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캣맘 커플의 캣-돌봄 이야기 <서터릿 캣 Street Cat>
양적 변화는 질적 변화를 초래한다. 뭔 소리냐고? 나도 이게 뭔 소린지 몰랐다.
내게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아니, 그냥 히리가 있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말이겠다. 봄에 태어나 봄꽃 히어리에서 이름을 딴, 새하얗고 성질 고약한(?), 너무나 사랑스러운 고양이 한 마리.
히리를 데리고 사는 6년 동안 내게 고양이란 곧 히리였다. 새 신발을 사면 히리와 함께 사진을 찍었고, 히리가 바닥을 뒹구는 영상을 신나게 인스타에 올렸다. 우주같이 깊고 푸른 눈망울에 하얗고 풍성한 장모를 자랑하는 페르시안답게, 가장 많은 받은 댓글은 ‘미묘’와 ‘하트’였다. 다들 나만 고양이 없다고 아우성인 와중에 점순이처럼 “늬 집에 이런 거 없지?”하는 짜릿함도 있었다. 그치만 무엇보다 그저 내 눈에 좋았다. 그런 근사한 존재를 곁에 두고 볼 수 있다는 것이. 히리 말고 다른 고양이를 상상할 여력은 없었다.
시간은 흘렀고 히리는 떠났다. 그리고 알게 됐다. 세상에는 히리 말고도 고양이가 있다는 사실을, 아니 고양이가 엄청나게 많다는 현실을. 고양이는 집 앞 카페 정원에도 있었고, 길 건너 탄천가에도 있었고, 아파트단지 화단에도, 심지어 낚시용품점 테라스 아래에도 있었다. 고양이는 어디에든 있었다. 그 아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히리를 떠올렸음은 물론이다. 왜 진작 길 위의 수많은 눈망울을 보지 못했을까?
그 수많은 간지러운 존재들을 발견하고 어떻게 되었냐고?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지금 고양이 여섯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매일 길고양이 밥자리 열 다섯 군데를 챙기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
고양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많다는 것. 이건 고양이를 ‘데리고 사는’ 경험이 아니라 내 삶 전체가 고양이들 가운데 놓여지는, 고양이와 ‘함께 사는’ 체험이다. 매일의 요가 수련 끝에 인체의 비밀에 통달한 사람이나, 시를 배운 적도 없이 시집 천 권을 읽고 시인이 된 사람처럼, 길고양이 십여 마리의 식사를 돕고 집에서는 여섯 마리 고양이의 집사 노릇을 하는 동안 나도 변하게 되었다. 고양이의 양적 변화는 심각하게도, 내 삶의 질적 변화를 초래했다.
얼마나 고양이를 좋아하냐고? 글쎄, 보고 있으면 편안하고 만지면 황홀해지는 정도? 하지만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이렇게나 깊숙이 고양이와 함께 살 수는 없다. 나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의 눈으로 고양이를 본다. 그것도 사랑의 다른 형태가 아닐까? 그 사랑의 눈으로 보았을 때 비로소 나는 사람 옆의 고양이, 고양이 옆의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사랑의 눈으로 만난 내 작은 이웃에 대한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