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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Feb 28. 2018

이기적 이타주의자

- 혹은 이타적 이기주의자

나는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면서, 이기적인 이들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이기심이 주는 괴로움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꽤 오랫동안 무신론자의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 나는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나름대로 흥미있게 읽었다. 그 책에는 ‘많이 번식하며 오래 사는 것만이 유전자의 유일한 목표이고, 우리는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살도록 진화해왔다.’는 내용이 주로 나온다. 그 말이 맞다면(아마도 맞겠지만.) 이기심은 우리가 취사선택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기심은 설계된 것이니까 어쩔 수 없어.' 라고 이해해본들 타인의 이기심과 나의 이기심이 아무렇지 않아지는 것은 아니기에. 그래서 나는 분노를 잠재울 수 없었다.     


이기적인 사람이란 뭘까. 나는 타인의 불행으로 자신의 행복을 채우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사회적인 삶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란, 한 덩어리의 파이와 같아서 적당히 나눠가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 많이 덜어가면 누군가는 적게 덜어가야 하는 것. 그것이 게임의 룰이다. 타인과 얽히고 설키는 사회의 여러 상황 속에서 이런 선택의 기로는 차고 넘친다. 그리고 그 파이나누기 앞에서 항상 자기 몫을 먼저, 많이 덜어가는 사람을 우리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부른다.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면 스케줄 근무를 해야 하는 곳도 있다. 매일매일 근무시간이 일정하게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오픈이나 마감, 혹은 낮 시간 근무가 일주일이나 한 달 단위로 매번 다르게 짜이는 것이다. 스케줄을 짜는 선임자가 항상 공정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의 크고 작은 사정들을 고려하다보면 스케줄은 객관성을 잃기 일쑤고, 그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점차 스케줄은 명분없이 제멋대로가 된다.   

   

그래서 보통 스케줄을 관리하는 선임자는 이기적이라는 오해를 받기 쉽다. 그것이 오해이면 그나마 나은데 정말로 이기적인 사람들도 많다. 모두가 꺼려하는 시간에 본인은 높은 빈도로 빠져있거나, 자신의 여행계획에 맞춰 나머지 근무자들을 조정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꽤 자주 봤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기적인 사람은 있다. 매번 죽는 소리를 하면서 계산을 하지 않는 친구가 해외여행을 가서 사진을 올린다든가, 한정판 운동화를 자랑할 때. 어쩜 저렇게 이기적이지.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다. 만남의 시간과 장소를 정할 때, 항상 자신의 집 근처를 주장한다거나 힘을 합쳐야할 때 바쁘다는 핑계로 혼자 빠진다든가 하는 일도 있다.     


대학교 때에는 조별과제에서 비슷한 문제가 생겼다. 각기 다른 과 소속으로 처음 만나 한 조를 이루는 교양 수업 같은 경우에는 혹시라도 손해를 볼까봐 서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티를 열심히 내서 어떻게든 자신의 분량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발표가 가까워지면 병환 악화, 경조사, 핸드폰 파손 및 분실, 아르바이트로 한번 모이기가 힘들 정도가 된다.      


파이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 행복할 수 있는 애정관계는 그런 점에서 이기심이 침투하기 힘들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서로 가장 큰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데. 넌 정말 이기적이야. 이런 말을 서로 몇 번씩 주고받다보면 잘못의 덧셈과 뺄셈으로 점철된 ‘수학 시험’같은 연애가 시작되고. 사랑해서 만나는 건지, 서로 흠잡기 대결을 하는 건지 알 수 없게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기심은 나를 절망하게 한다. 그 지극한 이기심에 나는 늘 상처받고 좌절한다.

      

그런데 그 이기심이 너무도 싫은 건, 이기적인 사람이 죽도록 싫은 건. 너무도 미운 타인의 이기심의 높이가 정확히 내 이기심의 높이와 평행을 이룬다는 점에 있었다.     


저 이기적인 사람이 이기적으로 행동한 이유가 정확히 내가 원하는 것과 같아서 나는 화가 났던 것이다. 나도 나만 편한 스케줄로 일하고 싶은데, 저 사람은 하니까. 그게 화나는 것이었다. 사회 정의나 인격, 사람다움과 같은 고상한 이유가 아니라, 그냥 저 사람이 내 파이를 덜어가서 그게 화나는 거였다. 내가 이기적일수록 세상에 이기적인 사람들은 자꾸만 더 늘어갔다.      


나도 조별과제에서 놀고먹고 싶은데 그게 마음처럼 안 되니까. 우리 집 근처에서 만나고 나만 돈을 덜 내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가 않으니까 화가 났다. 내가 주는 사랑보다 받고 싶은 사랑이 더 큰데 그게 안 되니까 화가 나는 거였다. 상대방이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이기적인 만큼 나도 이기적이어서 화가 났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이기적인 사람을 미워하는 만큼 비참해졌다.      


그래서 어디가서 화를 내지도 못하게. 이타적인 이기주의자이면서, 이기적인 이타주의자로 멀뚱히 선 채로. 혼자서 씩씩대며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이타적이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은, 그게 절대 불가능한 내 원초적 이기심을 만나서 내가 수습할 수 없는 괴리를 만들고. 그러는 사이사이 수많은 사람들의 이기심은 내 레이더에 감지되고. 어쩔 수 없이 자꾸 운석처럼 분노가 내렸다. 가슴에 크레이터를 빵빵 내고 있었다.     


좋은 사람이고 싶으면서 끝내 이기적인 나는 그 양립할 수 없는 욕심으로 오늘도 끙끙 앓다가 얼마 전 본 영화의 대사를 떠올린다. 나름대로 어떤 위안을 얻는다.

불가능과 가능 사이, 여전히 해결할 수 없는 괴리감을 느끼면서.      


선생님 저는 좋은 사람인가요?
응. 어떤 사람한테는.     
-옥희의 영화 中-     
영화: 옥희의 영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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