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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Feb 11. 2024

제5화 간격, 유연하거나 단단하거나

 “여행 오셨어요?”

 주문받은 칵테일을 손님에게 건네며 흔연스러운 척, 질문을 건넸다.

 바 안에 서서 누군가에게 질문을 건네보긴 태어나서 처음이다. 내 자리는 줄곧 바 밖에 위치한 손님 좌석이었다. 그 자리에 앉아있었을 땐 바텐더와 나의 거리가 비교적 가깝게 느껴졌다. 반면 바텐더의 위치에 서보니 손님의 위치에 있을 때보다 거리가 더 멀게 느껴졌다. 그래서 손님에게 다가가려면 생각보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랬구나, 이렇게 또 어떤 타인은 내 예상 밖의 어떤 세상을 감당하며 살았겠구나.’


 예상밖의 세상은 예상할 수가 없어서, 몸소 겪고 나서야 그 세계의 존재를 알아볼 수 있다. 이렇게 어떤 타인이 위치한 곳에 직접 가서 그 사람의 세상을 가늠해 보는일, 버겁지만 종종 하고 싶은 일이다. 그렇게 나를 다채롭게 채워가고 싶다.


 “네.”

 “언제 오신 거예요?”

 “지난주 수요일에 왔어요.”

 “그럼 언제 다시 돌아가세요?”

 “모르겠어요. 편도로 와서 돌아가는 표는 아직 안 끊었어요.”


 말끔하게 차려입으신, 30대 중반쯤 돼 보이는 혼술 남자 손님과 대화를 이어갔다.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를 하고 어떤 일을 해볼까 고민을 하던 중 제주 여행을 결심했다고 하셨다.


“숙소는 게스트하우스에 묵으시는 거예요?”

“네, 처음에는 혼자 지내다가 너무 고독해서 며칠간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는데 이게 또 버거워지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근처 에어비엔비에 묵으려고요. 제가 I라서 다른 사람들과 며칠 연속 같이 지내는 게 좀 힘들더라고요.”


 여전히 성행 중인 MBTI. 16가지로 나눠둔 사람의 성격유형. 혹자는 어떻게 사람의 성격을 16가지로만 나눌 수 있냐며 달가워하지 않기도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MBTI가 반갑다.


 예전에 어떤 심리학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 무리의 사람을 두 집단으로 나누면 옳음과 틀림을 논하지만, 세 집단 이상으로 나누면 서로 다름을 공유한다.’

 사람들의 성격을 16가지로만 명명할 수 없지만 서로의 다름을 공유하는 수단으로써는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내향적인 성격이 고쳐야 하는 성격으로 치부되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MBTI의 16가지 유형 중에는 고쳐야 하는 유형은 없다. 그저 I는 I유형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I라고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다. 그 점이 반갑다.


 “그 마음 뭔지 알죠.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시간이 다 채워지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가 고픈.”

 “네 맞아요. 그래서 오늘 여기도 사실은 엄청 용기 내서 왔어요.”

 “그랬구나, 말을 좀 더 일찍 걸어드릴 걸 그랬어요.”


 손님과의 대화를 이어가 던중, 캐주얼한 차림의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손님 한분이 들어오셨다.


“주문하시겠어요?”

“롱티하나 주세요.”


 나는 칵알못이다. 평소 관심이 없는 건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술에서 직관적인 단맛이 나는 게 거북스러워서 칵테일 바에 가도 시럽이 안 들어간 하이볼이나 위스키를 니트로 자주 마신다. 그래서 이 수많은 칵테일 이름들이 나에겐 많이 생소하다.


롱티는 롱 아일랜드 아이스 티의 줄임말이다. 데킬라, 럼, 보드카 등 다양한 양주를 섞어 만든 롱티 베이스와 샤워믹스 그리고 콜라로 채워진다.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나는 쉐이킹을 해야 하는 칵테일이 싫다. 쉐이킹은 어렵지 않지만 쉐이킹 한 음료를 다시 음료컵에 따라내는 과정에 내가 미숙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자주 음료를 흘린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내가 못하는 건 싫어했다. 누군가에게 미숙한 모습을 비추는 게 싫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의 성향은 어느 부분에 있어서 나를 정체시켰다. 하지만 못하는 건 대충 하고 잘하는 건 매우 잘 해내는 쪽으로 내 에너지를 배분하자고 결론 내린 지는 오래다.


‘굳이 잘해야 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대충 하자’

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칵테일을 만드는 데 열중했다.


 k와인펍의 칵테일과 음식 메뉴의 레시피는 정해져 있다. 레시피대로 만들면 된다. 다만 재료가 많은 까닭에 써져 있는 그 재료를 사방 대서 찾아내는 것, 레시피에는 써지지 않은 규격화된 비주얼에 맞게 음식의 자르고 디피를 하는 일이 나는 어려웠다. 친구집에 가서 “소금 어딨어?”,  “간장은?” 묻는 것마냥 헤맸다. 다행히도 펍에서 오래 일한 직원 동생이 이 많은 물음에 귀찮은 내색 없이 답을 줬다.  


“손님과 저 사이에 있는 바 그리고 그 사이의 거리가 나를 지키는 거리예요. 그래서 바텐더는 웬만하면 바 밖으로 나가면 안 돼요. 딱 그만큼의 거리는 필요해요. 그러니까 내 말은 손님들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부담 갖고 애쓰지는 않아도 된다는 말이에요.”


 막상 바안에 서보니 생각보다 손님들에게 말 거는 게 어렵다고 이야기한 나에게 직원 동생이 해준말이다.

 바가 가진 의미가 그거였구나. 이럴 때면 점등된 머릿속 전등에 불이 켜지곤 한다. 사람사이 관계의 거리가 눈에 모이는 공간이었다면 다들 바 하나쯤은 필요해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롱티 나왔습니다.”


 I라던 손님은 롱티를 주문하고 마시는 뒤늦게 들어오신 옆 손님을 계속 흘긋흘긋 쳐다보셨다. 무언가 묻고 싶은데 묻기를 망설일 때 나오는 사람들 특유의 몸짓과 눈짓이 있다. 흘긋거리는 눈짓과 함께 몸이 엇박자를 타며 말을 걸고 싶은 대상 쪽으로 주춤주춤 한다. 무용을 오랜 취미로 해서 인지 특정 상황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공통된 몸짓이나 표정은 나에게 가끔 무용처럼 비춰 눈길을 끌곤 한다.


“혹시 말 걸어도 돼요?”

 흘깃거리던 시선을 멈추고 옆손님을 눈짓하며 내게 물어보았다.


 “네, 당연히 되죠.”

 나는 웃으며 답했다.


 롱티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옆 손님이 오기 전 롱티를 주문해 마시던 I손님은 롱티에 원래 콜라가 들어가냐며 의아해하셨다. 다른 가게에서 마셔보신 롱티에는 콜라가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직원과 나 I손님 셋이서 롱티 레시피에 대한 대화를 잠깐 했었다


 역시나 롱티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렇게 두 분은 롱티 이야기를 기점으로 시작해 각자의 삶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가끔은 내 삶에 한 발자국도 들이지 않은 타인이라서 쉽게 털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여행, 내 이야기에 관심 가져주는 낯선 사람, 술 이 삼박자가 조합이 되면 꽤나 깊은 곳에 있는 알맹이 같은 이야기들이 툭 튀어나올 때가 있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알맹이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이것들은 연약하다. 그래서 약한 충격에도 쉽게 깨진다. 어렵사리 꺼내놓았는데 내 세상 안의 소중한 사람이 행여나 수용해주지 않았을 땐 아프게 깨져버린다. 그 행여나 때문에 말을 꺼내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내 세상 밖에 존재하는 타인은 설령 내 이야기를 수용해주지 않을지라도 타격이 크지 않다. 그 타격의 위험성을 가지지 않은 설령 덕분에 툭, 쉽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럴 때면 멀었던 낯선 두 사람사이의 거리는 순간이지만 급격히 가까워진다. 그리고 바를 나가는 순간 대개는 급격히 멀어진다. 이렇듯 낯선 사람과의 관계는 너무나도 쉽게, 유연히 조절된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취사선택한 사람들만 내 세상에 남겨지고 새로운 사람의 유입은 적어진다. 그렇게 사람사이의 간격은 단단하게 좁아진다. 좁아진 단단함은 삶에 큰 버팀목이 된다. 그러다 종종 큰 장벽으로 그 모습을 달리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관계의 도입부에서는 서로 간의 간격조절이 유연하다. 물을 가득 머금은 찰흙처럼 서로가 누르는 압력에 맞춰 모양을 달리하며 둘 사이의 간격은 수시로 변한다. 시간이 흘러 서로에게 익숙해지면 간격은 좁아진 채로, 모양은 일정한 형태로 단단해진다. 여기서부터가 위험하다. 단단해지다 못해 메말라버리면 작은 충돌에도 쉽게 깨져버린다. 메마르지 않도록 수시로 물을 뿌려줘야 한다. 모양을 바꿀 수 있을 정도까지만 단단해져야 한다. 그래야 오랫동안 누군가에게 깨지지 않는 버팀목이 될 수 있다.


 나의 경우는 사색과 글쓰기, 혼자 하는 여행이 물을 뿌려주는 행위이다. 그 행위들을 마치고 나면 단단해졌던 내가 다시 말랑해지곤 한다. 물을 뿌려주는 행위가 어떤 모습일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또한 물의 적정량도 사람마다 다르다. ‘개별성 ‘,  ‘적당함’ 이건 늘 인생의 난제이다. 편리함을 좇는 세상은 갈수록 표준화되는 길만 제시해서 이 난제를 자꾸만 외면하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는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생기를 잃어가진 않을 작정이다. 개별적으로 적당한 물의 양을 찾아서 많이들 촉촉해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서로가 좀 안전하게 기댈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롱티에서 시작해 마감시간까지 이어진 이 두 손님의 대화가 서로에게 적당한 물기가 되었길 바래본다.


 때론 바를 두어 사이를 넓이고, 때론 롱티 하나로 사이를 좁히는 k와인펍은 그렇게 오늘 하루 운영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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