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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덕준 Feb 22. 2017

노트 속 비밀정원

서덕준




색은 없고 명도만이 남아 있는 이 겨울에 노트를 샀어

새벽에 잠깐 다녀간 자국눈처럼 꿈속 네 얼굴의 솜털처럼 무수한 장수의 노트를 샀지

그거 알아? 네가 꿈으로 들어가는 문에 서면 나는 황급히 새벽의 출구로 달려 나가, 새벽 두 시쯤.

그때 나는 노트에 너와 내가 꿈꿀 시나리오의 플롯을 엮곤 하지, 우리가 함께 봤던 동백나무 연리지처럼.

너는 지금쯤 어느 시대 아름다운 벽화처럼 잠을 자고 있겠지

그렇다면 너의 탄산 거품 같은 웃음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해나갈게

노트에는 네가 눈물보다 빠른 속도로 번져나가고 나는 너의 밑줄이 되지,

너는 어서 나를 밟고 더욱 아름다운 미사여구가 되어 줘

노트에는 너와 내 이름만으로 집을 지어, 모든 색을 훔친 도둑처럼 폭죽의 화약처럼 꿈은 선명해지지

우리의 비밀이 새지 않도록 이 노트를 머리맡에 꼭 숨겨둘 거야

노트 속 고결한 문장들이 너와 나의 꿈 사이에 다리를 놓아줄 거야

잠시만 기다려 줄 수 있겠어?

달의 커튼이 휘황거리는 이 새벽, 너를 따라 얼른 꿈으로 달려 들어갈게

해가 뜨기 전까지 너와 내가 주인공인 노트 속 그 비밀정원에서 만나.




/ 서덕준, 노트 속 비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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