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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Feb 10. 2018

행복의 역설

- 행복한데 왜 불안하니

차라리 슬퍼서 좋은 날이 있다. 이미 슬프고 힘들어서 할당된 고통을 전부 받아버린 기분. 내가 채워야할 슬픔을 다 채운 것 같은 하루. 그런 날은 비록 슬프더라도 불안하지 않았다. 그럴 때 나는 원망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원망하고, 한껏 우울에 잠겨서 내 정신을 교란하는 음악이나, 영상들로 신경을 돌리곤 했다. 그렇게 다음날이 밝아오면 기분은 한결 나아졌고 어떤 새로운 기대같은 것들로 가득해졌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나는 오히려 행복할 때 자주 불안한 기분을 느낀다. 이미 할당된 행복 이상을 수령한 것 같아서 토해내라고 하면 어떡하지. 까슬까슬한 걱정이 행복의 끄트머리에 붙어있는 것처럼 따가웠다.

대학교 4학년 때, 받기로 한 장학금이 통장에 하루 간격으로 두 번 입금된 적이 있었다. 며칠 동안 조금 불안하고 찜찜했지만 정말 천원 단위까지 잔고를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쪼들린 생활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에라 모르겠다.’하고 써버렸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나는 완전히 안심한 상태가 되었는데, 뒤늦게 전화가 왔다. 장학금이 실수로 두 번 지급되었으니 추가 입금 분을 이체하라는 내용이었다.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건조한 말투였다. 그때의 절망감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나는 너무 행복할 때면 그때의 불안감을 떠올리며, 추가로 지급된 행복을 다시 반납하라는 명령을 들을까 겁이 나곤 한다.      


행복해서 불안할 정도라니. 행복하라는데도 행복하지 못하는 바보 같다. 상병 때였나, 휴가 나오자마자 몸살 기운이 들어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는데, 그걸 들은 친구가 너는 천생 노예팔자라며 쉬라는데도 쉬지를 못하니. 그런 핀잔을 준 적이 있었다. 그 친구의 말마따나 행복한데도 자꾸만 쓸데없이 불안해하는 내가 천생 불행할 팔자인가. 그런 우스운 생각에 허탈하게 웃음이 났다.      


어제는 침대에 누워서 즐거웠던 하루를 다시금 떠올리고 있었다. 온몸으로 약처럼 퍼지는 행복을 느끼면서, 마냥 행복하지 못하고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너무 좋아서 오히려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이상한 게 아니야. 어쩌면 합리적인 생각일 수 있겠다는 결론을 여차저차 내고. 이불을 목까지 덮었다. 어차피 내일 혹은 내일 모레. 그게 아니라도 언젠가는 슬픈 일이 다가올 수밖에 없겠지만 나는 오늘 주어진 행복을 걱정 없이 마음껏 삼켜도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기분 좋은 하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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