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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사

by 서강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을 살면서, 마치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산다. 내일이 당연히 올 거라는 믿음,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달콤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언어에 감정의 조미료를 적절하게 사용해야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듯,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감정을 아끼고, 말을 삼키고, 표현을 미룬다. 마치 그 기회가 늘 우리 곁에 있을 것처럼.


서울에서 건축설계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지인을 만났다. 부산 아난티에서 건축사들 모임을 마치고 일부러 나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냈다. 독서모임 뒤풀이 후 사무실에서 만나 점심을 함께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테이블 위에 그림자를 만들고,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다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최근 제 지인의 남편이 갑작스럽게 폐암 선고를 받고 한 달도 채 안 되어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놀랐는지 몰라요."

마치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듯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바람 한 점 없던 호수에 돌을 던진 것처럼, 그의 말은 내 의식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사고와 질병은 나를 비켜갈 거라는 착각 속에 빠져 사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내일을 미루고, 표현을 아끼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과연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 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같은 생각을 했다. "표현을 하면서 살자"라고 말하며 서로 껴안았다. 따뜻한 체온을 통해 생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다.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이해한 것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삶도 그러하다. 우리는 모두 '죽음'이라는 단어를 알지만, 그것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강연회에서 들은 삶의 지혜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막상 그것을 내 삶에 녹여내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내가 정말 아는 것이 무엇인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사색하게 된다.


매일 담던 아침 풍경 대신 오랜만에 야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도시의 불빛들이 마치 별처럼 반짝이는 모습은 낮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빛의 움직임, 도시의 숨결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인데, 얼마나 나를 위해 살고 있는지. 줏대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내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소신을 밝힐 수 있는 그런 삶은 결국 '지금'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종종 일상의 분주함에 매몰되어 삶의 본질을 잊곤 한다. 마치 빠르게 흐르는 강물에 휩쓸려 주변을 둘러볼 겨를도 없이 떠내려가듯이. 하지만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서 모든 것은 선명해진다. 모래시계의 마지막 모래알이 떨어지기 전,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며 살아가는 것.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동안 감정의 조미료를 아끼지 않고, 표현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삶의 속도를 찾는 방법이 아닐까.


한 치 앞을 모르기에 더욱 소중한 이 순간, 내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것이다. 마치 별이 빛나는 야경처럼, 나만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면서.


KakaoTalk_20250419_194257355_01.jpg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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