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단순한 중고거래앱을 넘어서 국민앱이 된 당근(구 당근마켓)이 '당신 근처의 직거래장터'의 줄임말이라는 사실은 브랜드에 관심이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이라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름의 뜻 그대로 동네 인증을 기반으로 근거리의 사람들과 중고거래를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었던 당근은 사기 중고거래에 지쳐있던 대한민국 국민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동네 사람들과 직거래 위주로 중고거래가 진행되다 보니 사기 중고거래의 위험성은 현저히 줄어들었고 근거리에 살고 있는 이웃들과 물건을 나눈다는 행위 자체가 뭔가 잊고 살던 따스한 정을 다시금 느끼게 해 줘서 당근은 꽤나 빨리 국민앱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역 인증 기반으로 6km 이내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거래할 수 있다는 점이 모든 사람에게 장점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존의 중고 거래 서비스는 전국의 사람들에게 매물을 노출하거나, 전국에 있는 매물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더 많은 거래 가능성이 열려있는 편이었고 그렇다 보니 당근의 이웃 중심 거래를 장점이 아닌 '제약'으로 느끼는 사람들도 왕왕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지역 확장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당근은 이웃과 거래한다는 원칙을 계속해서 고수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결단 덕분에 당근은 꾸준히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고 이제는 MAU(월간 순수 사용자수) 1800만이 넘는 국민앱이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브랜드가 단기간 내에 큰 사랑을 받게 되면 자신감(혹은 자만감)을 갖게 되고 더 나아가 확장을 위한 모멘텀 마련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데요. 이 단계에서 자신들이 시장에서 사랑받을 수 있었던 본질을 잃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가령, 특정 브랜드의 운동화만 전문적으로 취급한 덕분에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던 커뮤니티 커머스가 하루 아침에 모든 운동화 브랜드를 다루는 곳으로 확장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초반엔 매출이 잠깐 상승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커뮤니티를 지탱하던 마니아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종국에는 다른 운동화 커머스와 큰 차별점이 없는 상태에서 가격 경쟁을 하다가 점차 도태될 것입니다. 당근도 만약 한참 성장하던 시기에 확장을 위해 '이웃 간 거래'라는 본질을 버렸다면 분명 국민앱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애초에 사람들이 당근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 '제약' 덕분이었으니까요.
오래 사랑받는 브랜드들은 매스(Mass)보다 니치(Niche)를 꾸준히 공략하여 소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그 팬덤을 기반으로 점차 자신들이 트렌드 자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장에 자신들을 맞춘 것이 아니라 시장이 자신들에게 맞추게 만든 것이죠. 그리고 그 과정에는 누구에게나 적당히 사랑받을 수 있는 '확장성'이 아니라 누군가에겐 '제약'처럼 느껴질 만한 차별점이 필요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줘도 될 만큼 튼튼하고 시즌이 바뀌어도 디자인이 그대로여서 트렌드를 타지도 않는 파타고니아의 옷은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들에겐 '제약'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제약 덕분에 파타고니아는 친환경 브랜드로 오랜 기간 사랑받아왔죠.
자신들의 제품과 소프트웨어가 아니면 다른 브랜드의 제품과는 연결이 잘 되지 않도록 설계한 애플의 '제약'은 어떤가요? 이러한 제약 덕분에 애플은 다른 브랜드 제품보다 더 나은 UI/UX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가 되었죠.
이처럼 브랜드의 제약은 곧 브랜드의 차별성이 됩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면 모두에게 맞추려고 하지 말고 전 세계 사람들이 제약이라고 느낄지언정 단 100명이라도 "이 브랜드가 없으면 안 돼"라고 느끼도록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점차 제약이라고 느꼈던 그 요소는 브랜드의 강력한 차별점이자 매력이 될 것입니다. 당근이 단호하게 지켜냈던 '이웃 간 거래'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