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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Nov 04. 2024

귀여운 나를 보고 행복하란 말이에요

7개월 21일



길가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도, 그들은 그저 바라보면서 연초를 계속 태운다. 담배를 등 뒤로 숨긴다거나 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는 법이 절대 없다. 물론 그런다고 해도 담배 냄새는 여전하겠지만, 적어도 사람이면 그 정도 EQ는 지니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쩌면 역시 길빵 흡연자는 지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건 생각조차 못했고, 그래서 애초에 길거리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자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전자담배로 길빵을 하면 냄새도 연기도 안 나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더 환장할 노릇인 걸. 전자담배 흡연자한테서는 대마초 피우는 냄새처럼 요상한 향이 나서 더 찜찜하다. ……그런데 내가 대마초 냄새를 어떻게 알고 있지?


아무튼 흡연자를 길에서 마주치면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그저 전속력으로 유모차를 밀며 담배 연기 구간을 주파한다. 마음 같아서는 정신이상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식칼을 휘두르며 욕을 날리고 싶다. 하지만 길빵러 중에는 진짜 정신이상자도 있을 수 있으니 망상으로만 남겨두었다.


이유식을 시작하고 나서는, 흡연자를 보면 또다른 생각이 하나 더 든다. 저 사람들도 어렸을 때 엄마가 이파리 채소랑 노란 채소, 소고기, 곡물, 골고루 섞어 먹이려고 엄청 노력했을 텐데. 소고기는 한우로 사다 먹이고, 그 당시 알레르기 예방 지침에 따라 계란은 흰자 노른자 구분해서 순차적으로 먹여주고. 그래놨더니 지금은 저렇게 담배를 태우고 있군…….


 - - -


아이를 데리고 스타벅스에서 베이글 모닝 세트를 먹었다.


만7개월이 되었더니 이게 되는구나 싶었다. 예전 같았으면 어디 카페 찍고 오기만 해도 졸음을 참지 못하고 아기띠에서 이미 잠들어 있었을 텐데. 아이에게는 크림치즈 베이글 대신에 치발기를 유모차 핸들에 매달아서 놀게 해주었다. 이왕 온 김에 유모차 말고 유아용 의자에도 앉혀주었다.


베이글이 딱 두 입 남았을 때 쯤에 아이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앞을 보게끔 안아주고는 카페 여기저기를 구경시켜 주었다. 화장실에도 괜히 가서 거울을 보며 놀아주기도 했다. 그런데 거울은 좋아했어도 기저귀 갈이대는 역시 싫어했다.


차가워서 그런가? 떨어질 것 같아서? 아무튼 화장실의 기저귀 갈이대는 어린이대공원과 카페를 막론하고 다 반응이 별로였다. 심지어 이번에는 눕히는 게 아니라 앉혀서 거울을 보게 해줬는데도 울었다.


얼른 안아들어서 기저귀 갈이대를 다시 접었다. 자리로 돌아와 남은 베이글 두 입을 입안에 쑤셔넣었다. 마침 유아용 의자에 바퀴가 달려있어서, 의자를 제자리로 가져다 놓는 김에 아이를 앉혀주어서 드라이브를 시켜줬다.


 - - -


짧은 카페 나들이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아이를 재워줬다.


아이는 이제 깨어있는 시간이 2시간도 아니고 2.5~3시간에 달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는 6시 40분쯤 깨었는데 9시 40분에 잠들었다. 그래도 한 번 잠들면 낮잠 시간은 여전히 1~1.5시간 정도였다. 그 사이에 부지런히 집안일을 해야 했다. 예전처럼 책 읽고 글 쓰면서 여유 부릴 시간이 없었다. 정신을 놓고 노닥거리면 그 댓가는 정리되지 않은 하이체어와 함께 다가오는 다음 수유텀었다.


아이 방에서 살그머니 빠져나와서 주방으로 향했다. 카페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사 온 재료들을 조리대에 꺼냈다. 일전에 양파, 배, 사과. 라구소스 만드는 법을 참고해서 양파소스를 만들었는데, 토마토랑 섞고 소고기랑 같이 내어주었더니 효과가 괜찮았다. 그런데 아무리 괜찮았어도 9월 15일에 만든 것을 10월 중순까지도 주고 있자니 양심에 찔려서 새로 만들기로 했다.


우선 과일부터 다듬었다. 지난번에는 양파부터 했더니 칼과 도마에 양파 냄새가 배어서, 이유식 만들다가 남아서 따로 먹으려고 깎아놓은 과일에서도 양파 향이 났다. 먼저 배와 사과를 베이킹 파우더와 흐르는 물로 씻었다. 깎을 때는 감자칼로 돌돌 깎았다. 과도로도 잘 깎고 싶었지만 몇 번 해보고 내 능력 밖임을 깨달았다. 잘 개발된 도구가 있다면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도 좋으니까.


양파는 깐 양파 한 알이면 충분했다. 1,800원 하는 양파 한 알을 흐르는 물에 씻어서 네모네모로 대강 썰었다. 모든 재료는 다듬어지는 즉시 자기 자리로 보내줬다. 도마 옆에는 물 120ml와 함께 실리콘 찜기 받침이 장착된 밥솥 내솥과 락앤락 두 통이 있었다. 배와 사과는 각각 1/4씩 잘라서 밥솥에 넣어주고, 나머지는 락앤락에 담았다. 배도 그렇고, 익힌 사과도 그렇고,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을 일으킨다고 해서 적당히 넣었다. 양파는 모조리 밥솥 행이었다.


 - - -


오늘도 밥솥은 두 탕을 뛰었다.


양파 소스 재료들을 고압찜으로 15분간 쪄내는 동안, 사과 하나를 더 깎아서 락앤락에 담았다. 이번에는 도마와 칼을 깨끗이 씻었으니 지난번처럼 사과에 양파 향이 밸 일은 없었다. 그리고 밥솥이 완료를 알렸을 때, 양파 소스 재료들은 쵸퍼 통으로 옮기고 실리콘 찜기 받침과 내솥을 닦아서 바로 사과를 쪄냈다.


중간중간 찜을 기다리면서는 찜이 완료되기 전까지 마칠 일과 찜이 다 되고 나서 바로 해야 할 일들을 적어두었다. 아이가 만2개월이 되었을 무렵이었던가? 냉장고에 말도 안 되게 커다란 화이트보드를 붙여놓고, 생각나는 것들을 수시로 적어두기 시작했다. 7-11-3-7 하는 수유텀이라든지, 아침저녁 루틴이라든지. 요즘에는 이렇게 그때그때 해야 할 일을 등록하고 지낸다.


 - - -


파워풀하고 대용량인 밥솥 덕분에, 아이가 낮잠에서 깨기 전까지 양파 큐브와 사과 큐브를 모두 만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친정 어머니께서 와 주셨을 때라든지 아니면 남편이 아이를 봐 주는 주말에 주방에서 조리도구들과 씨름하며 시간이 다 갔을 텐데, 장족의 발전이었다.


요령이 없을 때는 시간 잡아먹을 요소가 한둘이 아니었다. 사과를 과도로 깎느라 오래 걸려서, 내솥과 락앤락을 재료 다 다듬고 나서 준비하느라 도마가 좁아져서, 과일도 식칼로 턱턱 썰면 되는데 굳이 과도로 한답시고 힘이 들어서, 고압찜 말고 무압찜으로 하느라 제대로 안 쪄져서, 실리콘 받침 대신 면포를 까는 바람에 태워먹은 양파를 골라내느라…….


주말에는 아이가 낮잠을 자는 1시간과 남편이 아이를 봐주는 1시간을 합쳐서, 2시간 동안 네 가지를 만들었다. 양배추 큐브, 당근 핑거푸드, 브로콜리 핑거푸드, 소고기 두부볼. 소고기 두부볼은 처음 만드는 거라서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레시피를 차근차근 따라갔더니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때도 화이트보드가 활약을 했었다. 맨 먼저 브로콜리를 스텐볼에 물 담아서 담가두고, 그 다음에 두부를 뭉개서 체반 위에 올려두어 물기를 짜기 시작한다. 그 다음 양배추를 먼저 찌고, 양배추가 쪄지는 사이에 손 많이 가는 흙당근을 다듬어서 한 쪽에 모아둔다……. 덕분에 ‘아차 브로콜리 먼저 담가놨어야 하는데!’ 등의 허둥지둥할 시간을 줄여줘서 참으로 요긴했다. 이 외에도 평소에는 하루이틀 내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식 큐브라든지, 정리해야 할 것, 친정 놀러갈 날짜 등도 적어두면서, 화이트보드는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역으로 지내고 있다.


  - - -


아이가 2시간 넘게 자길래, 쪽쪽이를 뺐더니 바로 깼다. 대체 왜 뱉지 않는 걸까. 어떻게 하면 1시간 반을 입에 문 채로 잠들어 있을 수 있지? 평소 같았으면 잠들었을 때 살그머니 빼주는 도전을 해봤겠지만, 이유식 만드느라 이번만큼은 본인 하고 싶은대로 하게 해주었다.


아이를 트립트랩에 앉혔다. 바닥에는 푸드캐처 캐치가 깔려 있고, 앞치마는 유튜브에서 본 대로 트립트랩 트레이와 커버 사이에 끼워뒀다. 물티슈, 건티슈, 크리넥스, 손수건, 닦을 수 있는 것들도 종류별로 모두 구비했다. 나름대로 깨끗한 이유식 시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알아보고 준비한 세팅이었다.


특히 캐치는 7~8만원 거금을 들여서 구매한 준비물이었다. 아기들은 손을 움직이는 게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음식이 장난감과 구분도 잘 안된다. 그래서 이유식이라고 준비한 것을 집어다가 바닥에 내팽개치거나 혹은 실수로 떨어뜨리곤 한다. 아니, ‘반드시’ 떨어뜨린다.


횟집비닐을 까는 집들이 많은데, 나는 도저히 그때그때 말끔히 청소할 자신이 없어서 진작에 캐치를 샀다. 덕분에 바닥에 튕겨져 날아가는 낙하물을 방지하고, 청소도 때에 따라서는 나중 일로 미룰 수 있게 되었다. PPL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늘어놓고 있는 이유는, 오로지 다른 사람들도 가능하면 일찌감치 하나 쟁여놓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니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 때문이다.


 - - -


아이는 역시 앉혀주자마자 엄마가 준비해 준 소고기볼과 당근, 브로콜리를 만지려고 손을 뻗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순순하고 착해보여서 귀여웠다. ‘엄마가 준비해 준 거…… 촉감놀이 해야지……’ 하고 말풍선 안에 띄워지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소고기볼을 만지고 3초 후에, 엄청난 울음이 터져나왔다. 얼굴은 시뻘개지고, 칭얼대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울음소리였다. 표현하자면, “?!……으……앙!!!!!! 흐아으앙!!!!!!” 정도가 비슷했다.


뭔가 잘못됐다. 뭐지? 아, 소고기볼이 뜨거운 거구나!


귀여운 아이를 바라보던 웃음기가 싹 사라지고, 바로 아이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어서 음식을 빼냈다. 손에 들고 있던 소고기볼도 걷어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죽 이유식 식힐 때처럼 선풍기를 쓰는 바람에 속은 뜨거운 상태였다. 아무리 겉면이 27도면 뭐 하나. 속이 이렇게 뜨거운데.


물론 어른한테는 ‘어? 아직 좀 뜨겁잖아’ 정도의 온도였지만, 아이는 ‘그러니까 나중에 먹어야지. 손은 차가운 거 좀 만지고 있어야겠다’로 생각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게다가 아이 피부는 어른보다 훨씬 연약하니까, 느끼는 통각도 실제로 엄청났을 게 분명했다.


 - - -


이유식은 모르겠고, 일단 미리 타 놓은 분유를 먹여주면서 입 안에 남아있을지 모르는 뜨거운 기운을 완화시켜주려고 했다. 분유 덕분에 울음이 달래졌고, 나는 다급하게 식탁을 훑어보고는 내가 마시려고 떠 놓은 물컵에 아이 왼손 오른손을 차례로 담가주어 화기를 뺐다.


아이에게 너무너무 미안했다.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로 분유를 먹는 아이에게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식탁에 차려진 소고기볼을 보자마자 ‘엄마가 준 거……’라고 생각하며 손을 뻗었을 아이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더 미안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는 핑거푸드 같은 거 주려고 하지 않을게”라고 사과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면 마음은 편해지겠지만, 그것은 양육자가 택해서는 안 되는 방식이었다. 마음의 짐을 떠안은 채로, 실수는 정정해가며 묵묵히 아이를 돌봐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몫이었다.


분유를 다 먹고 나서는 죽 이유식을 먹여주었다. 그러다가 다 식은 핑거푸드 앞에 아이를 다시 앉혀주었다. 뜨거웠던 기억 때문에 싫어하려나……. 다행히 아이는 다시 음식을 손으로 집었다. 이것저것 조물락거리는 아이에게 죽을 떠먹여주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 - -


이유식 시간이 끝나고, 다행히 좀 있으니 아이는 매트에서 웃으며 놀았다.


뭐든지 신체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아기들은 축 처지거나 숨을 제대로 못 쉬거나 하므로, ‘웃으면서 잘 노는지’를 꼭 봐야 한다고 들었다. 손도 아까 봤을 때 화상이랑은 거리가 멀어 보였는데다가 만지작거려봐도 아프다고 울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으로 큰일은 피해갔구나 싶었다.


그러다 12시 반 조금 넘었을 때, 아이를 데리고 장난감도서관으로 향했다. 이틀 연속이었다. 어제 빌려온 장난감 세 개 중에서 두 개가 반응이 별로였기 때문이었다.


‘스마트 터틀 패밀리’는 꼬꼬맘의 뾰족한 부분 없는 버전같은 장난감이었는데, 손으로 팍팍 치다가 장난감이 들썩이는 바람에 자기 이마에 찧고는 울었다. 다른 하나는 원통을 돌릴 수 있는 ‘뮤직 회전 동물원’이었다. 이건 심지어 빌리고 나서 보니까 직전에 가져왔었던 장난감의 구형 버전이었다. 시원찮아서 그런지 한 번 쓱 돌리고 나서 우는 게 패턴이었다. ‘이렇게밖에 안돌아가는 거 아닌데!’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새로 빌려온 것은 ‘킥 앤 스코어’라는 아기체육관이었다. 소물 두 개를 바쳐서 대물 하나를 가져온 셈이었다. 아이는 신기해하면서 기린에 매달린 치발기 세 개를 계속 건드렸다. 위쪽에 달린 버튼을 누를 수 있게 앉혀주었더니 제법 잘 버티고 앉아서 이것저것 만져봤다. 한 번은 만6개월 발달단계로 ‘도와주면 혼자 앉을 수 있어요’라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혼자 앉는 게 아니잖아?’ 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것은 ‘알아서 앉지는 못하지만 일단 앉혀두면 꽤 오래 버텨요’라는 뜻이었다.


 - - -


아이는 여러모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피셔 프라이스에서 나온 아기체육관은 신생아 때 사서 본전을 뽑고 있는데, 월령에 따라 놀이 방식이 바뀌어갔다. 처음에는 그냥 장식용이었던 딸랑이들이 나중에는 펀치의 대상이 되었고, 오래지 않아서 아이는 이 딸랑이와 저 딸랑이를 양손에 하나씩 집고 번갈아 보면서 비교했다. 그러다 데굴데굴 구르는 걸 좋아하는 만6개월이 되어서는 아예 피아노 본체만 빼서 매트에 깔아줬다.


만7개월인 지금은 진짜로 버튼을 누르면서 놀았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버튼을 하나씩 치는데, 쳤을 때 나오는 소리가 ‘빨강’, ‘주황’ 같은 것들이라서 귀여워져버리기는 한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쳐서 더 귀엽다.


요즘에는 만8개월부터 숟가락 연습을 시켜야 한대서 목욕할 때 실리콘 숟가락을 치발기처럼 주고 있는데, 이것도 언젠가는 능숙하게 사용할 날이 오겠지? 요즘 하는 자기주도 이유식도 실상은 죽 이유식과 병행해서 마치 혼합수유 2탄 같은 느낌이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자기가 자기 밥 알아서 먹는 날이 올 테고 말이다.


 - - -


그러고 보니 분명 집안일이 밀려 있었는데, 장난감도서관에서 다녀온 후의 낮잠 시간에는 서두르려는 마음이 없었다.


오히려 작정하고 여유를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유라고 하기에는 소박하지만, 원래 같았으면 ‘재우고 나서 뭘 하지’를 생각했는데 그 때는 왠지 ‘재우고서 좀 지켜보고 싶다’ 하는 마음이었다. 어쩌면 일부러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하루종일 유모차를 밀면서 쌩쌩 지나다니는 차를 노심초사하느라, 뜨거운 소고기 두부볼을 줬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탓에. 이 이상 허둥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들었던 걸까?


당연하게도 아이는 눕히자마자 잠들지는 않았다. 한참을 뒤척였고, 그러다 자기 왼손으로 내 손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손가락 다섯 개를 다 써도 내 엄지가 본인 손에 꽉 차게 들어가는, 뭉툭하고, 하얗고, 조그마한 손톱이 가지런한 아기 손이었다.


아직 만8개월도 되지 않아서 아이는 손가락을 따로따로 쓰지 못했고, 그래서 엄지를 제외한 네 개의 손가락은 언제나 다함께 쥐었다 폈다를 했다. 그 작은 손으로 마치 묵찌빠의 ‘묵-빠-묵-빠’를 반복하듯이 내 손을 한참 동안 만지작거리며 잠을 청했다. 쥐었다 폈다를 동시에 할 수밖에 없는, 이 귀여운 손가락이라니.


하지만 이 조그만 손은, 아이가 조금만 커도 금방 사라져버릴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나는, 이 손이 지니고 있는 찰나의 형태를 영원히 기억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어째서인지 조금 아리도록 슬프고 행복해서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 - -


인간 옆잠베개가 되어서, 인형을 끌어안은 아이를 등 뒤에서 꼭 끌어안아주었다.


한참을 뒤척였던 아이는 그 자세로 곤히 잠들었다. 진짜 잠든 건지, 어느 시점부터 잠들었는지, 그런 게 궁금해서 몸을 일으켜 확인하고 싶었다. 눈 아직 뜨고 있는데 숨소리만 새근새근하게 변한 건가? 하지만 그러는 순간에 만약 아이가 선잠 들어있는 상태였다면 깨워버리는 위험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이번에도 한동안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인형을 껴안은 아이의 손에 포개어 두었던 내 손을 살며시 떼었다.


뒤로 살짝 물러나서 아이를 바라봤다. 뒤에서 보니까 머리통이 동글동글하고 몸은 짤똥한 게 영락없는 조랭이떡이었다. 인터넷에서 조랭이떡처럼 생겼다는 아기 고양이 사진을 봤었는데, 사람도 그렇게 귀여울 수가 있구나.


발은 어른 발처럼 평평하지가 않고, 수학 교과서에서 자주 본 직각삼각형처럼 뭉툭했다. 친구의 표현대로 발등에도 살이 쪄 있었다. 이런 발이 잠결에 살짝 까딱거리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가동범위가 엄청나게 작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볼은 짱구 같고, 키도 겨우 토끼 인형보다 커서 한눈에 몸 전체가 다 들어왔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시간이었다. 마치 아이가 내게 얘기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 너무 이런저런 걱정 하지 말아요. 집안일이든, 아니면 미래에 무슨 일을 해야 하나 하는 그런 것까지도, 지금은 좀 내려놓아요. 그리고 나의 이 귀여운 모습을 보면서 한껏 행복해하세요. 행복해하는 게 엄마가 지금 할 일이에요.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Izabelly Marques


길가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도, 그들은 그저 바라보면서 연초를 계속 태운다. 담배를 등 뒤로 숨긴다거나 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는 법이 절대 없다. 물론 그런다고 해도 담배 냄새는 여전하겠지만, 적어도 사람이면 그 정도 EQ는 지니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쩌면 역시 길빵 흡연자는 지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건 생각조차 못했고, 그래서 애초에 길거리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자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전자담배로 길빵을 하면 냄새도 연기도 안 나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더 환장할 노릇인 걸. 전자담배 흡연자한테서는 대마초 피우는 냄새처럼 요상한 향이 나서 더 찜찜하다. ……그런데 내가 대마초 냄새를 어떻게 알고 있지?


아무튼 흡연자를 길에서 마주치면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그저 전속력으로 유모차를 밀며 담배 연기 구간을 주파한다. 마음 같아서는 정신이상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식칼을 휘두르며 욕을 날리고 싶다. 하지만 길빵러 중에는 진짜 정신이상자도 있을 수 있으니 망상으로만 남겨두었다.


이유식을 시작하고 나서는, 흡연자를 보면 또다른 생각이 하나 더 든다. 저 사람들도 어렸을 때 엄마가 이파리 채소랑 노란 채소, 소고기, 곡물, 골고루 섞어 먹이려고 엄청 노력했을 텐데. 소고기는 한우로 사다 먹이고, 그 당시 알레르기 예방 지침에 따라 계란은 흰자 노른자 구분해서 순차적으로 먹여주고. 그래놨더니 지금은 저렇게 담배를 태우고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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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데리고 스타벅스에서 베이글 모닝 세트를 먹었다.


만7개월이 되었더니 이게 되는구나 싶었다. 예전 같았으면 어디 카페 찍고 오기만 해도 졸음을 참지 못하고 아기띠에서 이미 잠들어 있었을 텐데. 아이에게는 크림치즈 베이글 대신에 치발기를 유모차 핸들에 매달아서 놀게 해주었다. 이왕 온 김에 유모차 말고 유아용 의자에도 앉혀주었다.


베이글이 딱 두 입 남았을 때 쯤에 아이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앞을 보게끔 안아주고는 카페 여기저기를 구경시켜 주었다. 화장실에도 괜히 가서 거울을 보며 놀아주기도 했다. 그런데 거울은 좋아했어도 기저귀 갈이대는 역시 싫어했다.


차가워서 그런가? 떨어질 것 같아서? 아무튼 화장실의 기저귀 갈이대는 어린이대공원과 카페를 막론하고 다 반응이 별로였다. 심지어 이번에는 눕히는 게 아니라 앉혀서 거울을 보게 해줬는데도 울었다.


얼른 안아들어서 기저귀 갈이대를 다시 접었다. 자리로 돌아와 남은 베이글 두 입을 입안에 쑤셔넣었다. 마침 유아용 의자에 바퀴가 달려있어서, 의자를 제자리로 가져다 놓는 김에 아이를 앉혀주어서 드라이브를 시켜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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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카페 나들이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아이를 재워줬다.


아이는 이제 깨어있는 시간이 2시간도 아니고 2.5~3시간에 달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는 6시 40분쯤 깨었는데 9시 40분에 잠들었다. 그래도 한 번 잠들면 낮잠 시간은 여전히 1~1.5시간 정도였다. 그 사이에 부지런히 집안일을 해야 했다. 예전처럼 책 읽고 글 쓰면서 여유 부릴 시간이 없었다. 정신을 놓고 노닥거리면 그 댓가는 정리되지 않은 하이체어와 함께 다가오는 다음 수유텀었다.


아이 방에서 살그머니 빠져나와서 주방으로 향했다. 카페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사 온 재료들을 조리대에 꺼냈다. 일전에 양파, 배, 사과. 라구소스 만드는 법을 참고해서 양파소스를 만들었는데, 토마토랑 섞고 소고기랑 같이 내어주었더니 효과가 괜찮았다. 그런데 아무리 괜찮았어도 9월 15일에 만든 것을 10월 중순까지도 주고 있자니 양심에 찔려서 새로 만들기로 했다.


우선 과일부터 다듬었다. 지난번에는 양파부터 했더니 칼과 도마에 양파 냄새가 배어서, 이유식 만들다가 남아서 따로 먹으려고 깎아놓은 과일에서도 양파 향이 났다. 먼저 배와 사과를 베이킹 파우더와 흐르는 물로 씻었다. 깎을 때는 감자칼로 돌돌 깎았다. 과도로도 잘 깎고 싶었지만 몇 번 해보고 내 능력 밖임을 깨달았다. 잘 개발된 도구가 있다면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도 좋으니까.


양파는 깐 양파 한 알이면 충분했다. 1,800원 하는 양파 한 알을 흐르는 물에 씻어서 네모네모로 대강 썰었다. 모든 재료는 다듬어지는 즉시 자기 자리로 보내줬다. 도마 옆에는 물 120ml와 함께 실리콘 찜기 받침이 장착된 밥솥 내솥과 락앤락 두 통이 있었다. 배와 사과는 각각 1/4씩 잘라서 밥솥에 넣어주고, 나머지는 락앤락에 담았다. 배도 그렇고, 익힌 사과도 그렇고,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을 일으킨다고 해서 적당히 넣었다. 양파는 모조리 밥솥 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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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밥솥은 두 탕을 뛰었다.


양파 소스 재료들을 고압찜으로 15분간 쪄내는 동안, 사과 하나를 더 깎아서 락앤락에 담았다. 이번에는 도마와 칼을 깨끗이 씻었으니 지난번처럼 사과에 양파 향이 밸 일은 없었다. 그리고 밥솥이 완료를 알렸을 때, 양파 소스 재료들은 쵸퍼 통으로 옮기고 실리콘 찜기 받침과 내솥을 닦아서 바로 사과를 쪄냈다.


중간중간 찜을 기다리면서는 찜이 완료되기 전까지 마칠 일과 찜이 다 되고 나서 바로 해야 할 일들을 적어두었다. 아이가 만2개월이 되었을 무렵이었던가? 냉장고에 말도 안 되게 커다란 화이트보드를 붙여놓고, 생각나는 것들을 수시로 적어두기 시작했다. 7-11-3-7 하는 수유텀이라든지, 아침저녁 루틴이라든지. 요즘에는 이렇게 그때그때 해야 할 일을 등록하고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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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풀하고 대용량인 밥솥 덕분에, 아이가 낮잠에서 깨기 전까지 양파 큐브와 사과 큐브를 모두 만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친정 어머니께서 와 주셨을 때라든지 아니면 남편이 아이를 봐 주는 주말에 주방에서 조리도구들과 씨름하며 시간이 다 갔을 텐데, 장족의 발전이었다.


요령이 없을 때는 시간 잡아먹을 요소가 한둘이 아니었다. 사과를 과도로 깎느라 오래 걸려서, 내솥과 락앤락을 재료 다 다듬고 나서 준비하느라 도마가 좁아져서, 과일도 식칼로 턱턱 썰면 되는데 굳이 과도로 한답시고 힘이 들어서, 고압찜 말고 무압찜으로 하느라 제대로 안 쪄져서, 실리콘 받침 대신 면포를 까는 바람에 태워먹은 양파를 골라내느라…….


주말에는 아이가 낮잠을 자는 1시간과 남편이 아이를 봐주는 1시간을 합쳐서, 2시간 동안 네 가지를 만들었다. 양배추 큐브, 당근 핑거푸드, 브로콜리 핑거푸드, 소고기 두부볼. 소고기 두부볼은 처음 만드는 거라서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레시피를 차근차근 따라갔더니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때도 화이트보드가 활약을 했었다. 맨 먼저 브로콜리를 스텐볼에 물 담아서 담가두고, 그 다음에 두부를 뭉개서 체반 위에 올려두어 물기를 짜기 시작한다. 그 다음 양배추를 먼저 찌고, 양배추가 쪄지는 사이에 손 많이 가는 흙당근을 다듬어서 한 쪽에 모아둔다……. 덕분에 ‘아차 브로콜리 먼저 담가놨어야 하는데!’ 등의 허둥지둥할 시간을 줄여줘서 참으로 요긴했다. 이 외에도 평소에는 하루이틀 내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식 큐브라든지, 정리해야 할 것, 친정 놀러갈 날짜 등도 적어두면서, 화이트보드는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역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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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2시간 넘게 자길래, 쪽쪽이를 뺐더니 바로 깼다. 대체 왜 뱉지 않는 걸까. 어떻게 하면 1시간 반을 입에 문 채로 잠들어 있을 수 있지? 평소 같았으면 잠들었을 때 살그머니 빼주는 도전을 해봤겠지만, 이유식 만드느라 이번만큼은 본인 하고 싶은대로 하게 해주었다.


아이를 트립트랩에 앉혔다. 바닥에는 푸드캐처 캐치가 깔려 있고, 앞치마는 유튜브에서 본 대로 트립트랩 트레이와 커버 사이에 끼워뒀다. 물티슈, 건티슈, 크리넥스, 손수건, 닦을 수 있는 것들도 종류별로 모두 구비했다. 나름대로 깨끗한 이유식 시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알아보고 준비한 세팅이었다.


특히 캐치는 7~8만원 거금을 들여서 구매한 준비물이었다. 아기들은 손을 움직이는 게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음식이 장난감과 구분도 잘 안된다. 그래서 이유식이라고 준비한 것을 집어다가 바닥에 내팽개치거나 혹은 실수로 떨어뜨리곤 한다. 아니, ‘반드시’ 떨어뜨린다.


횟집비닐을 까는 집들이 많은데, 나는 도저히 그때그때 말끔히 청소할 자신이 없어서 진작에 캐치를 샀다. 덕분에 바닥에 튕겨져 날아가는 낙하물을 방지하고, 청소도 때에 따라서는 나중 일로 미룰 수 있게 되었다. PPL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늘어놓고 있는 이유는, 오로지 다른 사람들도 가능하면 일찌감치 하나 쟁여놓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니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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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역시 앉혀주자마자 엄마가 준비해 준 소고기볼과 당근, 브로콜리를 만지려고 손을 뻗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순순하고 착해보여서 귀여웠다. ‘엄마가 준비해 준 거…… 촉감놀이 해야지……’ 하고 말풍선 안에 띄워지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소고기볼을 만지고 3초 후에, 엄청난 울음이 터져나왔다. 얼굴은 시뻘개지고, 칭얼대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울음소리였다. 표현하자면, “?!……으……앙!!!!!! 흐아으앙!!!!!!” 정도가 비슷했다.


뭔가 잘못됐다. 뭐지? 아, 소고기볼이 뜨거운 거구나!


귀여운 아이를 바라보던 웃음기가 싹 사라지고, 바로 아이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어서 음식을 빼냈다. 손에 들고 있던 소고기볼도 걷어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죽 이유식 식힐 때처럼 선풍기를 쓰는 바람에 속은 뜨거운 상태였다. 아무리 겉면이 27도면 뭐 하나. 속이 이렇게 뜨거운데.


물론 어른한테는 ‘어? 아직 좀 뜨겁잖아’ 정도의 온도였지만, 아이는 ‘그러니까 나중에 먹어야지. 손은 차가운 거 좀 만지고 있어야겠다’로 생각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게다가 아이 피부는 어른보다 훨씬 연약하니까, 느끼는 통각도 실제로 엄청났을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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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은 모르겠고, 일단 미리 타 놓은 분유를 먹여주면서 입 안에 남아있을지 모르는 뜨거운 기운을 완화시켜주려고 했다. 분유 덕분에 울음이 달래졌고, 나는 다급하게 식탁을 훑어보고는 내가 마시려고 떠 놓은 물컵에 아이 왼손 오른손을 차례로 담가주어 화기를 뺐다.


아이에게 너무너무 미안했다.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로 분유를 먹는 아이에게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식탁에 차려진 소고기볼을 보자마자 ‘엄마가 준 거……’라고 생각하며 손을 뻗었을 아이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더 미안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는 핑거푸드 같은 거 주려고 하지 않을게”라고 사과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면 마음은 편해지겠지만, 그것은 양육자가 택해서는 안 되는 방식이었다. 마음의 짐을 떠안은 채로, 실수는 정정해가며 묵묵히 아이를 돌봐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몫이었다.


분유를 다 먹고 나서는 죽 이유식을 먹여주었다. 그러다가 다 식은 핑거푸드 앞에 아이를 다시 앉혀주었다. 뜨거웠던 기억 때문에 싫어하려나……. 다행히 아이는 다시 음식을 손으로 집었다. 이것저것 조물락거리는 아이에게 죽을 떠먹여주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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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시간이 끝나고, 다행히 좀 있으니 아이는 매트에서 웃으며 놀았다.


뭐든지 신체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아기들은 축 처지거나 숨을 제대로 못 쉬거나 하므로, ‘웃으면서 잘 노는지’를 꼭 봐야 한다고 들었다. 손도 아까 봤을 때 화상이랑은 거리가 멀어 보였는데다가 만지작거려봐도 아프다고 울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으로 큰일은 피해갔구나 싶었다.


그러다 12시 반 조금 넘었을 때, 아이를 데리고 장난감도서관으로 향했다. 이틀 연속이었다. 어제 빌려온 장난감 세 개 중에서 두 개가 반응이 별로였기 때문이었다.


‘스마트 터틀 패밀리’는 꼬꼬맘의 뾰족한 부분 없는 버전같은 장난감이었는데, 손으로 팍팍 치다가 장난감이 들썩이는 바람에 자기 이마에 찧고는 울었다. 다른 하나는 원통을 돌릴 수 있는 ‘뮤직 회전 동물원’이었다. 이건 심지어 빌리고 나서 보니까 직전에 가져왔었던 장난감의 구형 버전이었다. 시원찮아서 그런지 한 번 쓱 돌리고 나서 우는 게 패턴이었다. ‘이렇게밖에 안돌아가는 거 아닌데!’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새로 빌려온 것은 ‘킥 앤 스코어’라는 아기체육관이었다. 소물 두 개를 바쳐서 대물 하나를 가져온 셈이었다. 아이는 신기해하면서 기린에 매달린 치발기 세 개를 계속 건드렸다. 위쪽에 달린 버튼을 누를 수 있게 앉혀주었더니 제법 잘 버티고 앉아서 이것저것 만져봤다. 한 번은 만6개월 발달단계로 ‘도와주면 혼자 앉을 수 있어요’라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혼자 앉는 게 아니잖아?’ 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것은 ‘알아서 앉지는 못하지만 일단 앉혀두면 꽤 오래 버텨요’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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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여러모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피셔 프라이스에서 나온 아기체육관은 신생아 때 사서 본전을 뽑고 있는데, 월령에 따라 놀이 방식이 바뀌어갔다. 처음에는 그냥 장식용이었던 딸랑이들이 나중에는 펀치의 대상이 되었고, 오래지 않아서 아이는 이 딸랑이와 저 딸랑이를 양손에 하나씩 집고 번갈아 보면서 비교했다. 그러다 데굴데굴 구르는 걸 좋아하는 만6개월이 되어서는 아예 피아노 본체만 빼서 매트에 깔아줬다.


만7개월인 지금은 진짜로 버튼을 누르면서 놀았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버튼을 하나씩 치는데, 쳤을 때 나오는 소리가 ‘빨강’, ‘주황’ 같은 것들이라서 귀여워져버리기는 한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쳐서 더 귀엽다.


요즘에는 만8개월부터 숟가락 연습을 시켜야 한대서 목욕할 때 실리콘 숟가락을 치발기처럼 주고 있는데, 이것도 언젠가는 능숙하게 사용할 날이 오겠지? 요즘 하는 자기주도 이유식도 실상은 죽 이유식과 병행해서 마치 혼합수유 2탄 같은 느낌이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자기가 자기 밥 알아서 먹는 날이 올 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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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분명 집안일이 밀려 있었는데, 장난감도서관에서 다녀온 후의 낮잠 시간에는 서두르려는 마음이 없었다.


오히려 작정하고 여유를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유라고 하기에는 소박하지만, 원래 같았으면 ‘재우고 나서 뭘 하지’를 생각했는데 그 때는 왠지 ‘재우고서 좀 지켜보고 싶다’ 하는 마음이었다. 어쩌면 일부러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하루종일 유모차를 밀면서 쌩쌩 지나다니는 차를 노심초사하느라, 뜨거운 소고기 두부볼을 줬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탓에. 이 이상 허둥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들었던 걸까?


당연하게도 아이는 눕히자마자 잠들지는 않았다. 한참을 뒤척였고, 그러다 자기 왼손으로 내 손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손가락 다섯 개를 다 써도 내 엄지가 본인 손에 꽉 차게 들어가는, 뭉툭하고, 하얗고, 조그마한 손톱이 가지런한 아기 손이었다.


아직 만8개월도 되지 않아서 아이는 손가락을 따로따로 쓰지 못했고, 그래서 엄지를 제외한 네 개의 손가락은 언제나 다함께 쥐었다 폈다를 했다. 그 작은 손으로 마치 묵찌빠의 ‘묵-빠-묵-빠’를 반복하듯이 내 손을 한참 동안 만지작거리며 잠을 청했다. 쥐었다 폈다를 동시에 할 수밖에 없는, 이 귀여운 손가락이라니.


하지만 이 조그만 손은, 아이가 조금만 커도 금방 사라져버릴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나는, 이 손이 지니고 있는 찰나의 형태를 영원히 기억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어째서인지 조금 아리도록 슬프고 행복해서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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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옆잠베개가 되어서, 인형을 끌어안은 아이를 등 뒤에서 꼭 끌어안아주었다.


한참을 뒤척였던 아이는 그 자세로 곤히 잠들었다. 진짜 잠든 건지, 어느 시점부터 잠들었는지, 그런 게 궁금해서 몸을 일으켜 확인하고 싶었다. 눈 아직 뜨고 있는데 숨소리만 새근새근하게 변한 건가? 하지만 그러는 순간에 만약 아이가 선잠 들어있는 상태였다면 깨워버리는 위험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이번에도 한동안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인형을 껴안은 아이의 손에 포개어 두었던 내 손을 살며시 떼었다.


뒤로 살짝 물러나서 아이를 바라봤다. 뒤에서 보니까 머리통이 동글동글하고 몸은 짤똥한 게 영락없는 조랭이떡이었다. 인터넷에서 조랭이떡처럼 생겼다는 아기 고양이 사진을 봤었는데, 사람도 그렇게 귀여울 수가 있구나.


발은 어른 발처럼 평평하지가 않고, 수학 교과서에서 자주 본 직각삼각형처럼 뭉툭했다. 친구의 표현대로 발등에도 살이 쪄 있었다. 이런 발이 잠결에 살짝 까딱거리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가동범위가 엄청나게 작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볼은 짱구 같고, 키도 겨우 토끼 인형보다 커서 한눈에 몸 전체가 다 들어왔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시간이었다. 마치 아이가 내게 얘기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 너무 이런저런 걱정 하지 말아요. 집안일이든, 아니면 미래에 무슨 일을 해야 하나 하는 그런 것까지도, 지금은 좀 내려놓아요. 그리고 나의 이 귀여운 모습을 보면서 한껏 행복해하세요. 행복해하는 게 엄마가 지금 할 일이에요.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Izabelly Marq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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