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찬휘의 만화 살롱 #19
코로나19로 2000년하고도 20년이나 된 지금의 풍경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흘러나오는 요즘이다.
어린 아이를 둔 부모 입장에서 어딜 데리고 나가기도 겁이 나는 마당인데, 이쯤 되니 병에 관한 걱정도 걱정이지만 사태를 굳이 작정하고 여기까지 끌고 오다시피 한 어느 종교 집단의 모습에 실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이번 주는 저 삿된 자들이 제 대가를 치르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사이비 종교를 중요한 소재로 삼은 만화를 몇 편 소개해 본다. 이참에 독자 여러분들도 소개하는 만화를 찾아 읽으며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해 좀 쑤시는 마음을 달래 보심이 어떨지.
<애총>
1~4권 완결, 씨네21북스
만화가 한혜연의 2009년 발표작 <애총>은 데뷔 이후 꾸준히 독특한 미스터리 장르 만화들을 그려 온 작가 특유의 짜임새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은 1936년 사이비 종교인 백백교가 일으킨 어린이 집단 학살 사건과 1976년 서울에서 남매의 불장난으로 일어난 화재 사건, 그리고 2008년 한 타운하우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등 서로 다른 시기에 일어났던 사건들과 인물을 다층적으로 엮어 들어간다.
작중 집에서 남동생과 장난하다 불을 내 갇혔다가 아빠에게 구조된 소녀 동주는 충격으로 실어증을 앓는다. 동생은 불에 타 죽었고 아빠는 화병으로 죽었다. 그보다 전 백백교가 Y읍에서 일으킨 학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순덕은 풍물패를 구경하느라 ‘상제님’을 영접한다는 장소에 조금 늦게 갔다가 상제란 사람과 마을 어른들이 친구인 아이들을 땅속에 산 채로 파묻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죽은 친구들의 영혼을 이고 무당이 되었던 순덕은 40년이 지난 후 죽은 동생의 영혼을 인 채 말을 잃었던 동주를 만나게 된다.
그 이후로도 30여 년이 흘러, 순덕과 동주는 건설회사 사장과 그 비서가 되어 옛 Y읍, 지금 Y시가 된 곳에 타운하우스를 짓는다. 그리고 그 타운하우스에서 잔혹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일은 누군가 임산부의 배를 갈라 아기를 꺼내어 갔다는 점이다. 이 범상치 않은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 들어가는 형사의 시선과 범인의 정체를 좇는 게 작품의 주요 뼈대인데, 막상 이 작품이 주는 오싹함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특성에 충실한 지점만이 전부는 아니다.
1976년의 화재사고에서 아빠는 불속에서 둘 중 하나만 데리고 나왔는데 알고 보니 남동생 동민이의 옷을 입은 누나 동주였음을 알자 왜 동민이가 아닌 너냐고 묻는다. 1936년 백백교의 학살 사건에서 흙에 파묻히던 아이들 가운데에는 구덩이 위에서 기도를 올리던 엄마에게 말 잘 들을게요 울부짖던 딸도 있었다. 2008년의 타운하우스 살인사건의 원인에는 바로 층간소음이 자리하고 있다. 작품은 그 속에서 드러나는 폭력이 모두 실재했던 사이비 종교 백백교의 교주만큼 구제 못할 악인들의 악당짓으로만, 특별히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 행동으로만 발현되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사람들이 왜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가를 연구했다는 작가의 말은, 지금 시기에 특히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아도나이>
주동근 / 네이버 웹툰 연재 중
<아도나이>는 <지금 우리 학교는> 등으로 네이버 웹툰에서 잔혹한 만화의 정수를 보여준 바 있는 주동근 작가의 신작이다.
작품은 소규모 언론사에 근무하는 기자 유미건은 어느날 사이비 종교에 빠진 아들을 구해달라는 제보를 받게 된다. 2억이나 되는 돈을 탕진한 아들의 이야기를 보며 유미건은 제보자가 사이비로 지목한 단체에 관심을 품게 되는데, 여타 사이비 종교들과는 조금 다르게 이 단체는 바로 외계인을 지구 종말에서 자신들만을 구원해줄 구원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해당 언론사의 여러 기자 가운데에서 콕 집어 유미건에게 제보를 했을까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유미건은 ‘앙천회’라는 이름을 지닌 종교단체에 신분을 속이고 직접 들어가서 취재를 해 보려고 한다.
막상 잠입해 들어간 외계인 숭상 종교는 겉으로 볼 때엔 허무맹랑하다 못해 우스꽝스러워 보이기까지 하고, 구성원들은 어딘지 시정잡배 같은 수준이며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를 이용한 포교 영상은 어딘지 극우 사이트 관심 종자들의 놀이 같은 인상마저 준다. 하지만 작품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앙천회가 보이는 조악함은 오히려 컬트적으로 다가오는데, 구성원 가운데 보통 정신줄 놓은 게 아니어 보이는 인물이 있고 이 자가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거는 수작의 정도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잠입 취재는 갈수록 위험하고, 다음엔 무엇으로 시험 받고 위협 받을지 알 수가 없다.
<애총>이 실제 있었던 사이비 종교를 스릴러 전개의 발단으로 삼았다면 <아도나이>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발달한 현대 시점에 창궐하는 사이비 종교가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스러운 작태로 관심을 그러모으면 어떤 모습일까를 보여준다. 사이비 종교의 틀을 띠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서 꿈틀대는 어떤 어두운 욕망들의 반영으로 보이기도 한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 2권, 태평천국 라이징, 4권 태평천국 다운폴>
굽시니스트 / 위즈덤하우스 간 / 저스툰 연재
한국사를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선 한중일을 둘러싼 동양사를 알아야 한다는 취지로 시작한 굽시니스트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는 단행본 두 번째 권과 네 번째 권에 해당하는 분량을 청나라 말기인 1851년부터 14년에 걸쳐 중국을 휩쓸었던 태평천국 운동에 할애했다.
태평천국은 배상제회(상제회)라는 이름을 단 크리스트교 계열의 동양풍 유일신교 종교 결사로 시작해 하층민을 비롯해 청에 반감을 지니고 있던 이들을 포섭함으로써 세력을 급격히 키워 건국까지 선언했던 집단이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2권>은 신의 아들을 자처하는 홍수전을 중심으로 세상을 정화할 역사적 사명을 자임한 이들이 모여 나라를 세울 만큼 세력을 불렸던 태평천국이 내부 분열과 쿠데타로 급속히 무너져가기 시작한 모습과 그 이후의 청나라가 어떤 모습이었는지까지를 굽시니스트 특유의 재기발랄한 감각으로 해설해내고 있다.
반 봉건 반 외세를 내세운 데 이어 망가져 가는 청나라 말기 크리스트교 식의 평등사상과 사회주의적 국가관을 내세워 민초들의 반응을 폭넓게 끌어내었다는 평가도 있기는 하나, 태평천국이 세력을 확장시키고 또 스스로 권력에 취해가는 모습은 사이비 종교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면모였다. 평가가 어떻게 갈리든, 또 그 원인에 청나라 권력층의 대책 없는 행태가 한 몫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한들 결과적으로 태평천국이 일으킨 내전과 충돌로 말미암아 중국은 2~3천 만 명에 달하는 인원이 ‘실제로’ 목숨을 잃었다.
만화는 이와 같은 역사에서 함께 읽어낼 만한 부분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있어 공부에도 도움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사이비 종교가 과연 무엇을 먹고 자라나는지까지를 되새기게 한다.
게재 제목 <코로나19 피해 ‘방콕’하며 볼 만환 만화 셋>
(2020.02.25. 작성, 2020.02.25. 일요신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