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ne을 찾아서

티슈 제작기 ⑩

by sen

⑨편에서 이어집니다


사실 『티슈』를 만들기 전까지는 ‘zine’이라는 것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zine과 꽤 가까워진 기분이다. 마치 원래부터 '이쪽 세계' 사람이었던 것처럼 zine을 찾아다니고, 가볍게 만들어 보기도 했다.


zine은 사실 꽤 헐렁한(?) 개념이라, zine을 분류하거나 판별하는 엄격한 기준이 있지는 않다. “그게 책이라는 보편적 인쇄 매체와 뭐가 다르냐?”라고 묻는다면, 사실 모양새만 놓고 보면 딱히 할 말이 없다. 단지 좀 더 [실험적] 일 수 있고, [주제와 제작 방식이 자유] 로우며, [재료의 제약이 적]고, 그러다 보니 [조악하다] 고도할 수 있으며, [격식이 없]을 수 있으면서도, [비상업적]인 경우가 많다. [특정 주제]로 [정기적]인 발행을 하면 그것은 ‘Magazine’이라 불리지만, zine은 그런 제약이 없기에 구분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zine을 접할 수 있는 ‘독립 서점’이나 ‘zine 페어’에서도 zine을 돈 주고 구매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에, zine이 [비상업적]이라는 명제는 모순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티슈』와 함께 방학을 보내며 zine에 없던 관심이 생긴 건 사실이다. 특이한 인쇄 제작물이 많다는 곳을 일부러 찾아다니기도 했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몇 군데를 소개해 보려 한다.



➊ POST POETICS (포스트 포에틱스) https://www.instagram.com/postpoetics/

첫 소개부터 지금은 없는 곳을 언급하는 것이 죄송하지만, 그만큼 사라져서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한남동에서 오랜 시간 여러 카테고리의 해외 아트북을 취급했다. 대부분 외국어로 되어 있어 읽기에 쉽진 않았지만 국내에서 접하기 쉽지 않은 서적이 한 무더기였다. 인스타그램에선 자체적으로 큐레이션 한 서적을 소개하기도 했다. 영업 종료를 예고한 이후 할인 행사를 진행했고, 참새가 떡방앗간을 못 지나치듯 여러 번 방문해 맘에 드는 책을 담아 왔다. 올해 6월 29일을 끝으로 영업을 종료한 상태다.




➋ 더북소사이어티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9길 25 지하1층

경복궁 인근에 있는 독립서점이다. 디자이너들과의 대화에서 zine에 대한 토픽이 나오면 거진 첫 순번으로 언급되는 곳이기도 하다. 포스트 포에틱스가 사라진 지금은 더욱 각별하다. 내부가 넓지는 않지만 해외 서적부터 특이한 zine까지 다양하게 갖춰져 있으며, 특히 실험적인 시각 제작물이 많다. 관광객이 많은 지역이라 그런지 외국인 손님도 꽤 자주 찾는 듯하다.



최근에는 '( )Book ( )Book Festival'을 진행했다. 전 세계 10여 개국에서 온 39개 이상의 출판사가 주한독일문화원에 모였다. 포럼, 북페어, 전시 등 볼거리가 많은 행사였다. 당연하게도 흥미를 끄는 zine이 참 많았고, 고르고 골라 몇 권을 담아 왔다.




➌ B Platform (비플랫폼) 서울 마포구 독막로2길 22

합정역 인근의 독립서점이다. 디자인, 제작, 출판 등을 주제로 워크숍도 진행한다. 특이한 zine이 있는 곳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한 곳이다. 국내외 그림책도 꽤 비치되어 있다. 이곳 역시 한 번 들르면 무언가를 사게 되는 공간이다. 벽면에 각 품목의 가격이 적혀 있어 고르는 데 도움이 된다.




유어마인드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라길 10-6 2층 우측

연희동의 독립서점.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zine이 많고, 예쁜 책갈피와 필기구도 구할 수 있다. 이곳에 오면 내가 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다양한 인쇄물과 나무 가구로 가득한 공간이 주는 환상인지, 아니면 내가 ‘이 세계’의 이방인이어서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 비플랫폼과 마찬가지로 여러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이 가게를 통해 유입된 여행자는 워크숍을 거쳐 구매자의 입장에서 생산자의 입장으로 전환된다. 일종의 생태계가 만들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 https://www.instagram.com/unlimited_edition_seoul/

2009년 1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온 독립출판·아트북 축제다. 다소 독립서점 위주의 소개가 되어 가는 와중에,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독립출판 페어를 빼놓을 수 없었다. 매년 11월경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다. 올해 역시 「제17회 언리미티드 에디션 - 서울아트북페어 2025」가 예정되어있다. 무료 행사답게 점심시간이 지나자 문 밖으로 긴 줄이 이어졌던 기억이 있다. 규모도 크고, 구력이 쌓인 행사답게 볼거리가 풍성하다.




러브앤프리 광주 남구 천변좌로418번길 17 1층

정말 우연히 들르게 된 광주의 서점이다. 여기는 zine보다는 정석적인 독립서점에 가깝다. 큐레이션 된 책마다 감상이나 책의 일부 내용을 적어 붙여 둔 것이 인상 깊었다. 다정한 안내 덕분이었을까, 그날 계획에 없던 욘 포세의 작품을 구매했다. 서점의 뒷문으로 나가면 2층으로 이어진 통로가 나온다. 올라가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구옥 특유의 정겨운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셰입오브타임 서울 서초구 양재천로7길 1 지하층

양재시민의숲 인근의 서점. 1층에는 카페가 있다. 어떤 독립서점이든 책의 구성이나 인테리어에는 어느 정도 운영자의 취향이 반영된다고 믿고 있는데, 책을 둘러보며 문득 전시장에 온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잘 보이는 곳에 놓인 책부터 책꽂이에 꽂힌 책까지 취향에 아주 잘 맞았다. 역시 참지 못하고 몇 권을 사 들고 나왔다.




드래곤힐프린트샵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176 스타빌딩 1층 좌측

‘삼각지역 2번 출구 1초 컷’이라고 네이버 지도에 소개된 대로, 역에서 가깝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가깝긴 한데 들어갈 수가 없다는 거다. 문을 안 여는 날이 더 많으니, 알아보고 방문하는 게 좋다. 이곳은 지금까지 소개한 공간들과는 다소 이질적이다. zine을 ‘문화’나 ‘정신’ 같은 것으로 본다면, 그 자체인 곳일지도 모른다. 외관만 봐서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기 어렵다. 다양한 제작물들이 널부러져 있고, 간단한 음료나 요깃거리도 판매하며, 독특한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단기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8군데의 zine spot을 소개했지만, 소개한 곳 외에도 zine을 접할 수 있는 곳은 많다. 더 유명하지만 누락한 곳 역시 있을 수 있다. 나 자신 역시, 앞으로도 찾아 헤멜 듯하다.


zine이든 book이든 중요한 건 ‘내용’이다. 단지 zine은 내용에 ‘보다 적합한 제작’을 하는 것에 포커싱이 더 맞춰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book이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다면, zine은 ‘보는 게’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만듦새’에 대한 레퍼런스를 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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