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여행기 3
호주 하면 떠오르는 동물들이 있다. 캥거루와 코알라. 이 둘과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시드니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페더데일 동물원.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만질 수도 있다니, 조금은 낯설고 설레는 마음으로 도전해 보기로 했다.
동물원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반겨준 건 왈라비들이었다. 내가 손에 먹이를 들고 있어서일까, 저마다 다가오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작고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 그리고 다소 느닷없이 내 손을 움켜쥔 작은 손. 그 순간 느껴진 왈라비의 감촉은 놀라웠다. 마치 나뭇가지처럼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손가락. 그 작은 손에 담긴 힘은 내 손을 살짝 움켜쥐며 먹이를 받아가는데, 자연스러운 연결감이 마음을 간질였다.
다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코알라가 나를 맞이했다. 여전히 잠이 덜 깬 듯, 느릿느릿 움직이며 나뭇가지를 옮겨 다녔다. 나무 위에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그 모습이 어찌나 여유로워 보이던지. 한참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왜 나도 저렇게 느긋하고 게으른 하루를 보내지 못했을까?
‘갓생’을 강조하며 스스로를 다그치던 나날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기 위해 쉴 새 없이 뛰어왔던 시간들.
물론 일상을 돌아가면 다시 달려야겠지만 오늘만큼은 코알라를 보며 잠시 멈춰도 괜찮다는, 작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공간에서는 캥거루, 웜뱃, 그리고 쿼카가 있었다. 미디어로만 보던 동물들을 가까이서 만나는 경험은 특별했다. 특히 쿼카는 작은 몸집에 늘 웃고 있는 얼굴로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동물이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표정은 무표정, 뭔가 심드렁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먹이를 주자 순순히 받아먹는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마지막 코스를 가니 왈라비들과 비교도 안 되는 몸집을 가진 캥거루가 나타났다. 이 세상 불만을 모두진 표정으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약간은 겁이 나서 가깝게 다가가지는 못했지만 멀리서 캥거루에게 인사도 하고 말도 걸어보았다. 호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러한 동물에 대한 작은 기쁨들이, 여행의 특별한 장면들로 남았다.
코스탈 워크는 시드니의 유명 해변들과 그 해변을 잇는 길을 산책하는 코스이다. 내가 간 곳은 쿠지 해변에서 시작된 코스탈 워크는 바다와 절벽이 어우러진 산책 코스였다. 나는 쿠지 해변에서 시작해 브론테 해변을 지나 본다이 비치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바닷가를 따라 걷는 동안, 낯선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과 가까이서 부서지는 파도가 겹쳐지며 만들어낸 웅장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파도가 치는 소리, 하늘에서 반짝이는 햇살, 바람에 흩날리는 소금기 섞인 공기. 모든 감각이 낯선 자극으로 가득 찼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공동묘지와도 마주하게 된다. 절벽 위에 자리 잡은 그 공간은 묘하게 평온했고,
묘비들 너머로 보이는 바다가 그곳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이런 풍경이 주는 새로움에 자꾸만 발걸음이 멈췄다.
동시에 산책이란 무엇인가 잠깐 생각하게 되었다. 산책을 하면서 우리는 많은 자극을 받는다. 자연의 소리, 공기의 냄새, 발밑의 촉감, 시각적으로 펼쳐지는 풍경 등 다양한 감각이 우리를 이끈다. 예를 들어, 여행을 떠날 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이러한 오감의 자극이 한데 어우러진 순간들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눈으로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향기로운 자연의 냄새를 맡고,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걷는 모든 순간이 우리의 감각을 자극한다. 이처럼, 세상은 우리가 오감을 통해 받아들일 수 있는 다양한 자극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자극은 사실 한정적이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존재이지만, 그 수많은 자극 중에서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경험할 수밖에 없다. 눈앞의 자연과 사물, 사람들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지며, 우리의 인식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곳을 산책한다는 것은 우리가 접하는 세계를 더 깊이, 더 선명하게 경험하게 해 준다.
마침내 본다이 비치에 도착했을 때, 해는 노을로 바뀌고 있었다.
붉은빛이 바다 위로 물들어가며 잔잔히 퍼졌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비눗방울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방울은 공중에서 빛을 받으며 반짝이다 톡 하고 터졌다. 아이들이 비눗방울을 쫓아다니며 웃고 떠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혼자 걷던 공원에서 마주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맑은 하늘, 그날의 잔잔한 행복감이 겹쳐졌다.
기억은 희미했지만 감정은 여전히 생생했다. 왜 그 순간이 떠올랐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아련함에 잠시 빠져들었다.
해변 끝에서 바라본 풍경은 하나의 그림 같았다. 노을 속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사람들,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 갈매기 울음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완벽한 평화를 만들어냈다.
이게 내가 찾고 싶었던 평화가 아니었을까? 나는 카메라를 꺼내 그 순간을 담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평화란 그리 멀리 있지 않다고. 그저 조금 더 천천히, 나를 놓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