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은 흉내이고, 창조는 정신이다
셰익스피어는 수백 년 전에 이미 경고했다.
"머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고, 바보처럼 타인의 흉내만 내는 멍청한 이들."
이 문장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어쩌면 지금 우리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유행은 언제나 반복된다. 두쫀쿠가 거리를 점령했을 때, 그 성공의 냄새를 맡은 수많은 이들이 뒤를 따랐다. 버터떡이 그랬다. 그러나 두쫀쿠만큼의 열풍은 오지 않았다. 왜일까?
두쫀쿠는 없던 감각을 만들어냈고, 버터떡은 있던 성공을 복사했기 때문이다.
모방은 결과물을 훔친다. 창조는 정신을 훔쳐서 완전히 자기 것으로 녹여낸다. 이 둘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본질에서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공방 입구에 멈춰 선 순간
솔직히 걱정이 앞섰다.
조카가 조향사 자격증을 따고 향수 공방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 한편에는 우려가 있었다. 향수 공방은 이미 너무 흔한 아이템이 된 지 오래였으니까.
그런데 공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 걱정은 나의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인테리어부터 달랐다. 흔히 상상하는 아기자기한 공방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고품격 브랜드의 쇼룸처럼 절제되고 정제된 공간이었다. 고객을 '체험자'가 아니라 '귀한 손님'으로 대접하는 느낌이 공간 전체에 스며 있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조카에게 물었다.
"왜 공방을 열었어?"
돌아온 대답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고모야, 공방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야. 고객들이 어떤 향을 선호하는지 알기 위한 현장 설문조사를 위한 곳이야. 최종 목표는 내 브랜드로 향수를 출시하는 거야."
공방은 수단이었다. 브랜드가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과정이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경영학과 출신도 아닌, 산업디자인학과를 나온 어린 조카에게서 나는 CEO의 기질을 발견했다.
*'세 살 먹은 손자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말이 그 순간처럼 생생하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창조의 순간, 동물적 직감이 말한다
모방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저것처럼 보일까'를 고민한다.
창조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완전한 내 것이 될까'를 고민한다.
조카의 공방에서 나는 그 결정적인 차이를 목격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떤 분석도 필요 없이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아이는 잘 될 수밖에 없다.
성공의 냄새는 전략 슬라이드에서 나지 않는다. 자기만의 언어로 세계를 재구성하는 사람에게서 난다.
필사를 통해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손으로 옮겨 쓰다 보면, 이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나는 지금 누구의 흉내를 내고 있는가?
나만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모방이 나쁜 것이 아니다. 모방에서 멈추는 것이 문제다. 훔쳐라. 단, 완전히 훔쳐서 당신의 피와 살로 만들어라. 그것이 인문학이 수천 년 동안 반복해서 말해온 창조의 본질이다.
타인의 성공을 따라가는 대신, 오늘 하루 이 한 가지만 사색해 보자.
"나는 무엇을 보며, 그것을 어떻게 온전한 나의 것으로 만들 것인가"
그 질문 하나가, 모방과 창조를 가르는 분기점이 된다.
� 필사로 내면 다지기 — 오늘도 함께 써 내려갑니다.
https://open.kakao.com/o/gWx0m5W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