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댐 Feb 21. 2018

'당기시오'와 '미시오'

- 모두 밀어버림에 대한 반성

문 앞에서의 가장 의미없는 명령이란 스티커로 붙어있는 '당기시오'가 아닐까 싶다.

걸어가는 방향 그대로 몸을 대고 슥 밀고 들어가면 될 것을 굳이 당기라고 하는 이유는 뭘까. 

그게 나의 일상적인 의문이었고, 나는 아예 미는 것이 불가능하다거나 턱에 걸리지만 않으면 마주하는 문마다 밀어 열곤 했다. 손으로. 때론 어깨로.


수많은 '당기시오'를 무시하는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문으로 부딪혔는지 모른다. 문을 앞에 두고 서로 밀어댔으니 둘 다 지나갈 수 없음은 자명했다. 혹은 당겨야 할 문을 억지로 밀다가 문이 턱에 '꽝'하고 부딪히거나 요란하게 막힌 소리를 내기도 했다.


나는 그런 게으른 습관대로 사람도 매번 밀어버리지는 않았나 반성한다. 

다가오려는 사람들을 무심히 밀어내고. 

내가 당길 수 있었으면서도 상대방에게 '당기시오'를 강요했던 기억들.


대학교를 휴학하고 아르바이트에 매진했던 시기. 나는 몇 명의 여자들에게 호감선언을 받기도 하고, 동료들에게 나름대로 인정을 받기도 하면서 한 껏 오만했던 적이 있었다. 잠깐이었으나, 나는 그 건방진 마음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신나게 밀어댔다. 밀고 미니까 상대방이 다 당겨주어서 '이렇게 밀면서 사는 건 참 편한거구나. 좋은거구나.' 생각했는데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의 얘기는 나중에서야 들렸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작년에는 운동하다가 목을 삐끗해 잠깐 정형외과를 다녔다. 도수치료를 몇 번 받았는데, 치료하시는 분이 말하시길 다친 목뿐만 아니라 허리나 등, 어깨가 다 경직되어 있다고 하셨다. '운동을 자주 하시나요?' '팔굽혀펴기는 꾸준히 하고 있는데요.' '미는 운동만 하니까 근육이 뻣뻣해져 있어요. 당기는 운동. 이를테면 철봉같은 것도 해주시면 좋아요.' 

자꾸 밀기만 하니까 근육이 뻣뻣해진다는 말이. 당기지 못하고 밀어대다가 뻣뻣해진 내 마음에 뜨끔하게 닿았다. 


밀어야 할 때 밀어내는 것도 세상 사는 지혜겠지만 당겨야 할 때 당길 줄 아는 용기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오늘. 누군가 나를 밀어내면 기꺼이 당겨도 보는 여유. 누군가 감사하게 문을 당겨주었을때 그에 맞는 호의를 베풀 수 있기를 소망한다. 


무수히 마주하는 마음이라는 문 앞에서, 조금 안 맞으면 '밀어야 할 사람'으로 속단해버렸던 오만을 버리기로. 쉽게 쉽게 밀어내던 게으름에서 벗어나 '당기시오'의 가치를 떠올려 보기로 마음 먹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의 역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