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디자인, 육각 연필
아이가 태어나 1년째 되는 날, 우리는 아이의 앞날에 축복을 빌어주기 위해 한대 모여 돌잔치를 열어줍니다. 그리고 아이는 돌잡이를 통해 생애 최초로 자신의 미래를 점쳐보죠. 그리고 그곳에는 연필이 있습니다.
약 18cm의 길이의 육각형 흑연 막대 '연필'의 주기능은 글이나 그림 따위를 기록하는 역할을 합니다. 지울 수 있다는 점에서 펜과 다르다는 특성도 지니고 있죠. 그 점이 연필을 매력적인 도구로 보이게 하는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라는 노랫말과 연필은 깎이고 생각은 쌓인다는 어떤 시의 구절처럼, 우리는 연필에게서 독특한 사유를 하곤 합니다.
연필은 목적에 따라 원형과 삼각형으로 가공되기도 하지만 주로 육각형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요, 연필은 어떤 이유에서 육각형이 기본 형태가 되었을까요?
'글씨를 쓰기 위한 작은 붓'을 뜻하는 라틴어 'Pencillus'에서 유래된 연필(Pencil)은 17세기, 프랑스의 화가 니콜라스 자크 콩테(Nicolas Jacques Conte)가 흑연과 진흙을 조합하여 나무껍질을 씌운 연필을 발명했는데, 이것이 현대 연필의 시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1761년 캐비닛 제조업자였던 카스파르 파버(Kasper Faber)가 얇은 나무판 사이에 흑연을 끼워 연필을 만들었고 그의 아내가 바구니에 담아 팔면서 연필의 상용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소박한 시작이었지만 이들은 오늘날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필기구 업체인 파버 카스텔 (Faber-Castell)로 성장합니다.
1784년 카스퍼 파버의 아들 안톤 파버(Anton Faber)가 일을 이어 받아, 회사를 설립한 뒤 몇 차례 승계 과정을 걸쳐 1898년 여섯 번째로 회사를 상속받은 오틸리에 폰 파버(Ottilie von Faber)와 귀족 가문의 알렉산더 카스텔-뤼덴하우젠(Alexander zu Castell-Rüdenhausen)이 결혼하여, 두 사람의 성을 딴 파버 카스텔로 회사명을 변경합니다.
파버카스텔은 개발과정에서 성인 남성의 손목부터 중지까지의 평균 길이인 18cm를 연필의 적정 사이즈로 규격화했습니다. 2B, 4B 등 연펼심의 구분법도 이 시기에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요, 이 시기에는 HHH · HH · H · HB · B · BB로 나뉘었습니다. H는 Hard를, B는 Bold를 뜻하지요. HHH보다 H가 더 무르고, B보다 BB가 더 얇은 심이지요.
연필의 최초 형태는 직사각형이었으나, 개발 과정에서 원형, 사각형, 삼각형, 육각형 등의 형태가 시도되었고, 이 과정을 거쳐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육각형이 기본형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사각형은 나무의 기본 형태에서 크게 가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어, 오래도록 사용되어온 형태였습니다. 그러나, 연필의 중심(흑연)으로부터 변과 꼭짓점의 거리가 달라 불안정하며 손에 잡기 불편하고 나무의 낭비가 심하다는 단점이 발견되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신체 구조 차이를 고려하여 연필의 표준 규격을 17.2cm로 정했습니다.
원형은 중점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있는 점들을 이은 도형으로, 모든 접선과 길이가 같습니다. 때문에 닳아 가는 흑연을 정교하게 돌려도 오차가 발생할 확률이 적고, 나무의 낭비가 사각형에 비해 덜합니다. 하지만 굴러떨어지기 쉬워 잃어버리거나 파손되기 쉬운 단점이 발견되어서 연필의 기본 형태로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원형 연필은 정교한 작업이 필요한 화가나 디자이너용으로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삼각형은 어떨까요? 사실 삼각형은 모든 도형 중 가장 안정적인 형태로, 쉽게 굴러가지도 않으며 연필을 손에 쥐었을 때도 가장 편안합니다. 허공에 연필을 쥐듯 손가락을 모으면 삼각형과 흡사한 공간이 나오기도 하지요. 실제로 연필 쥐는 법을 교정할 때에도 삼각형 연필을 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조 과정에서 가운데 홈을 파 흑연을 넣는 과정에서 삼각형의 단점을 발견하였고, 다각형이 더 경제적이라는 판단을 내려 삼의 배수인 육각형을 차용했습니다. 그리고 원형과 비슷하게 육각형 연필은 연필심이 닳아감에 따라 조금씩 돌려가며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삼각형보다 더 나은 편안함과 효율을 보였습니다.
수학적 관점에서도 육각형은, 같은 길이의 선으로 최대 면적을 가지는 도형이고, 이어붙였을 경우 견고하게 맞아떨어지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덕분에 벌들도 집을 지을 때 육각형의 형태로 짓는 것이죠. 촘촘한 육각형 모양인 벌집은 방과 방 사이 틈이 없도록 공간이 촘촘하게 채워져 꿀을 최대한 많이 보관할 수 있으니까요.
연필처럼 사소한 물건일지라도, 이처럼 최적의 형태를 찾기 위해 많은 고민의 흔적들이 담겨있는 것을 보면, 평범하게 보였던 우리 주변의 사물들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