다. 앞으로 이 개구리가 브랜드를 망쳐가는 모습을 주목하여 반면교사로 배움을 얻으시길 바란다. 그리하여 부디 당신은 냄비 속에 들어간 개구리가 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