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담당자로 살아남기
명함을 건넬 때마다 나는 잠시 멈춘다.
내 이름이 적힌 작은 사각형 종이, 그 안에는 나의 현재가 담겨 있다.
회사명, 부서명, 직함, 전화번호, 이메일.
모두 정확하고 깔끔하게 인쇄돼 있지만, 그 종이에는 담기지 않는 것들이 늘 마음에 걸린다.
‘조금 더 일찍 출근하는 습관’,
‘사람 이름을 오래 기억하려는 태도’,
‘채용 공고에 진심을 담으려는 마음’,
‘보고서보다 사람 이야기를 먼저 읽는 눈’.
그 모든 것들은 명함에 없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묻는다.
“명함 속의 진심은 몇 그램일까?”
회사에서 처음 명함을 받았을 때 나는 그 종이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이제 나는 조직 안에서 '한 사람'으로 불릴 수 있다는 기쁨과 한편으로는 ‘이 이름 아래에서 어떤 책임을 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그 둘이 동시에 손끝으로 전해졌다.
명함은 참 이상한 물건이다.
상대방은 그 종이 하나를 보고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심지어 어떤 태도를 가졌을지도 상상한다.
어떤 날은 명함에 적힌 직함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분에게 명함을 건넬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마음이 조심스러워진다.
명함은 위계를 드러내는 도구가 아니라 진심을 전하는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는 걸 나는 믿는다.
그리고 조직 안에서도 명함은 늘 특정한 무게로 작용한다.
‘과장’이라는 직함, ‘인사팀’이라는 소속, 그 타이틀은 책임과 권한을 의미하지만, 때로는 오해와 거리감을 만들기도 한다.
최근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반도체협회 행사 참여 도중 협회 직원 한 분이 말을 건넸다.
“아, 과장님이셨군요. 되게 부드러워서 대리급이신 줄 알았어요.”
그 말에 나는 웃으며 넘겼지만, 속으로는 한참을 생각했다.
직함이 그 사람의 성격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의 말투, 태도, 말의 선택이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나는 종종 내 명함의 여백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여백은 하얗고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그 공백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직 적지 못한 나의 진심이 담기는 자리.’
그래서 명함을 건넬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추가한다.
“저는 이름보다 먼저, 사람을 보려 합니다.”
“저는 직함보다 먼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숫자보다 먼저, 마음을 기억합니다.”
인사담당자의 명함은 때로 무겁다.
사람을 평가하기도 하고,
채용을 결정하기도 하고,
보상을 조율하기도 한다.
그 속에서 나의 이름은 늘 '관리자'같은 단어들 옆에 붙는다.
하지만 나는 그 무게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익숙해지는 순간, 사람이 아닌 숫자를 먼저 보게 될까 봐 두렵다.
그래서 나는 가끔 명함을 건넬 때 상대의 눈을 먼저 본다.
그 눈빛에서 조심스러움을 읽으면 나는 한 걸음 더 다가가 웃는다.
“긴장 안 하셔도 괜찮아요. 저도 사람 좋아합니다.”
그 말에 상대가 웃으면 비로소 명함이 진심을 담기 시작한다.
어쩌면 명함 속 진심은 종이의 무게로는 측정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종이를 건네는 사람의 태도는 언제나 상대에게 남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묻는다.
내가 건넨 명함이,
누군가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을까.
그리고 이렇게 다짐한다.
“내 이름 옆의 직함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거나,
적어도 벽이 되지는 않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