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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글 Jan 05. 2024

새해부터 실망의 연속이다

새해의 시작이 좋지 않다. 드론쇼를 보러 비싼 돈을 잡고 광안리 해수욕장이 보이는 숙소를 잡았다. 통신장애를 이유로 드론쇼는 취소되었고 나는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이럴 거면 왜 비싼 돈을 주고 숙소를 잡았는지, 누군가에게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는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광안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최초에 30분 지연 공지를 하였지만 결국 최종 취소를 통보했을 때에는 원망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몇 년 만에 제대로 된 카운트다운도 없이 새해를 맞게 되었다.


새해 첫 일출도 예상과 빗나갔다. 구름과 건물에 가려 해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새벽부터 일어나 기다렸지만 허탕을 치게 되었다. 드론쇼도, 일출도 모든 것이 실망스러웠다. 새해부터 실망의 연속이라는, 실망만 가득하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두 문장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망은 연속적이지 않았다. 카운트다운을 놓치게 되었지만 우리는 가까스로 구한 연말 케이크에 촛불을 불며 새해를 맞을 수 있었다. 케이크는 달콤하였고 새해가 되는 순간에는 소중한 사람이 함께 있었다.


일출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새해 첫날에만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의 설레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내려다 보이는 해수욕장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 해가 떠오르는 것을 기다리는 모습은 참 아름답고 소중했다.


실망은 가득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망은 단순히 두 순간에만 점처럼 찍혀있었다. 드론쇼를 보기 위해, 일출을 보기 위해 잡은 숙소와 3박 4일의 부산 여행 일정에서는 더욱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잠깐 실망스러웠던 기억으로 행복한 기억들을 덮으려 했다. 새해부터 시작이 좋지 않다는 생각, 이번 여행은 완전히 망쳐버렸다는 생각 역시 내가 만들고 있었다. 이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오히려 드론쇼가 취소되고 일출을 보지 못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힘든 일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더 실망스럽고, 힘들고, 다 포기하고 싶은 기분이 나를 덮쳐올 것이다. 망쳐버린 것만 같고, 누군가를 탓하고 원망하게 되고, 분노에 가득 차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마다 올해의 시작이 기억날 것이다. 사실은 모든 순간이 아름답고 행복했음을. 잠깐의 실망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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