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 보이는 게 다르다

by 서강



같은 길, 다른 사람


같은 길을 걸었다. 여섯 번이나. 그런데 한 번도 같지 않았다. 나는 같은 식당에 세 번 이상 가지 않는다. 새로운 걸 좋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순천 국가정원은 여섯 번을 갔다. 그곳엔 식상함 대신, 계절이 있었고,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첫 번째는 남자친구와.
초여름이었다. 햇빛은 무겁게 내려앉고, 그늘은 짧았다. 그는 나무 곁에 오래 머물렀다.
“저건 메타세쿼이아야.”
나는 꽃이 아니라 그의 옆모습을 봤다. 그가 나무를 부를 때, 나는 그를 불렀다.


두 번째는 친구 부부들과.
초봄, 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바람은 가벼웠지만 말은 무거웠다.
결혼식 다음날, 우리는 익숙한 이야기로 웃었다. 아이들, 직장, 나이.
친구 남편들이 던지는 농담에 시간도 발걸음을 늦췄다.


세 번째는 여자친구와.
그녀는 처음 왔고, 나는 세 번째였다.
꽃은 시들고 하늘은 낮았다.
그녀는 나무 앞에서 웃고, 연못 앞에서 뛰었다.
꽃보다 그녀가 더 생기 있었다.


네 번째는 딸들과.
한여름, 볕은 살갗을 찔렀다.
“엄마, 다시는 여름엔 오지 말자.”
나는 꽃을 놓쳤다. 대신 딸들의 등을 봤다. 땀에 젖은 목덜미, 소리 없는 불평.
꽃은 멀고, 그늘은 가까웠다.


다섯 번째는 여고 동창들과.
늦봄, 꽃은 가득 피었고, 우리는 그보다 서로를 오래 들여다봤다.
한 친구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간 자리였다.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녀들이 웃는 모습, 그것이 정원이 되었다. 꽃은 배경이었고, 우리는 중심이었다.


여섯 번째는 독서모임 멤버들과.
초여름이었다. 책을 곁에 두는 사람들답게, 사물과 대화를 나눈다.
“이 꽃 이름은 뭘까?”
“이 나무는 수백 년 살았대.”
감성이 폭발한다.


나는 같은 길을 걸었지만, 같이 걷는 사람이 다르면 풍경도 다르게 보였다.
계절이 달랐고, 날씨가 달랐고, 사람도 달랐다.
그러니 나도 매번 달랐다.

꽃을 본 줄 알았지만, 사람을 본 거였다.
남자친구의 고요함을, 친구들의 익숙함을, 여자친구의 들뜸을, 딸들의 짜증을, 동창들의 그리움을, 독서모임의 감수성을. 결국 여행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다.

같은 길도 누구와 걷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기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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