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_8
그렇게 해서 아침부터 저녁때까진 노가다, 밤에는 당구장 사장이 되는 일과가 시작되었다.
노가다 일이라고 해봤자 기초골조 세우는 곳에서 자재 이리저리 옮기고 청소하는 일이다. 어쩌다 타워크레인 밑에서 타워크레인이 대형 시멘트 자루를 들 수 있도록 체인 결속하는 보직이 걸리기도 했는데 그땐 1.5배의 일당을 받았다.
시멘트 가루가 그리 고운지 그때 알았다. 방수가 되는 전자시계에도 시멘트 가루가 들어가 고장을 내었다. 그러니 내 콧속이며 폐 속에는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시멘트 가루가 들어갔을까. 물 마시다가 사레가 들어 폐에 물이라도 좀 들어가면 시멘트가 물을 만난 격이라 폐 속에 퍽퍽한 사암덩이 같은 것이 생겨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작업반장이 아침에 이 일을 할 사람을 찾으면 내가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일당이 1.5배니까.
아침 6시 30분에 공사현장에 도착하고 오전 9시에 참을 준다. 대부분 라면이다. 그리고 12시에 밥을 먹고, 오후 3시에 또 참을 준다. 이렇게 하루에 세 번 정도를 일하는 사람들과 밥을 먹으니 역시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끼리 살 부대끼며 사는 게 맘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3시 참 먹을 때 고참 아저씨들은 막걸리를 한 잔씩 마시곤 했다. 그중에 서른 후반쯤 되는 변씨 아저씨는 내게도 꼭 농주 한 잔을 권했다. 내가 참 착하고 열심히 한다고. 요령이 없어서 더 고생하는 것 같다고. 그래서 나한테 맘이 좀 쓰인다고 했다. 전에 무슨 일 했냐고 묻길래 용접봉 공장에 다녔다고 했다. 대학 다닐 때 아르바이트로 친구들이랑 용접봉 공장에서 일했던 것이 떠올라서.
변씨 아저씨는 목수다. 자신의 팀은 네 명인데 목수가 두 명에 시다 한 명. 전기기술자 한 명이었다. 원래 다섯 명인데 시다 한 명이 나갔다고 했다. 다 노총각인데 시다였던 아저씨가 결혼하면서 정착하려고 빠져나갔단다. 변씨 아저씨 팀은 공사현장을 따라 이 지역 저 지역을 떠도는 때가 많기 때문이란다.
변씨 아저씨는 마르고 키가 작고 하관이 빠르고 욕을 잘하는 청도사람이다. 술도 아주 좋아하고. 사람이 재밌기도 하고 입바른 소리도 잘해서 가까이 지내곤 하였는데, 한번은 일 끝나고 막걸리를 같이 한잔하고는 요 옆에 아는 집에서 한 잔 더 하자 하여 함께 택시를 탔다. 근데 택시기사하고 시비가 붙었다.
택시 여러 대가 쭉 줄을 서 있는 대로변에 맨 앞 택시에 타려니 택시기사가 행선지부터 묻는다. 대답 없이 일단 타고서는.
“조- 앞에 삼거리까지만 가모 되구메“
기본요금 거리다. 택시기사는 좀 더 먼 거리 손님을 받고 싶었겠지.
”손님 지금 밥 묵으러 가는 참이라서 그쪽으론 못갑니더. 미안하지만 다른 차를 좀 타 주이소.“
”기사요. 지금 승차거부하요?“
“그게 아이라 밥 묵으러 간다고....”
“아. 그럼 기사 밥 묵으러 가는 데 갑시다. 가다가 내리지”
”거, 아실만한 양반이.... 그냥 지나가는 차 잡아서 타고 가쇼“
변씨 아저씨가 덩치가 작아서 보기에 만만했던지 기사 말투가 짐짓 위압적이다.
“당신 지금 백프로 승차거부하는데, 사람 잘못 봤는기라. 지금 파출소 가자. 당신 오늘 면허 내놓는 줄 아소. 하이튼 택시기사는 다 개기산기라”
“뭐 개? 당신 말 다 했소?”
“아이고 행님 와이랍니꺼. 고마 내립시더”
말리는 내 말에.
“송군아 니는 임마 무조건 내 핀을 들어야지. 햐, 야 이거 암것도 모르네. 니 임마 니는 곱표야”
결국 파출소까지 가고, 순경이 참으라고 한다고 민중의 지팡이가 물컹하이 이라이 나라가 안된다고 개기사나 개순경이나 똑같다고,
저 개기사 새끼 스티커라도 끊어라.
결국 서로 한 장씩 스티커를 끊고 변씨 아저씨는 순경이 사인하라고 내미는 스티커를 내는 사인이 이긴기라, 하면서 귀퉁이를 쭉 찢고서야 파출소를 나왔다. 여하튼 변씨 아저씨는 성격이 괄괄한 것이 보통이 아닌 사람이었다.
아침 날씨가 제법 쌀쌀해져서 빈 페인트 통에 나무 조각들을 주워 불을 붙이고 있는데 변씨 아저씨가 묻는다.
“니 목수 시다 함 해볼래?”
“예? 아이고 제가 뭘 할 줄 알아야지예.”
“니는 고마 내가 망치 달라모 망치 주고 뺀찌 달라모 뺀찌 주모 된다. 니 목수 시다는 일당이 구만 원이다. 일도 할 것도 없는 기라.”
“아이고 되모, 내사 시키주모 고맙지예.”
“그라모 니 이번 일요일날 정읍에 가자. 정읍 알재? 월욜부터 일해야 되는데 일요일날 오후에 만나서 같이 가모 된다. 그라고 갈라 카모 돈 백만 원만 준비해라.”
“예? 돈 예? 그거는 와예? 여빕니꺼?”
“니 거 공사 드가모 우리 팀 한 10개월 정도 일하고, 또 그 젙에 6개월짜리 일 또 있는 기라. 그거를 공짜로 우리한테 주는 기 아이다. 거 관리소장한테 좀 처 미기야 되는기라. 한 오백 정도는 주야 된다 안카나. 그래도 서로 일 할라꼬 난리다.”
예상 밖의 전개에 머리가 잠시 복잡해진다.
“니는 내가 숙식 제공해 주고 월 삼백씩 딱 끊어가 줄 생각인끼네 걱정 마라. 잘 하모 쪼매이씩 올리주고.”
“예 행님. 제가 집에 가가 쬐매이만 생각해 보께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