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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착각

토드 로즈

by 서글

예전엔 글을 쓰는 일이 마냥 즐거운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았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한 ‘기쁨’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 되고 싶은 갈망, 그리고 나의 변화가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는 걸. 욕심내기 싫었지만 유튜브를 시작하며 내 생각과 일상을 담아내면 사람들이 나를 주목해 줄 거라 기대했다. 그 속엔 "나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솔직한 욕심도 있었고, 동시에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결국 내가 바라는 건, 누군가 내 글이나 영상을 보고 작은 위로라도 받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내 성장이 누군가의 시작이 되길 바라는, 조용하지만 강한 욕망. 하지만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벌써 이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한 길일까?”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월세 내기 바쁜 삶 속에서, '명예'를 좇는 나는 점점 불행해지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꿈이 나를 이끄는 줄 알았는데, 실은 그 꿈이 나를 끌고 다니고 있었던 것 같다. 꾸준히 만든 결과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팍팍했고, 나를 증명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나를 깎아먹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들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임을 알려주며 복잡한 마음을 가다듬게 해 준 책을 만났다.




여러분은 아래 보기 중 무엇을 성공적인 인생의 정답이라 택할 것인가?

A. 본인의 관심과 재능에 따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고의 성취를 이룰 때 성공적인 삶을 산 것이다.
B. 부자가 되고 사회적으로 높은 커리어를 쌓거나 유명인사가 될 때 성공한 것이다.


당신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을 답이라 택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만약 여러분이 스스로는 A를 답이라 생각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B를 택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집단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 질문은 미국인들이 성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2019년, 토드로즈가 운영하는 싱크탱크'포퓰레이스'에서 실행한 연구이다.


응답자 중 97퍼센트는 A가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92퍼센트는 대다수가 B를 답으로 택할 것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해당 연구는 성공의 요소로 총 76개의 선택지를 제시했고, 응답자들은 그중 '유명해지는 것'을 가장 중요한 성공의 요건으로 보았다. 하지만 본인이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명성의 순위는 거의 끝으로 굴러 떨어졌다.


이 경우는 미국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나도 A라고 답했고, 주변 지인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을 때 그들 역시 A라고 답했다.『집단착각』에서 토드 로즈는, 우리가 믿고 따르는 많은 ‘집단의 생각’이 실제로는 대부분 허상이며 착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를 ‘집단착각(Collective Illusion)’이라 명명하며, 사람들이 타인의 생각을 오해하고, 그 오해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집단 전체가 왜곡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말한다. 책에서는 실험과 통계자료를 통해, 실제로는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의견이 마치 ‘공통된 가치’인 것처럼 인식되는 현상을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예컨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심으로는 경쟁보다 협력을 더 중시함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경쟁 위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서로가 서로를 잘못 읽고, 그에 따라 자신을 억누르는 과정에서 생긴 집단적 왜곡이다. 로즈는 이러한 착각이 교육, 직장, 정치 등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억압하며, 우리 사회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본다. 책 내용 중 흥미로운 구절이 있었다. 인터넷의 등장 이후,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개인화된 사회가 초래한 문제를 지적한다.


오늘날 인터넷 사용자들은 매일 250경 바이트의 데이터를 생산해 낸다. 250 경이란 전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개미의 숫자보다 100배나 많은 수다. 우리가 여가 시간에 흡수하는 정보만 해도 매일 34기가바이트, 혹은 10만 단어에 이른다. 2011년, 미국인들이 소비한 정보는 1986년에 비해 다섯 배나 많았는데, 이는 매일 174부의 신문을 읽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저자는 우리가 원하는 정보만 보도록 설계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며, 이로 인해 정보의 왜곡과 가짜 뉴스가 더욱 강력하게 확산된다고 말한다. 각자에게 최적화된 정보가 '진실'처럼 포장되면서,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사라지고, 사회 전체가 심각한 오해와 분열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주장에 깊이 공감했다.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던 어느 날, 나를 맡은 담당자가 가장 먼저 알려준 것은 필수 어플 설치 목록이었다. 그 순간 문득, "이젠 스마트폰 없이는 일조차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도파민 중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기에, 스마트폰을 당연히 여기는 이 환경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편리함을 위해 만든 기술이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한 현실, 그 불편한 진실을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는 침묵, 나는 이 모든 것이 집단 착각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느꼈다.


이처럼 『집단착각』은 우리가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믿음과 관행들이, 실은 협력을 가장한 착각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안에서 진짜 목소리는 지워지고, 다수에 묻어가는 방식으로 생각이 왜곡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비판은 분명 날카롭고, 지금의 사회를 성찰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집단착각’이라는 현상이 항상 해롭기만 한 걸까? 집단착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모두가 같은 믿음을 공유한다고 '착각'하는 일이 항상 위험하기만 한지에 대해, 나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도 바라보고 싶었다. 반드시 현실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공통된 전제 위에서 사회가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집단착각’은 사회적 윤활유처럼 기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외국 유튜버들이 한국의 치안 문화에 대해 놀라움을 표하는 영상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북적이는 카페에서 휴대폰이나 가방으로 자리를 맡아두고 자리를 비우는 일이 흔하고, 택배를 집 문 앞에 몇 시간씩 방치하는 일도 자연스럽다. 심지어 야심한 밤에도 무인 상점이 무사히 운영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러한 일상이 가능해지는 이유는 ‘절도는 나쁜 행위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하지 않는다’는 공통된 믿음, 혹은 사회적 규범에 대한 무언의 신뢰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든 사람이 그 믿음을 진심으로 공유하지 않더라도, 공통된 전제가 존재한다는 '착각'이 사람들 사이의 협력과 평화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이슈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는 ‘침묵하는 다수’ 역시 존재한다. 그런 경우, 우리가 쉽게 ‘그 믿음은 허상’이라 단정 짓는 건 오히려 실제 민심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때로는 우리가 ‘집단착각’이라고 여기는 현상이, 사실은 표현되지 않았을 뿐인 다수의 진심일 수도 있다. 이 말에 나는 일정 부분 깊이 공감한다. 실제로 사회는 때때로 공동의 착각 위에서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도 하고, 그 믿음이 어떤 방식으로든 선한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덮고 나서, 나는 그보다 더 깊은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겐 편리하고 익숙한 이 ‘공통의 믿음’이, 다른 누군가에겐 불합리와 고통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나는 정말로 그것을 모르지 않았던 건 아닐까? 혹시 나도, 안정을 명분으로 그런 믿음을 방조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나는 단지 편안함 속에 머무르고 싶어서, 스스로를 속이며 ‘아무 문제없다’는 쪽에 동조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집단착각』을 읽고 나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다수가 말하니 옳겠지’라는 막연한 신뢰를 거두고, 집단의 흐름을 멀리서 관찰하는 시선을 갖게 된 것이다. 특히, 침묵은 반드시 중립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그 침묵이 때로는 부당함을 지속시키는 연료가 될 수도 있다는 통찰은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는 더 이상 눈치만 보며 묵인하는 일원이 되기를 거부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거창한 반대를 외치는 사람이 되겠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어느 흐름이 집단을 지탱하고, 어느 흐름이 집단을 무너뜨리는지를 분별할 수 있는 눈, 그리고 무엇보다 그 상황을 직시하고 조용히 침묵을 깨는 용기 있는 태도를 가지려 한다.


모든 사람은 인류의 적법한 존엄성, 도덕적 완결성, 스스로의 자유로운 표현, 눈에 보이는 세계를 넘어서는 초월성에 대한 자각 등을 어느 정도 품고 있다. 그런데 동시에 모든 사람은 크든 작든 거짓 속에 살아가는 시기를 겪게 마련이다. 모든 사람은 본인의 내적인 인간성이 더럽혀지고 사소해지는 일을 겪게 되며, 전체주의에 의해 굴욕을 당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익명의 군중 속에 녹아들어 삶의 흉내를 내는 가짜 삶의 강물을 따라 편안하게 흘러내리고픈 약간의 욕망이 존재하는 것이다.
-바츨라프 하멜-


『집단착각』을 덮고 난 지금, 나는 더 이상 ‘나만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에 휘둘리지 않는다. 다수의 침묵이 항상 옳은 것도, 내가 느끼는 이질감이 반드시 틀린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집단의 흐름에 무작정 편승하기보다, 조금 멀리서 그 흐름을 바라보며 내 자리를 찾으려 한다. 글쓰기와 유튜브를 하며 사람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했던 나,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은 바람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던 시간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그 모든 욕망과 갈망, 그리고 혼란조차도 ‘나답게 살아가려는 시도’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집단착각』은 나에게 타인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게 했을 뿐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만든 책이었다. 침묵은 반드시 선도 악도 아니며, 그저 책임의 부재일 수도 있다는 걸, 그 침묵을 깨는 데 필요한 건 거창한 용기가 아니라 작은 정직이라는 걸 배우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의 나는, 조금 더 ‘무난하게’ 살기 위해 조용히 입을 다물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나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순간엔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그 변화의 시작은 이미 내 안에서 조용히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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