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찬휘의 만화 살롱 #18
2011년, 게임 제작사 넥슨의 연매출이 1조를 넘겼다. 7년 뒤인 2018년엔 넥슨과 넷마블이 연매출 2조를 달성했다. 만화가 산업규모 면에서 한국콘텐츠진흥원 추산 1조 원을 찍은 게 2017년이고 2019년 말에는 웹툰이 웹소설과 합쳐 수출 거래액 1조 원을 찍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같은 시기 게임 산업 연 매출은 14조 원을 넘겼다.
만화가 이제 가까스로 전체를 통틀어 넘기고 있는 숫자를 게임은 일찌감치 일개 업체 단위에서 넘기고 있는 마당이면 차라리 상쾌하다 할 만큼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 여론을 만들어내는 게시판 커뮤니티 가운데에서 게이머들이 주로 모인 공간의 지분도 상당하다.
이렇게 대단한 실적과 인터넷 여론 파워를 내고 있는 게임이건만, 막상 근래 들어서 게임 업계인들은 꽤 싱숭생숭한 모양이다.
<기생충>이 쏘아 올린 작은 공
단초가 된 건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다. ‘너네 그래봐야 로컬(지역) 영화제일 뿐이잖느냐’는 봉준호 감독의 도발에 아카데미가 화끈하게 대응한 덕에 우리 입장에서는 매우 즐거운 광경이 여럿 연출됐다.
이런 <기생충>을 보며 디스이즈게임이라는 게임 언론은 기자수첩 꼭지를 통해 “우리에게도 아카데미 시상식이 필요할까?”라 묻는가하면 “영화의 날, 만화의 날은 있는데 게임의 날은 없다”며 게임을 기념할 만한 날짜 후보군을 나열하는 칼럼을 올리기도 했다. 한데 일련의 글들을 바라본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아카데미 시상식이 필요할까?”라는 글이 특히 그러했다. 해당 글은 “최첨단의 문화 예술 대우를 받는 영화와 비교하면”이라는 전제로 게임에 관한 일반 인식과 사회적 편견을 아쉬워하는가 하면 아카데미 시상식 같은 게 있을 필요는 없어도 아카데미(로 표상되는 영화계 주류)가 표면적으로 쏘아내는 가치와 신호들은 게임업계에게 절실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기사가 올라온 2월 초중순을 전후해 SNS에서는 이와 관련한 발언으로 대거 설왕설래가 오갔다.
해당 글은 곳곳에 자조와 업계인으로서의 반성을 어느 정도 담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까닭은 정작 중요한 본질을 절묘하게 비껴가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을 향한 편견, 한 때 만화에 쏟아졌던 것
해당 글은 ‘문화 예술 대우를 받는다’고 전제한 영화에 빗대어 게임의 낮은 문화적 지위를 언급한다. 글에 따르면 게임은 선정성과 폭력성 등의 논란에 휘말리고 가볍고 단순한 오락거리 또는 저급한 소비문화로 취급받고 있으며, 이는 곧 인식이 편견에 차 있기도 하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면서 반성과 자성의 방향을 제작자와 플레이어 사이의 존중 부족으로 돌린다.
이러한 반응들을 단순히 게임 쪽 이야기라고 그저 남의 집 불구경 보듯이 할 수 없는 까닭은 같은 소리를 만화가 오래도록 해 왔기 때문이다. 만화는 매우 오랜 시간 문자 그대로 끔찍한 검열과 탄압에 시달렸고, 작가들이 끌려 다녀야 했으며, 학습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저질 문화로 낙인찍히기 일쑤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업계인들과 연구자들이 프랑스 쪽의 논조를 빌려 와 “만화는 제9의 예술”과 같은 주장으로 대항하곤 했고, 정치적 목적으로 탄압이 들어올 때엔 광장으로 기관으로 몰려 나갔다.
오랜 시간 한국 만화인들이 비명처럼 내지르고 있던 말을 지금 우리나라의 게임이 똑같이 하고 있다. 게임이 곧잘 저질 논란에 휘말리는 것도 한 때 만화가 당했던 이유와 명확히 일치한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게임 쪽의 불만은 일면 타당하고 남 이야기만도 아니다. 하지만 이 땅의 만화가 일련의 오랜 멸시를 이제 어느 정도 웃어넘길 수 있는 데에까지 이른 데 비해 이 땅의 게임은 규모에 비해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다. 벌이만으로 치자면 게임이 만화를 아득히 압도하는데도 그러니, 그저 만화 쪽 지갑 사정이 나아져서(?)는 아닌 셈이다.
정작 게임이 만화와 같은 화두를 놓고 입지가 갈리는 까닭은 따로 있다. 바로 대중예술의 한 갈래로서 사회의 흐름에 전혀 발을 맞추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계, 액수로 FLEX☆할 때가 아니다
게임 업체들과 게이머들의 요 몇 년 사이 최대 화두는 다름아닌 차별주의 공고화였다. 게이머들은 페미니즘 티셔츠나 도서를 인증했다는 이유로 게임에 참여한 사람을 쫓아내라 요구하고 대상자 개인을 향한 인신공격과 신상 캐기에 열을 올렸다.
게임 업계인들은 그런 게이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기꺼이 사람을 잘라냈다. 2016년 넥슨의 게임 <클로저스>에 출연했던 김자연 성우의 데이터가 삭제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사건 이후 게이머들은 게임에 참여한 이들의 SNS과 게시판 활동에 페미니즘과 관련한 지지 또는 동의가 담겨 있는지를 당연하다는 듯 색출하고 다니고 있다.
당장 바로 얼마 전인 2020년 2월 <크로노 아크>라는 인디 게임에 일러스트를 작업한 호준어뭉 작가가 페미니즘 관련한 글을 공유했다는 이유로 공격을 당하자 게임의 제작자가 일러스트 교체 선언과 함께 넙죽 엎드린 사진을 공개해 물의를 빚었다. 물의는 게임에만 그치지 않고, 또 국내에만 그치지 않았다. 웹툰 <아메리카노 엑소더스>를 그린 박지은 씨는 <클로저스>에서 퇴출당한 김자연 성우를 지지한다고 했다가 심각한 공격을 받고 암으로 투병까지 해야 했으며,일본 게임 <뱅드림>에 출연 중인 성우 쿠도 하루카는 <82년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성우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에 휘말렸다.
결국 한국의 게임계에는 마이너부터 메이저, 나아가 게임을 넘어 만화 등 타 분야에 이르기까지 결국은 한 갈래로 연결돼 있는 문화예술계의 일원이자 예술가를 얼마든지 쳐낼 수 있을 정도의 차별주의가 만연하다 할 법하며, 이를 자정할 의지와 방향성마저 너무 부족하다 할 것이다.
만화는 영화와 더불어 완벽하지 않을지언정 현재의 사회 흐름에 발맞춰 필요한 이야기를 건드리고 담아내며 이를 꾸준히 평가하고 연구함으로써 보편성을 갖춘 수작들이 나올 토양을 만들어 왔다. 게다가 불합리한 처사가 드러나면 싸움으로써 나은 방향으로 조금이나마 나아가고 있다. 예술을 향한 대중의 평가는 단순히 벌어들이는 돈 액수가 아니라 그 예술이 예술로서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 왔는가를 대중이 묵묵히 지켜 봐 온 데에서 나온다. 대체 왜 이만큼이나 큰 시장에 보편 대중 전반의 인식이 이리도 낮은가가 궁금하다면, 액수 자랑(FLEX)를 할 시간에 거울을 들어 스스로를 보길, 그리고 만화가 다소의 잡음 속에서도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곁눈질로라도 보길 바란다.
게재 제목 <차별 받는 게임? ‘옆동네’ 만화의 길을 보라
(2020.02.17. 작성, 2020.02.20. 일요신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