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쓸 수 없었던 이유,
일상을 지내며 틈틈이 수집한 관념과 단어를 모아놓은 이곳. 넘실대는 파도처럼 생각의 물결이 일렁이는 이곳, 사유의 바다. 무언과 유언이 즐비한 이곳에서 나는 부표처럼 둥실둥실 떠다니다 그 순간 떠오른 기억에 불어넣을 관념과 단어를 힘껏 낚아 올린다. 낚아 올린 그것들을 엮는 것 또한 나의 몫. 날실과 씨실을 엮어 천을 만들어내듯, 기억과 관념과 생각과 단어와 모든 걸 엮어서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존재로서의 나의 몫이다.
만든 문장을 한 땀 한 땀 꿰매어 옷으로 만들고, 그 옷을 입은 채 내 몸의 모든 감각을 차근차근 건드려보았다. 머리 정수리에서부터 손끝, 발끝 그리고 내 안의 심연 저 끝까지. 더는 쓰지 않아 먼지가 쌓인 언어들의 지층에도 물론. 나의 모든 곳에 닿은 그 감각은 극심한 몸서리와 함께 눈앞이 깜깜해졌다 환해지는 경험을 선사했다. 아찔하지만 짜릿했던 경험. 그래, 나는 이런 걸 필요로 했다. 나와 문장이 하나가 되는 공명의 시간. 이 시간을 갖고 나면 어떤 진실이 다가와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이 시기에 문장들이 다치는 건 당연했다. 무수히 오가는 여러 목소리에 생채기가 났다거나, 찌그러지고 닳고 부스럼이 생기고. 이럴 때 나는 능숙한 숙련공처럼 섬세하게 문장을 고쳐나간다. 다른 관념으로 덧대고 단어를 붙이고 생각의 물결에 한번 담갔다 꺼내어 촘촘한 짜임새를 만들기. 이렇게 문장은 다른 형태의 새로운 문장으로 바뀐다. 이리저리 부딪치며 만나는 다양한 문장의 모습. 저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변모한 모양새에 나는 또 감탄을 하고 만다.
인고의 시간을 함께 버텨 온 문장이란 무형의 벗들. 그들을 위해 나는 문장의 모습을 입으로 소리 내어 읽지 않기로 했다. 감히 누군가가 읽힐 수도, 누군가에게 보일 수도 없는 존재. 그래서 오로지 내 안에서만 읽히고 나에게만 보이는 존재. 이들에 대한 행위를 나는 ‘침묵’이라 부른다.
사실, 나는 아직 그 어떤 것도 내뱉은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