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커리어 경로, 고민
내가 대학원 진학을 처음 고민한 건 졸업 직전이었다.
취업이 막막했고,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도 잘 몰랐고, 세상은 ‘좀 더 공부해 보면 어떠냐’고 부드럽게 말해줬다.
그 말이 참 그럴듯했다.
그렇게 나는 국문학 석사과정에 진학했고, 1년 후 자퇴했다.
그리고 이차전지 부품회사의 경영관리팀으로 취업해 HR 업무를 시작하게 되어 지금은 반도체 장비 회사의 인사담당자로 일한다.
그래서 나는 이 질문에 누구보다 진심이다.
“대학원에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대학원은 도피처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취업 대신’ 대학원을 선택한다.
당장 진로가 보이지 않거나, 학점이 부족하거나, 스펙이 아쉽거나.
그리고 그 선택엔 대개 이런 말이 붙는다.
“일단 석사라도 따두면 좋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단언할 수 있다.
그 ‘일단’이라는 말로는 절대 버틸 수 없다.
대학원은 취업의 ‘대체재’가 아니다.
그건 자신의 탐구 방향이 매우 뚜렷한 사람이 아니면 오래 버티기 어렵다.
밤샘으로 논문을 읽고, 수십 장의 연구 계획서를 수정하며 때론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하는 곳.
막연한 감정으론 견디기 어려운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학원 진학은 진로의 연장이 아니라 전환일 수 있다.
그건 내가 겪어봤다.
나는 왜 그만뒀을까?
나는 고전문학 석사 1년 차였다.
정확히 말하면 “이 길이 내 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 딱 1년이 걸렸다.
무엇보다 나는 쓰고 싶었지, 연구하고 싶진 않았다.
글을 쓰는 건 좋아했지만, ‘타당성’, ‘이전 연구’, ‘이론 기반’ 같은 프레임 속에서 내 언어가 점점 말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실적인 진로가 너무 막막했다.
박사 진학, 시간강사, 전임 경쟁, 연구비 확보…
그 세계는 내가 감당할 준비가 안 된 세계였다.
물론 나는 지금도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1년은 내 방향을 확인해 준 시간이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연구자보다 실무자가 어울리는 사람이구나.”
그건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대학원은 커리어가 아니라 ‘선언’이다
요즘도 나는 대학생, 혹은 20대 중반의 지인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요즘 취업도 쉽지 않고… 대학원 갈까 고민돼요.”
그 말의 결을 나는 잘 안다.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어딘가에 계속 속해 있고 싶은 마음.’
하지만 대학원은 그렇게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내 생각에 대학원은 선언이다.
“나는 이 분야를 더 깊이 파고들겠다.”
“나는 연구자로 혹은 전문인으로 이 길을 계속 걷겠다.”
그 선언 없이 들어가면 너무 쉽게 혼란이 찾아온다.
"나는 지금 뭘 위해 이걸 하고 있지?"
"내가 이 길을 진짜 원한 게 맞을까?"
반대로 그 선언이 확고한 사람은 대학원에서 빛난다.
그런 사람은 학위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에서 자기 정체성을 발견한다.
취업과 대학원 사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
만약 당신이 지금 대학원을 고민하고 있다면 나는 이 세 가지 질문을 꼭 던져보라고 말하고 싶다.
1. 나는 연구를 사랑하는가?
단순히 공부를 좋아하는 것과 연구를 감당할 수 있는 건 다른 얘기다.
질문을 깊게 파고들고 끝까지 분석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2. 나는 대학원 이후의 진로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가?
진짜 중요한 건 석사 과정 이후다.
내가 원하는 커리어에 대학원이 정말로 ‘도움’이 되는가?
3. 나는 지금 ‘도망’ 중은 아닌가?
취업을 피하기 위해, 일상을 회피하기 위해 ‘대학원’이라는 공간으로 숨으려는 건 아닌가?
그렇다면 그 선택은 오래가지 못한다.
돌아보면, 나는 대학원에 ‘다녀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중퇴했지만,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1년은 나를 알게 해 줬다.
그리고 지금의 나 — 실무자, 인사담당자, 조직을 관찰하는 사람,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 — 이 되기 위한 디딤돌이 되어줬다.
대학원은 정답이 아니라 경험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자신에게 진심일수록 빛을 발한다.
대학원에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가도 되고, 가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건 그 선택이 ‘당신의 목소리’에서 나왔느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