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하다가 어제 영화 봤어. 라고 하면 학생들은 누구랑요? 혼자요? 한다. 그럼 난 발끈해서 아니 왜 혼자야? 내가 그렇게 친구가 없어 보이니? 라고 묻는다. 학생들은 웃으며 에이! 쌤 친구 없잖아요! 한다. 젠장! 이놈들은 너무 날 잘 알고 있다. 작년에 어떤 남학생은 쌤! 모쏠이죠? 라고 물어 왔다. 아직까지 그 당시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이 나이에? 좋아해야하는 걸까? 아님 부끄러운 일인 게 맞는 거지?? 여러 감정이 동시에 일어나 순식간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덩치가 크고 직설적이라 이야기를 하면 재밌다고 하는 사람이 반이고 재수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반인 거 같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5학년 때 완성된 키라 그때 이미 또래 아이들과는 머리 하나 더 차이가 있었다. 저학년 후배들은 선생님인 줄 인사를 했다. 버스를 타면 늘 운전수 아저씨들이 노려보곤 했었다. 덕분에 늘 구부정하게 키를 줄이려고 했다. 되도록 사람들 눈에 안 띄고 싶었다. 친구들도 키를 따라 정신과 마음도 성장하는지 영 어리고 재미없었다. 그래서 시시했다. 싫증을 잘 내고 재미가 인생 최대의 목표인지라 텔레비전과 책이 훨씬 좋았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나보다 더 큰 아이를 만났다. 반가웠다. 금세 친구가 되었다. 번호 1번을 뺏겨 보긴 처음이었다. 그 친구랑 있을 때는 더 이상 구부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뒤쪽에 처박혀 있지 않아도 되었다. 같이 몇 달을 어울렸다. 하지만 그 친구는 책을 별로 읽지 않았다. 얘기할 것이 점점 없어지고 그 친구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서로 다른 반이 되어 자연스레 멀어졌다.
고등학교 때는 이사를 해서 내 존재를 모르는 곳에서 다녔다. 아직도 제일 큰 키라 선생님들의 주요 타킷이 되었다. 이미 그 시절에도 일진 비슷한 집단도 있었다. 요즘처럼 화장을 하거나 교복을 줄여 입지는 못해도 남자랑 미팅도 하고 나이트도 가고 하는 애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주로 그런 노는 애들은 키가 커야 가능하므로 난 늘 요주의 인물로 찍혔다.
여고 1학년 때 우리 반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 5명을 모아서 망월회를 하자고 제안했다. 한 달 동안 책을 한 권씩 읽고 그 달의 마지막날에 모여서 토론을 하자고 했다. 똘똘한 친구들이었다. 토론도 거의 1년간 계속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헤세의 지와 사랑, 카뮈의 페스트, 카프카의 변신 등 뭐 그런 소위 문학소녀임네 하는 종류의 책들을 읽었던 거 같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중 한 명과 나누었던 이야기다. 우리 중에 제일 공부를 잘 하는 친구였다. 하품을 하지않아 내가 물었다. 넌 왜 하품을 하지않니? 그 친구는 창피한 듯이 나를 보지도 않으며 해이해질까봐.. 라고 대답했다.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뭐지? 인간의 자연스런 생리현상을 억지로 참아가며 해야할 공부라면 난 반대일세!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친구와는 색다른 약속도 했었다. 자신과 내가 지와 사랑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같으니까 대학을 가고 헤어지더라고 몇 십년 후에 서로 찾아서 만나 확인해 보자고! 어떤 삶을 서로 살았는지!
몇 년 전에 대학교수가 되어 있는 그 친구를 수소문해서 만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보험외판원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눈치였다. 뭐 차라리 잘된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철딱서니 없이 자리 못 잡고 살고 있기는 마찬가지인 내 인생을 뭐 자랑할 일도 아니다 싶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그 친구의 눈부신 활약상을 보며 나와 나누었던 이야기는 까맣게 잊어서 성공했나 싶기도 하다.
친구의 정의는 차고 넘치지만 내 마음 속의 친구란 존재의 정의는 단순하다. 그저 지금 내 자신이 집중하며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 진솔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서로의 현재만 알아서는 상대의 이야기를 다 이해할 수 없다. 살면서 어릴 적부터 친구라며 소개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도 부럽다. 물론 여러 종류의 친구가 있다는 것은 안다. 같이 놀기만 하는 친구, 쇼핑만 같이 하는 친구, 공부만 같이 하는 친구, 그냥 수다만 떠는 친구... 나도 물론 그런 종류의 친구는 꽤 있다.
드라마를 공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몇 명에게 했을까? 그 이야기를 한 사람들은 정말 내 친구인걸까? 드라마를 공부하면서 느끼는 많은 것들 중 제일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내 이기심이다. 친구도 내 이기심이었고 드라마도 내 이기심으로 쓰고 있다. 소통은 양방이어야 하는데 늘 일방을 주장하고 있다. 이기적 사귐, 이기적 글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틀을 깨어야 어딘론가로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쉽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