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평소 동경하던 기업에 입사 지원서를 냈고, 면접 제안을 받았다. 처음으로 사옥에 발을 들였을 때 펼쳐진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1층 한가운데에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누워 있는 대형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삼삼오오 모여 자유롭게 일하는 직원들과 사내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개성 넘치는 직원들이 보였다.
추리닝, 반바지, 슬리퍼 등 규제가 느껴지지 않는 자유로운 복장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길고 꾸덕한 레게머리, 시원하게 밀어버린 민머리, 자로 잰 듯 반듯한 칼단발, 눈부시게 탈색한 머리, 심지어 강아지를 품에 안은 사람까지 있었다. 자유로운 업무 환경 속에서 자기 개성을 마음껏 표현하는 그 모습이 왠지 더 세련되고 멋있어 보였다. 그들 사이에서 쭈뼛거리며 면접관을 기다리던 나는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긴장한 탓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준비되지 않은 제 자신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결국 면접은 기대 이하로 끝났고, 그날 저녁 바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날의 경험은 오히려 입사에 대한 열망을 더 크게 키웠다. 아는 형님께 자문을 구하니 “관련 경력이 없는 네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열정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말을 가슴에 새기고 심기일전하여 지원서를 다시 작성했고, 다시 주어진 면접 기회에서는 직접 조사한 브랜드 리포트를 제출했다. 그렇게 이 직장의 구성원이 된 지 어느덧 1년. 처음 이 브랜드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훗날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한 훌륭한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 동안 업무를 하며 많은 것을 배웠고, 무엇보다 좋은 리더들과 동료들을 만난 것이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깊은 통찰을 얻게 되었고, 낯을 가린다고 생각했던 내가 일로써 사람을 대할 때 의외로 능숙하게 맞이하고 응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점이 스스로도 신기했고, 뿌듯했다.
즐거운 직장 생활을 이어가는 반면 마음 한켠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제법 나이도 찼고, 인생의 목표가 ‘좋은 사람을 만나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인 나로서는, 이제는 이상보다는 현실을 바라봐야 할 시점임을. 언제까지 남의 일을 대신하며 정해진 월급만 받고 다닐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안색이 한층 밝아진 그의 근황을 들었다. 그는 영업직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근무 시간은 직장인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짧으면서, 현재 나의 월급의 네 다섯 배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업무 내용을 들어보니, 지난 1년간 다져온 나의 강점이 잘 발휘될 수 있는 분야였다. 세부적인 업무는 우선은 차치하더라도, 열정을 갖고 노력한다면 빠른 시일 안에 꿈에 그리던 수입을 손에 넣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
OECD 국가 중 행복의 기준을 ‘돈’으로 가장 많이 꼽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그런 사실에 반감이 있어서인지, 나는 줄곧 신념의 중심에 돈이 자리 잡게 하고 싶지 않았다. 속물로 보이기 싫었고, 기계처럼 단순히 돈만 좇는 삶이 멋지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이상과 낭만을 좇다 보니, 20대를 지나 30대가 된 지금까지도 월급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빈약한 재산이 마음까지 메마르게 만드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현실도 마주해야 할 때다. 사실 지금도 업무 시간에는 나의 이상에 가까워지는 행동을 거의 하지 못한다. 낮에는 직장인으로, 퇴근 후에는 이상을 추구하는 또 다른 나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굳이 평범한 월급을 받으며,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이상만 좇을 필요가 있을까? 이제는 그 의견엔 반대한다.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 구조를 먼저 만들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또 다른 자아를 키워나간다면 더 맑고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노력만 한다면, 지금처럼 두 가지 모두를 추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자신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후 나는 친구와 몇 차례 더 대화를 나눴고, 그가 함께 일하는 대표를 찾아가 현재 나의 상황을 전했다. 그렇게 입사 날짜를 조율했고, 간절히 원했던 직장에 입사 후 1년 만에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지금의 감정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건강한 두려움과, 아쉽지만 좋은 인연을 만난 것에서 오는 깊은 만족감이 공존한다. 실행력에 비해 꾸준함이 부족한 나는 결심한 일을 실행하기 전에, 스스로를 ‘실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두는 방식을 터득했다. 현재 재직 중인 직장은 이 방식을 잘 실천하는 곳이었다. 주기적인 교육과 로테이션이라는 환경을 조성하여 팀원들을 일부러 안정적인 틀 밖으로 내보내 사고를 멈추지 않게 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생각하며 발전을 도모하는 이 작은 사회가 나는 좋았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건 팀원들과 나누는 대화 주제였다. 우리는 늘 서로가 지향하는 생각과 미래를 탐구했다. 그 시간들을 다시 경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짧게도, 길게도 느껴지는 1년이라는 시간이 나에게는 매우 값졌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였기에 시간이 빠르게 흐른 듯하면서도, 뜨거웠던 지난 여름날 치열하게 입사를 준비하고 새로운 팀원을 맞이하며 인도하는 위치에 서기까지의 과정은 길고도 느긋하게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새로운 환경에서,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꿈에 한 발 더 가까워지기 위한 성장을 시작할 차례다. 지난 1년 동안 잘 적응하고 우뚝 섰던 것처럼, 이번에도 나 자신을 믿는다. 퇴사와 동시에 이직하는 10월까지는 아직 두 달 남짓 남았다. 다가올 1년은 작년보다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더욱 나를 성장시킬 선명한 1년을 만들어갈 한 해가 되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