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uybrush Feb 28. 2021

Epilogue : 완결은 있어도 완성은 없다

지난 3년은 내 인생의 격변기였다. 마흔의 나이에 그동안의 커리어를 버리고 전혀 다른 세계인 웹소설에 뛰어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인생을 건 도박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했다.


글쓰기에 어느 정도 훈련이 되었다는 자신감도 있었지만, 역시 웹소설을 쉽게 본 탓이다. 이 정도는 내가 경험만 좀 쌓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내 오만과 편견의 대가는 혹독했다.


그런데 이 책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내가 만약 웹소설을 잘 알았다면, 연재 과정이 어떤지 미리 알았다면,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내가 만약 성공할 가능성부터 쟀다면 어땠을까.


멋모르고 무작정 뛰어들고 보니, 어느새 퇴로는 없었다. 나는 웹소설로 성공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만큼 무지했고, 조급했고, 그래서 절박했다.


웹소설을 쓰며 수없이 실패하는 과정은, 사실 웹소설을 배운다기보다는, 나를 내려놓는 과정이었다. 웹소설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의 어설픈 지식은 오히려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데 걸림돌만 되었다.


나는 웹소설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그저 남들과 똑같은 걸 쓰기는 싫다고 버텼다. 뻔한 소재, 뻔한 전개, 뻔한 스토리가 아니라 나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뻔해 보이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몰랐다. 


웹소설에서 통하는 이야기와 문법은 따로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나를 텅 비워야 했다. 그렇지만 내 껍질은 내 생각보다 훨씬 단단했다. 나는 웹소설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그 껍질을 깼다는 사실이 더 뿌듯하다. 머리로 아는 것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의 차이를 비로소 깨우친 기분이다.


웹소설을 쓰기 전까지, 나는 이런저런 책도 내고, 글도 많이 썼지만 나 스스로 ‘작가’라는 확신이 없었다. 나를 작가라고 부르는 게 민망했다. 그러나 이제는 나에게 더 당당해졌다. 확실한 성과를 낸 경험은 분명히 나를 한 단계 성장시켰다.


보통 어떤 작가가 글을 잘 쓴다고 할 때, 문장력이 좋다, 혹은 문체가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웹소설에서는 문장력, 문체라는 말이 거의 쓰이지 않는다. 대신 ‘필력’이 좋다고 말한다.


나는 도대체 이 ‘필력’이 뭔지 한참을 고민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간단하게 생각한다. 독자가 어떤 웹소설을 읽고 재밌으면 필력이 좋은 것이다. 필력은 웹소설의 스토리, 매력적인 인물, 지향하는 가치 등의 총체적인 집합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웹소설을 쓴다는 것은 필력을 꾸준히 갈고 닦는 일과 같다. 웹소설 쓰기는 생각보다 반복적이고 지루하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톱니바퀴 맞물리듯 규칙적으로 착착 돌아가야 한다. 나는 웹소설을 쓰면서 도리어 독서량이 확 줄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회차를 써야 하는 부담 때문이다.


과도한 업무량과 스트레스 때문인지, 매년 한, 두 번은 웹소설 작가의 부고를 접한다. 세상을 떠나기엔 너무나 젊은 작가들이다. 아파서 어쩔 수 없이 휴재하는 작가도 여럿 보게 된다. 일일 연재 시스템은 웹소설 작가가 밥벌이를 할 수 있게 해주고, 때로는 부자로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끝장내기도 한다.


독자는 작가의 이런 고통을 모른다. 그리고 모르는 것이 정상이다. 독자는 작가에게 관심이 없다. 독자가 궁금한 것은 오직 재미있고 참신한 이야기다. 그러니 글쓰기가 어렵다고 징징거려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


사람들은 언제나 읽고 싶어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더 많이 읽고 싶어 한다. 이야기는 인류의 시작부터 함께했고, 아마 인류 문명이 완전히 멸망하는 날까지 함께 할 것이다. 인류의 마지막 인간은 분명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남기려고 발버둥 칠 것이 분명하다.


나는 보잘것없는 인간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내가 쓴 이야기는 누군가 읽어주는 한 영원히 남는다. 나는 내가 쓴 글이 나라는 작은 인간을 넘어서기를 바란다. 나라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할 일은 그저 읽고, 쓰고, 쓰고, 또 쓰는 것이다. 필력을 무한히 늘리고 싶다.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웹소설을 쓸지는 모르지만, 꼭 웹소설을 쓰지 않더라도 오늘의 경험을 기반으로 계속해서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이 책이 웹소설이 궁금하신 분들에게, 웹소설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나도 이제 겨우 두 작품을 완결한 햇병아리 웹소설 작가일 뿐이고, 내 경험은 전체 웹소설 시장에 비하면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꼭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나는 아직 갈 길이 한참 멀다. 이제 천 리 길에 딱 한 걸음을 떼었다. 오히려 그래서 희망도 크다. 그만큼 성장할 여지가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성장을 멈춘 웹소설은 그때부터 서서히 죽어간다. 성장을 멈춘 작가 역시 그렇다. 글을 쓰는 한, 나는 계속 껍질을 깨고 성장하고 싶다. 끝없는 성장을 꿈꾸는 작가에게, 작품의 완결은 있어도 작품 세계의 완성이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그럼 이제 새로운 웹소설을 쓰러 갈 시간이다.





안녕하세요. Guybrush입니다.

브런치에 이 글을 쓴지도 어느새 1년이 넘었네요.

<대기업 때려치우고 웹소설>이 내용을 더욱 보강하여 책으로 출간 되었습니다.

웹소설 에세이 <대기업 때려치우고 웹소설>을 지금 읽어 보세요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