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작가 이윤기

by 하 현


몇 주 전에 신화에 관한 수업을 할 때 잊고 살던 이윤기작가가 다시 떠올라 그분의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10년 전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집안 어른이 돌아가신 거보다 더 슬펐던 기억이 난다. 몇 년 전까지 잠들기 전에는 늘 신화 책을 읽으면 잠이 왔다. 부정(父情)을 모르고 자라서인지 그분 같은 아버지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의 느낌을 받으며 오지 않는 잠을 청했었다. 누구의 아버지가 누구고 어머니가 누구고 부인이 누구고.. 누이가 부인이 되고 아들과도 부부가 되고... 족보가 두 단계만 나가면 얽히고 그러다 보면 길을 잃고 졸리게 된다.


이윤기라는 작가를 언제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장미의 이름>을 읽었을 때, 이런 어마어마한 작품을 누가 번역했을까 했을 때였던 거 같다. 좋은 작가를 알게 되면 그 작가의 모든 책을 읽어야 직성이 풀린다. <장미의 이름>으로 시작했던 움베르토 에코는 <푸코의 진자>에서 완패했다.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책이다. 아직도 갖고 있으나 도전할 때마다 좌절을 맞보게 하는 무적의 책이다. 그 책 역시 이윤기님의 번역이다. 나 역시도 번역을 하고 싶은 일본 작가가 있기에 번역에 관심이 많다. 번역은 상대 나라 언어실력보다 국어실력이 더 요구되니 내 번역의 길도 멀고도 먼 이야기다.


EBS인가에서 멜빵바지를 입고 나오셔 신화의 이야기와 번역의 강의를 하신 적도 있었다. 잘 생긴 남자만을 좋아하는 내 취향과는 동떨어진 그저 아저씨의 외모지만 풍기는 아우라가 좋았다. 나이를 먹어도 시들지 않는 순수함을 가득 담은 눈에서 문학의 열정을 느낄 수 있어 더 존경하게 되는 시간들이었다. 그분의 단편소설도 좋았고 수필도 좋았다. 담백한 문장과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염치와 자세를 늘 이야기하는 주제도 좋았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인간이 아니라는! 1947년생이니 더 사셔도 좋았을 것을! 나의 사랑하는 34년생인 노모가 아직도 잔소리 작렬하며 살아계신데 말이다.


사실 신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허무맹랑하고 읽어도 집중이 되지 않는다. 성경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성경 쪽이 더 리얼리티는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아무리 읽어도 마냥 그 자리다. 덕분에 잠을 청하는 데는 정말 좋다. 뭐라는 거야를 열 번 쯤 생각하면 스르륵 잠이 든다. 드라마반 숙제 덕분에 잊고 살았던 신화와 이윤기님이 다시 머릿속을 맴도는 화두가 되었다. 신화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 쓰기! 남들이 아는 만큼 신화는 알고 읽었지만 체화가 되지 못한 이야기를 소재로 쓸 만큼 난 영악하지 못 하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가져다 쓸 수 없다. 물론 지극히 작은 하나의 포인트를 가져다 쓰라는 것도 안다.


우리 것이 되었든 남의 것이 되었든, 신화는 그런 세계에 핀 꽃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에게 신화를 읽는 일은 꽃을 통하여 그런 세계의 진상에 접근하는 일이다.

「꽃아 꽃아 문 열어라」 315쪽


미궁은 거기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화도 그 의미를 읽으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뜻에서 신화는 미궁과 같다. 신화라는 미궁 속에서 신화의 상징적인 의미를 알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방법이 있다. 독자에게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상상력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 1 들어가는 말 중


요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신화라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인간의 본디 모습을 찾아내라는 것이리라. 우리도 벌써 흔히 하고 있지 않은가.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옛날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뭘까? 지금을 사는 젊은이들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더 넓은 시각을 주고 싶어서가 아닐까? 경험에서 깨달은 다양성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그걸 듣는 젊은이들은 자신의 판단과 선택을 공격받는다고 생각해서 불편하다는 것도 물론 안다. 하지만 인간의 숙명은 어느 시대나 같고, 선택의 폭이 좁은 것은 불변의 진리다. 세상 살아봐야 새로운 것이라는 것은 기술에 불과하다. 그 기술 역시 인간의 마음과 진리추구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금의 우리나라의 문화라는 것은 어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역시 유럽이 아닐까 싶다. 그들이 먼저 총과 무기를 발명해 내면서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그럼 그들이 문화의 기원이며 정수라고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를 따라 가다보면 만나는 것이 성경과 그리스, 로마 신화이다. 언어와 사고와 인간의 윤리, 도덕까지 원천은 거기에 있다. 그걸 알기에 더 다가가지 못하는 한계를 느낀다. 어쩜 더 오랜 시간 우리를 지배했던 중국 사상을 먼저 공부하고 싶다는 반발심이 더 클 지도 모르겠다.


또 너무 멀리 가고 있다. 내 삶, 내 시간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면서 자꾸 허망한 것들을 쫓고 있다. 난 주어진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구상하면 그뿐이고 이윤기님의 사망 10주년을 슬퍼하면 된다. 공교롭게도 2010년 8월 27일에 돌아가셨다. 생판 남인 내가 슬퍼하는 방법은 그의 작품을 더 많이 읽고 체화하여 내 글 속에 남기는 일일 것이다. 그 안에는 <푸코의 진자>도 물론 포함되니 요원한 숙원이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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