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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선 Oct 16. 2021

첫번째 중국 여행 7일/9일 (다시 청두)

* 작성일 : 2017년 6월 20일 


판다 호텔에서 판다처럼 뒹굴 뒹굴 - 한다면 재밌었겠지만 늑장 부리기엔 너무 아까운 순간 순간들이라 역시 일찍 기상! :)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 조식을 먹으러 갔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사회주의의 가치들. 민주주의 가치들과 별다를 게 없다. Q가 다 허울 뿐인 좋은 말들이라고 했다. 그 점 역시도 별다를 게 없다. :P






 만두랑 야채, 토우장. 단순한 아침 식사지만 Q는 이게 두장옌에서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는 거였다고 했다... 불쌍한 Q...





 오늘 갈 곳은 두장옌. 기원전 306~251년에 건설된 고대 수리 시설이란다. 그저께 L은 두장옌을 소개하면서 还在用!(지금도 계속 사용해!)이라고 자랑했었다. 그 옛날에 홍수가 났다고 나랏님 탓을 않고 이렇게 수리 시설을 만들어 물을 직접 다스릴 생각을 했다니 참 대단하고, 여전히 사용할 수 있을만큼 튼튼하게 그리고 기능적으로 훌륭하게 만들었다니 놀라웠다.






 이 날은 약간 흐리고 이슬비가 내려서, 두장옌을 보기에 잘 어울리는 날씨라고 생각했다. 콸콸콸콸 큰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






 이 와중에 그림 같은 경치 - 아, 너무 좋다. 너머 산들이 말 그대로 한 폭의 수묵화네.






 이제 좀 중국 느낌 나는 사진! :P 고소 공포증이 있는 Q는 이 흔들 다리를 거의 울면서 건넜다. 


 관광 가이드가 연신 发现意外, 请自己负责!(무슨 일 생기면 다 자기 책임입니다!)를 외치고 있었다. 내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케어하는 게 가이드 아니냐니까, Q는 중국 사람들이 가이드 말을 잘 듣겠냐며 되물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초록빛 공간들을 오르고 올라 - 






 한 눈에 보는 두장옌의 모습. 저 가운데에 있는 다리가, 아까 사진 속의 흔들 다리다. :)


빈 틈 없이 빼곡한 나무, 소리내며 흐르는 물줄기, 그리고 이 풍경을 감싸며 안개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검은 산들. 아름다워라.   







 기와 위에 살포시 올라앉은 듯한 이끼들이 예뻐서 찍은 사진. 




 두장옌에 갔다가 호텔로 돌아왔는데 밥 먹으러 바로 나가기엔 시간이 좀 일렀다. 그래서 Q가 중국의 게임 시장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했다. 


 먼저, 왕자영요王者荣耀라는 AOS 게임이 모바일로도 플레이할 수 있어 가장 인기라고 했다. 논타겟 스킬샷 날리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해보니까 꽤 괜찮았다. 또, 이른 타이밍에 강한 미니언이 생성되기 때문에 공들여 파밍하면서 성장하기보다는 아무래도 한타를 하면서 킬을 먹고 성장하게 되면서 게임이 빠르게 진행된다. 플레이 시간은 10-15분? 난 아예 모르고 있던 게임이었는데 PC로도 있고, 프로도 있다고 해서 놀라웠다. ㅡ우리나라에 펜타스톰이란 이름으로 넷마블이 들여왔다.ㅡ


 그리고 게임 방송 사이트를 보여줬는데, 방송되는 게임들의 랭킹을 보고 인기도를 짐작할 수 있어서였다. 왕자영요, 롤, 오버워치, 하스스톤 등은 놀랍지 않았지만 도타DOTA가 높은 순위인 것은 놀라웠다. 우리나라에서는 넥슨이 상당히 정성 들여 키워보려 했다가 결국 롤의 선점 효과를 이기지 못했는데. 아시안 게임에 e스포츠 종목이 추가된다는 뉴스가 발표되었을 때, 롤LOL이 아니라 도타DOTA가 채택되었다는 게 의외였는데 ㅡ알리스포츠의 텐센트를 향한 견제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ㅡ 완전히 비합리적인 채택은 아니었구나 알 수 있었다.


 Q한테 되게 고마웠다. 내가 게임 좋아하는 걸 알고, 뭐라도 하나 더 알려주려고 하는 모습에 정말 감동했다. 가령, 어떤 여자가 "DNF(던전앤파이터)하는 남자는 다 찐따라고 생각해요."라고 답한 인터뷰에 DNF 유저들이 부들부들하는 댓글들이라든지. 하하하. 




 자, 그럼 이제 밥 먹으러 가자.





 또 간, 어제 그 식당. 재미있어서 찍어본, 맛없으면 돈 안 받습니다!  Q가 거짓말이니까 믿으면 안된다고 했다. 하하. 나도 알아! 










 군침이 돈다...






 청두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이 노란 의자는 교통약자보호석. 




 그리고 다시, 전에 묵었던 청두 호텔로 돌아왔다. 내 캐리어는 잘 보관되어 있었다. 상하이에서 묵었던 호텔에 비하면 훨씬 작고 특별한 구석은 없지만, 필요한 건 다 있고 깔끔하고 또 무엇보다 수압이 세서 만족스러웠던 호텔.






 두장옌에서 거슬러 받아 가져온, 마오 쩌둥이 아닌 소수 민족이 있는 지폐. Q가 옛날 돈이라고 했다. 




 기념품을 사러가기로 했다. L은 오리 혀를 사가라고 했지만 내 주변인들 가운데 먹을 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과자点心를 사러 갔다.





 L이 맛있다고 알려준 가게에 갔는데 줄이 길어서 거의 20분을 기다려야했다. 이렇게 그 날 직접 만든, 빵과 과자의 중간인 것 같은 간식들을 파는데 다들 한아름씩 사간다. 하나만 먹어도 엄청 배부를 것 같은데 이런 걸 간식으로 먹는다니. Q도 나도 잘 모르니 그냥 맛있는 걸로 잘 골라서 담아달라고 했다. 




 저녁 먹으라고 L이 맛집도 추천해줬는데 길을 몰라서 헤매다 갑자기 Q가 잠깐! 저거 먹자! 해서 봤더니







 뭐지? 내가 당황하면서 일단 무슨 동물인지부터 말해달라고 했다. 처음에 통통하고 동그래서 금붕어인 줄 알고ㅡ 그런데 닭날개란다. 





 아 쌉싸락하고 짭쪼름한 저 쓰촨 고춧가루... 







 한 입 먹었는데, 너무 너무 너무 맛있었다! 이걸 한국에 가져가서 팔면 난 아마 순식간에 부자가 될거야!






 삼계탕 안에 찹쌀 넣듯이, 요렇게 찹쌀이 들어있어 통통했던 거였다. 




 그리고 드디어 찾은 식당. 큰 푸드 코트 같은 데였는데,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함께 마주 보고 앉아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토끼 머리를 뜯어먹고 있던 두 연인... 쓰촨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겠지.






 역시 다 맛있었다! 난 딱히 음식에 큰 애정이 있지도, 특별히 가리지도 않는 사람인데 쓰촨 요리가 너무 그립고 다시 먹고 싶다.   






 갑자기 비가 내려서 황급히 망고 스무디 사가지고 택시 안으로 쏙. 이렇게 큰데, 이렇게 맛있는데 겨우 4000원 가량. 






 아까 가게에서 Q 한 박스, 나 한 박스 사이좋게 사가지고 온 디엔신. 엄청 무겁다. ;_; 몇 가지 Q랑 맛봤는데 너무 배부르고 특유의 향이 있어서, 내가 평소 오사쯔 사서 뜯어놓고 하나씩 집어먹듯 먹게 되진 않을 것 같았다. 아예 음료랑 같이 두고 마음 먹고 먹지 않는 이상... 




 그리고 내가 아침에 게임 이야기를 너무 좋아했더니, Q가 중국에서 많이 본다는 인터넷 콘텐츠 몇 가지랑 정부가 직접 만든 풍자 드라마도 보여줬다. 


 인터넷 콘텐츠는 그 수위에 놀랐는데, 가면을 쓴 진행자가 회색 연기들 속에서 기침하며 등장한다. 미세먼지 욕에서부터 시작해, 다양한 사회 이슈들을 거침없이 비평한다. 내가 저렇게 해도 저 호스트 괜찮냐고 물어보니까 Q는 공산당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면 괜찮다고 했다. 우리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흔히 보는 '대륙의~' 제목이 붙은 중국의 기상천외한 모습들은 역시 중국인에게도 마찬가지로 기상천외한 것이었다. 미세먼지 농도 측정하는 기계 둘레에 계속 물을 뿌리면서 엉터리 수치를 보도하는 어처구니 없는 뉴스 댓글엔 욕설이 가득했다. ㅡ공산당 관련 뉴스에는 댓글창이 아예 블락되어있었다.ㅡ 또, 중국 콘텐츠답게 영상에 자막이 있었는데, Q가 중간에 辣鸡라는 자막에 대해 설명해줬다. 직역하면 '매운 닭'이란 뜻인데, 발음이 '쓰레기'랑 같아서 저렇게 쓴다고. 하하. 사람 사는 곳 다 똑같구나!


 정부가 직접 만든 풍자 드라마는 그 존재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정부가 풍자하면 그게 풍자야? Q는 일반 대중은 풍자할 수 없으니 이런 거라도 보며 대리만족하는 거라고 했다. 내용은 정경유착 비리를 쫓는 경찰들의 이야기였는데,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 Q의 잔소리 시작... "야, 너 중국어 공부 열심히 해요..." 




 방으로 돌아와선 Q에게 편지를 썼다. 그저께 청두 야시장에서 산 팬더 엽서 뒷장에다가 난생 처음으로 중국어로 된 편지를. 그리고 상하이에서 근사한 저녁을 사려고 레스토랑을 예약해뒀다. ㅡ이 때는 몰랐다, 이 예약이 어떤 파국으로 치닫게 될 지를...ㅡ





 내가 청두에 가겠다고 할 때, Q는 곧장 말도 잘 못하면서 무슨 용기로 혼자 가겠다는 거냐며 펄쩍 뛰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자기가 휴가를 낼 수 있을 것 같으니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말도 잘 못하는 애가 위험한 시골에서 다닐 걸 생각하면 너무 걱정돼서 안 되겠다고. 

 그 때 난 중국어 공부에 좀더 몰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중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책 여러 권을 사서 읽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일하다 우리 회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하신 팀장님이랑 식사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인들에게는 가족이라는 동그라미가 있고 그 외에는 다 타인일 뿐이라고. 그리고, 그 가족이란 동그라미 둘레에 아주 아주 작은 간격을 두고 동그라미를 하나 더 그리면 그 곳이 친구의 자리라고. 중국인의 그 친구란 동그라미 속에 들어가는 건 무척 어렵지만, 한 번 들어가게 되면 그들은 정말 가족처럼 널 여기고 대한다고. Q랑 나는 서로 언어 공부에 도움을 주고, 정치 얘기를 나누고, 가족 이야기를 하며 금세 친해졌다. 하지만 이제 안 지 고작 3개월 되었을 뿐이었다.

 청두행 왕복 비행기 티켓, 두장옌 가는 기차표, 청두와 두장옌의 호텔까지 Q는 미리 다 자기 돈으로 예약을 해뒀다. 물론 나는 상하이에서 Q와 만나 내 경비에 해당하는 돈을 줬지만, 갑작스레 연락이 끊기거나 중국에 못 가게 됐다고 하면 Q는 그 돈을 다 날리는 거였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러고보니 나 역시 저 티켓이나 호텔 예약 때문에 Q에게 내 개인 정보를 넘겨준 터였다. 우리는 어째서 서로가 서로를 이렇게 신뢰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신기해했다. 너 나를 어떻게 믿어? 라는 질문을 수차례씩 던졌다. 그리고 결론은 이거였다, 네가 나를 믿으니까, 나도 너를 믿어. 

 Q는 상하이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여행이 끝나갈 때까지도 계속 이렇게 사람 쉽게 믿으면 안 된다고 나한테 잔소리를 했다. 나를 뭘 믿고 혼자 중국에 온 거냐고. 내가 나쁜 사람이었으면 너 이미 팔려갔다고, 한국 사람이니까 두둑히 챙길 수 있었을 거라고 겁을 줘가면서. 하하. 위험한 짓인 걸 모를리가. 나는 Q에게 서울에 꼭 놀러와야 한다고, 이 친절을 갚을 기회를 내게 줘야만 한다고 말했지만... 글쎄, 내가 아무리 완벽한 코스를 짜더라도 Q가 내게 베푼 것에는 미치지 못할 거다. Q는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이고, 난 단지 되갚는 사람이 되는 거니까. 

 나하고 좋은 관계를 맺는다고 해서 장차 득 볼 게 있는 것도 아닌데, Q는 내가 오기 전 미리 상하이 관광 스팟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돌 수 있는 코스를 외워두고, 더위에 약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하루 종일 같이 걸어다녀주고, 고소 공포증 때문에 거의 울면서도 전망대에 함께 올라주고, 내내 배탈로 고생하면서도 쓰촨 요리를 같이 먹어주고, 내가 망설이거나 겁내는 게 있으면 자기가 먼저 시도하면서 안심시켜주고, 기차역에서 낯선 사람이 접근할 때 막아주고, 중국에 대한 작은 것 하나라도 알려주려고 계속 노력했다. 나홀로 여행했다면, 국내선 비행기 뒷좌석에 꽂힌 잡지 지면 광고 속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 전용 대출 상품의 유용성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이번 중국 여행으로 나는 일에 대한 생생한 교훈, 잊지 못할 추억들, 그리고 소중한 우정을 얻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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