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원님에겐 여기 스튜디오가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난 분명 바디프로필은 안 찍어도 된다고 했는데... 내가 근력 운동을 하기로 한건 순전히 건강 목적이고 체력을 키우기 위함이었으니 소위 요즘 유행한다는 바디프로필 같은건 관심없었다. 아니 애써 외면했다. 이 나이에 내가 무슨 몸 사진이야. 누가 알까 무섭다. 에이~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랬었었다. 난 분명...
운동이 끝난 후 트레이너가 핸드폰 화면을 슬쩍 보여주며 건넨 한마디에 그래도 성의는 보여야지 하는 생각에 대답했다. "저한테 어울리는 바디프로필 스튜디오요? 거기가 어딘데요?" 하며 스튜디오 이름만 살짝 물어봤다. 헬스장을 다니며 일주일에 2번 PT를 받기 시작한지 6개월이 막 넘어서는 시점이었다.
트레이너에게 정확한 자세를 배우며 운동하니 평생 못보던 내 몸 속 등 근육이 보이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이런 나의 변화된 모습은 평생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건 기록해둬야해' 하는 심정으로 인스타를 막 시작한 시점이었다. 인스타 검색란으로 들어가 트레이너가 말한 바디프로필 스튜디오 이름을 검색해봤다.
근데 이게 웬일.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달랐다. 여기는 달랐다. 그동안 봐오던 바디프로필 스튜디오랑 결이 달랐다. 야하게만 보이던 몸 사진이 아니었다. 예뻤다. 게다가 상큼했다. 인스타 화면 속 사진 색 조합이 세련되고 멋졌다. 눈이 휘둥그레 커지며 한참을 들여다봤다.
그날 이후 난 시간이 날 때마다 바디프로필 사진을 쳐다보았다. 화장실에 앉으면 사진 속 사람들의 의상과 자세를 나도 모르게 주의깊게 보고 있었다. 쳐다보며 나를 대입해 상상도 했다. 내가 이 옷을 입으면 어떤 느낌일까? 하면서...
트레이너가 한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도 나랑 어울리는 스튜디오 같았다. 이 정도 바디프로필 사진이라면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꼭 한번 찍어보고 싶어졌다.
2.
다이어트와는 또 다른 바디프로필 준비
다이어트는 식단이다. 바디프로필 준비도 식단이 중요하다. 바디프로필 준비를 함께 한 이명노 트레이너의 말에 의하면 바디프로필 준비는 데이터 싸움이라고 한다. 매일매일 0.1kg이라도 떨어지는 몸무게를 체크하며 바디프로필 당일까지 줄여나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다이어트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길게 잡고 식단 조절을 할 수도 있고 욕심에 따라 최대한 단기간에 살을 빼서 동기부여를 받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날짜가 정해진 바디프로필은 목적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나에게 바라지 않던 식단까지 바디프로필 날짜가 다가오니 요구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야채 등을 정해진 양대로 먹어달라던지 몸무게가 줄어드는 것을 아침 저녁으로 체크해 달라던지 하는 것들이었다. 다행히 평소 먹는 거에는 크게 스트레스를 안 받는 편이라 정해진 용량대로 먹어야 한다는 미션도 부담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아몬드는 매일 12개~15개씩 먹는다던지 수분 조절을 위해 물 양을 늘렸다 줄인다던지 하는 작업들은 무슨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가 된 것마냥 즐겁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과정에서 음식 하나하나를 내 몸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주의깊게 살펴보는 일은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것 마냥 신비로웠다.
3.
바디프로필 실전 경험 노하우
난 뭐든 관심분야가 생기면 책으로 먼저 공부해야 직성이 풀린다. 바디프로필도 예외는 아니었다. 몸 사진 촬영을 위해 공부를 하다니... 누가 들으면 웃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처음 접하는 몸 사진도 나에겐 연구 대상이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 처음이자 마지막일거라 생각했고 그렇다면 후회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이리저리 검색해보다 <바디프로필 실전 경험 노하우>라는 책을 샀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들은 많았지만 정리된 자료를 보고 싶었다. 집으로 도착한 책은 작고 간단한 내용이었다. 노하우 책이다 보니 선배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들으며 먼저 상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 왜 바디프로필을 찍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 스튜디오 예약부터 실행이다
- 진행과정은 반드시 기록하라
3가지 내용을 참고삼아 내 경험을 풀어보면 이렇다.
-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왜'가 중요하다. 시작에 앞서 난 항상 스스로에게 이유를 물어보려고 한다. 스스로가 설득이 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는 성격이기 때문에 내가 나를 설득해야 한다. 트레이너가 스튜디오를 추천해주지 않았을 때는 찍을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 스튜디오를 알게 된 이후 '여기서 사진 1장 남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겠다'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가 생겼다.
- 나도 예약부터 했다. 날짜를 잡고 거꾸로 D-day를 따져보고 가능하다 싶은 날짜를 정했다. 네이버로 예약하고 돈 입금부터 했다.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는 자동으로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난 다른 일들도 이런 식으로 예약부터 하는 식이다. 해 보고 싶은 취미가 있다면 방문 예약부터 잡아 놓는 식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나에게 실행력이 높다고 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언제 할 지 모르는 내 성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 진행과정 기록. 그렇다. 진행과정을 기록하기에 바디프로필 진행 과정만큼 소중한 기록이 있을까. 그 당시 나는 매일 먹는 식단과 몸무게와 몸의 상태와 마음 감정 상태를 기록하고 정리했다. 인스타를 6만원 주고 배운 시점이라서 즐거운 마음으로 기록해 나갔다. 무슨 인스타를 돈주고 배우냐 하겠지만 난 너무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벌써 4년 전 일이다.
4.
바디프로필은 종착지가 아닌 반환점일뿐
바디프로필 사진을 찍었다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은 "우와아~ 어떻게 바디프로필을 찍었어요? 대단하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바디프로필을 대충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바디프로필 사진 1장은 종착지가 아닌 반환점일 뿐이라는 것을...
4년 동안 근력 운동을 하며 예민하게 몸의 소리를 듣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몰입하고 집중했던 기간은 바디프로필 준비 과정이었다. 그래서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바디프로필 촬영 경험은 몸 공부의 최고봉이었다고. 바디프로필이 조금이라도 궁금한 사람이라면. 바디프로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디프로필 촬영이 무엇인지 의미와 동기와 이유를 길게 고민할 필요없다. 그냥 맘에 드는 사진관을 골라 예약하고 돈 입금부터 하면된다. 그 이후엔 그 다음의 내가 책임져 줄 테니까.
물론 인생을 사진 한장에 걸면 안된다. 김종국 말처럼 인생은 사진 한장이 아니라 끊기지 않는 동영상이기 때문에...
*관련책 - <바디프로필 실전 경험 노하우>, 헬스플랜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