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고질병, 울화

셰익스피어와 성경이 말하는 '참지 않고 다스리는 법'

by 서강

[필사 492일] 있다고 다 보여주지 말고 안다고 다 말하지 마라 /#01


헤세와의 데이트를 끝내고 셰익스피어와의 데이트가 시작됐다.


퇴근길 지하철, 누군가에게 발을 밟혔거나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가슴에 얹혀 내려가지 않을 때가 있다. 억울함과 서러움이 뜨거운 열기가 되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순간, 우리는 보통 억지로 삼키거나 그대로 터뜨려버린다. 하지만 나는 오늘 조금 다른 풍경을 마주했다.


엉킨 이어폰 줄을 풀다 문득 깨달았다. 실이 엉켰을 때 힘껏 잡아당기면 매듭은 더 단단해질 뿐이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셰익스피어는 고통이 심장을 타고 올라올 때 단호하게 외치라고 했다. “슬픔이여 내려가라! 네 자리는 저 아래다.” 이 말은 감정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내 안의 질서를 바로잡으라는 엄중한 명령이다.


우리 어머니들의 시대에는 이 '명령'이 허락되지 않았다. 한국인에게만 있다는 '울화(鬱火)'는 사실 약이 없는 병이 아니라, 감정의 제자리를 찾아주지 못하고 그저 짓눌러온 세월의 퇴적물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모든 것을 다스리라”라고 했다. 내 마음속 감정 또한 내가 마땅히 다스려야 할 대상인데, 어머니들은 다스림 대신 인내를 선택해야만 했다.


슬픔은 슬픔의 자리에, 분노는 분노의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 그것들이 감히 사랑의 근원인 ‘심장’을 점령하게 내버려 두어선 안 된다. 다스린다는 것은 참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위치를 지정해 주는 권능이다.


지금 당신의 마음을 괴롭히는 그 뜨거운 덩어리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선포해 보자. “너의 자리는 거기가 아니야. 나는 너에게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라, 너를 다스리는 주인이야.” 감정이 발밑으로 제자리를 찾을 때, 비로소 당신이라는 존재는 다시 온전해진다.


오늘 밤, 잠들기 전 가슴 위에 손을 얹고 조용히 읊조려보자. 나를 흔들었던 모든 것들을 내려보내고 내면의 통치권을 회복하는 연습. 그 작은 다스림 하나가 당신을 구원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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