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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윤당 Dec 30. 2022

나는 무얼 하는 사람일까 (2)

저도 '대리'와 정규직이라는 것을 해보는군요.

1편 <나는 무얼 하는 사람일까 (1)

https://brunch.co.kr/@sense-it/25






프로모션 마케팅 대행사 대리 (2019)


방송작가 선배가 내게 이 회사를 추천한 이유는 이 회사에서 대본을 전문적으로 쓸 작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원랜 이 선배가 회사에서 일감을 받아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선배도 기존에 하고 있던 프로그램 일정 때문에 병행하기 힘들어 다른 작가를 소개해준다고 회사에 말을 해뒀단다.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포지션이었고, 대본만 쓰는 거라면 나 또한 일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아 하겠다고 답했다.


H사가 주 고객사였던 이 회사에서는 H사가 진행하는 프로모션의 일부를 맡아하는 일이 많았고, 나는 상황에 따라 리소스 전체를 쓰거나 서포트만 하기도 했었다.



이벤트 내 행사 진행 대본 작업

- 영화인들을 위한 특별 행사 내 주최 측 인사말 대본 작업


이벤트 기획, 제작

- 대학생 해외봉사단 창단 기획, 진행

    : 수료식, 발대식 전체 콘셉트 및 세부 프로그램 기획

    : 수료식, 발대식 상영 영상 콘텐츠 기획, 제작 관리

    : 수료식, 발대식 진행자 대본 작업 및 리딩


브랜드 기획, 제작

- 모빌리티 브랜드 브랜딩 기획

    : 브랜딩을 위한 소셜 콘텐츠 기획, 제작

- 의류 브랜드 리브랜딩 기획

- 브랜딩을 위한 자료조사


세미나 기획, 제작

- 자동차 전문 세미나

    : 오프라인 세미나 진행 후 온라인 유튜브 콘텐츠로 재제작

    : 세미나 제작 총괄 (운영 제외)


제안 PT 기획, 제작

- 제안 PT 콘셉트 기획

- 콘셉트에 맞춘 카피라이팅, 워싱

- 구현 가능한 아이템 서치 후 구성



맡았던 업무들을 쭈욱 나열하고 보니까, 사측에서 요청한 내용과는 달리 그 이상의 것들을 했다. 와, 이걸 잊고 있었네. 어느 곳이던 요청한 일만 시키는 법은 없다는 걸 말이다. 1인 사업 잠시 하고 있었다고 그걸 잊었다니. 그럼에도 저 업무들을 해낸 내가 신기했다. 아니, 한 번은 이건 아니지 않냐고 말을 할 법도 한데 내 입에선 아니오가 나온 적이 없었다. 그냥 '해봐야죠'였다. 방송가에서 구른 10년이란 경력 덕분인지, 갑작스러운 상황도 늘 예상했단 듯이 움직였던 내 모습. 그래서였나. 회사에서는 내가 펼친 역량과 성과에 대한 보답으로 당시 받던 월급의 25%를 인상시켜 주었다. 이에 더 잘할게요! 하는 마음으로 계약 기간인 12월 말까지 맡은 바 최선을 다했다.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시원하고 홀가분했다. 인연이 또 닿는다면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실제로, 이 회사에서 맡았던 프로젝트 중 하나는 몇 년이 흐르고 난 후 다시 맡게 되었다. 물론 진행하는 회사는 달랐고, 운영하는 사람도 다 달랐다.)


그리고 2020년을 맞이했다.






타이밍이란 이런 것일까. 2020년엔 공방에 집중해야지 하던 찰나에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앞서 대행사를 소개해줬던 작가 선배가 이번엔 어린이 유튜브 콘텐츠를 (애니메이션과 어린이 동요 위주 콘텐츠) 제작하는 제작사에 작가가 필요하단 이야기였다. 어린이 콘텐츠는 해본 적이 없는데 정말 내가 괜찮겠냐 물으니, 너라면 이것 또한 잘할 거라 답했던 선배. 그래서 나는 선배의 말을 믿고 그 제작사의 작가로 출근하기로 했다. 제작사의 제안은 정규직. 다행히 겸업금지 조항이 없어서 공방 운영에도 무리가 없었고 하니.


사실, 어린이 유튜브 콘텐츠 제작사에 들어가는 걸 망설여했었다. 선배의 이야기를 믿는 건 둘째 치고,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걱정이 됐다.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들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정확히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출 수 있을까. 그렇게 두려움 반 긴장 반 안고 시작한 새로운 커리어는 걱정했던 것과 달리 신나고 즐거웠으며,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 나를 인도했다. 아이들이 무엇에 관심이 많은지,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 특히 많이 재생하는 영상은 무엇인지,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트렌드는 무엇인지 등등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고나 할까. 어렸을 적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겠다며 일요일 오전 8시도 채 안 돼서 일어나 TV를 빤히 보던 내가 떠오르기도 했고.



어린이 유튜브 콘텐츠 제작사 작가 (2020)

- 어린이 유튜브 콘텐츠 기획, 제작

    : 자체 제작 동요 재생용 영상 콘텐츠 제작 수주

    : 코로나19 관련 안전 콘텐츠 기획, 제작

    : 콘텐츠 제작을 위한 어린이모델 섭외, 매니징

    : 운영 유튜브 채널 유입용 콘텐츠 기획

    : 업계 시장 트렌드 조사 및 분석

- 제작사 모기업 운영 브랜드 홍보 보도자료 작성



내부 마케팅 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작사의 모기업이 운영하는 브랜드 홍보용 보도자료를 썼던 이유는 브랜드의 주요 캐릭터가 어린이 유튜브 콘텐츠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동일하다는 게 첫 번째였고, 방송가에서 숱하게 보도자료를 써왔기 때문에 브랜드의 소구 포인트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잡아 외부에 알릴 수 있다는 게 두 번째였다. 그래서 한동안 별명이 "보도자료씨"였다. 공장을 가동한 것처럼 계속해서 쏟아냈었다.


입사한 지 3개월 조금 지났을까. 이제 막 재미가 붙었을 무렵쯤, 팀장님으로부터 제작사 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19의 창궐로 제작사 모기업이 운영하는 사업체의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일부 사업체를 정리해야 한다는 것과 정리 대상에 우리가 포함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게 어딨 냐며 왜 우리냐고 했지만 회사에 뭐라 말하기는 어려웠다. 사실, 코로나19 때문에 나 또한 공방 운영에 빨간불이 켜져서 세상 모두가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가뜩이나 입사 기간도 짧아서 실업급여를 받을 수도 없는데 어떡하지?'

'뭐, 될 대로 되겠지.'


이미 결정은 내려졌고, 나는 이를 실행으로 옮겨야만 했다. 정말 굵고 짧았던 4개월의 근무 기간. 첫 정규직의 맛이 이렇게나 씁쓸할 줄이야. 그런데 한 달 후, 나는 이 제작사의 모기업으로 다시 입사를 하게 된다.

내부 마케팅 팀 대리로. 작가에서 대리로. 재입사를 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보도자료를 잘 쓰셔서요."




(*다음 편에 계속)

https://brunch.co.kr/@sense-it/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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