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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경 Jan 20. 2021

오늘날 우리들의 ‘공정하고 정의로운’ 의자놀이 이야기

《능력주의》,《능력주의와 불평등》을 읽고

사회주의자들은 자녀가 엘리트 코스를 밟음에 따라 기성 교육 제도와 사회 질서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게 된다. 중등 교육을 평준화하기 위해 도입한 ‘종합 학교’는 시험과 등급에 대한 집착을 끝내 버리지 못해 또 하나의 엘리트 코스로 전락한다.     

 능력(지능+노력)을 수치화해 열등한 사람은 육체 노동자가 되고, 우월한 사람은 전문가, 지도자가 된다. 그에 따라 무지막지한 임금 차이도 인정된다. 뛰어난 사람들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모자란 사람들이 대신 살림을 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여겨진다.      


이 익숙한 듯 섬짓한 풍경은 1958년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소설 《능력주의》에서 예고한 2034년의 모습이다. 그는 가상의 화자를 내세워 짐짓 과장되고 원색적인 표현으로 능력주의 가치관을 옹호하며 능력주의 원리를 따르는 사회가 얼마나 끔찍하게 변화할지 역설했다. 그의 예언은 노동 운동의 몰락으로까지 이어진다. 노동 현장에는 능력이 모자란 사람들만 남았다고 여겨져, 대학에서 노동을 실습한 엘리트가 노동조합에 간부로 고용된다. 노동자들이 받을 수 있는 임금의 범위가 법으로 정해져 있기에 간부들은 기업 대신 정부와 물가 인상률을 두고 협상한다. 


《능력주의》. 마이클 영 씀, 유강은 옮김. 이매진.  생경한 필치 때문에 읽는 데 12일이 걸렸다.


황당하게도 이 책은 출간 이후 50여 년간 ‘현대 세계의 으뜸가는 조직화 원리를 냉철하고 예리하게 예언한 책’으로 오독되었다고 한다. 2001년, 83세의 그는 〈능력주의를 타도하자〉라는 글을 일간지에 기고했다. 책 본문 속 어수선한 문장들과 달리 아무 은유도 도치도 없는 단순한 문장으로부터, 한 시대의 오독 속에 애가 탔을 마음이 느껴진다. 


2021년, 우리 사회의 여러 단면이 이 소설 속 디스토피아와 겹쳐 보인다. 마이클 영도 한국의 살인적인 입시 경쟁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스스로 정거장(플랫폼)에 서서 기업에 수수료를 내고 건건의 일을 받는 기묘한 노동 방식도, 감히 예견하지 못했을 거다. 그러나 관통하는 하나의 원리가 있다. 1%에 들지 못한 사람들이 순순히 차별과 박탈을 공정하다고 받아들이고, 때로는 그것을 논리 삼아 ‘의자 놀이’에 가담한다는 것이다. 《능력주의와 불평등》에서 공현은 이 모순된 사고방식을 이렇게 요약한다. “존엄과 권리를 주장하고자 한다면, 너의 자격과 능력을 증명하라. 되도록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험으로.(28쪽)”     


《능력주의와 불평등》. 박권일 외. 교육공동체벗. 한국 상황을 바탕으로 해서 쉽게 잘 읽힌다.


어디에서부터 일이 그르쳐졌을까? 《능력주의와 불평등》은 “능력주의가 평등의 자리를 대체(19쪽)”했으며 시민운동도 능력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한다. 채효정은 학벌주의가 능력주의로 대체되는 세태를 조망하지 못하고 학벌은 끝났다고 섣불리 선언했던 반(反)학벌 운동을 냉정히 평가한다. 이유림은 즐거움을 위한 문화 소비나 외모 가꾸기 대신 재테크나 자기 계발 정보를 공유하고 주식 투자 등을 권하며 ‘신자유주의적인 자기 통치의 기술을 재생산(205쪽)’하는 페미니스트 개인들의 실천 흐름을 비판한다.      


마이클 영이 그린 교육 평준화 시도가 또 하나의 엘리트 코스 만들기로 전락해 버리는 과정은 우리 사회에서 입시 제도 개혁과 학교 혁신이 수월성 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맴도는 상황과 얼마나 다른가. 평등을 주장하며 힘을 얻은 사람들이 엘리트 교육 체제와 이해관계를 같이 한다면 대중은 어떻게 그들을 견제할 수 있나? 우리 운동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앞장설 수 있는 높이에서 이뤄지고 있나? “능력을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 말고, 교육 기관이나 기업, 사회가 능력과 역량을 성장시키고 발휘하도록 지원하는 데 방점(32쪽)”을 두자는 말을, 당장 경쟁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건네야 하나.     


그럼 대안이 뭐냐는 날선 질문도 떠오른다. 김도현은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에서 장애인이 노동할 수 없는 사람으로 취급된 원리를 설명했다. 농경 사회에서 비장애인이 사과 10개를 딸 동안 5개를 따서 먹고살던 장애인은, 산업화 이후 노동 시간에 따른 임금제가 정착되면서 일하지 못하게 된다. 이제 장애인의 취업문과 임금 수준이 비장애인에 비해 턱없이 좁고 낮은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것이 차별이라는 걸 합의하는 데 오랜 노력이 필요했고, 여전히 차별은 남아 있다.      


청소년도 작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그만큼 구실을 인정받던 농경 사회 생활과 달리, 오늘날 대다수가 가사 노동을 비롯한 신체 활동으로부터 유리되어 대신 과도하게 주어지는 학습량 아래 보다 오랜 시간, 많은 비용을 부모에게 의존하며 그만큼 종속된다. 좋은 인재의 의자는 점점 줄고, 갖춰야 할 소양의 가짓수는 늘어난다.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은 팬덤 활동이나 게임, 투기 등에 몰입하면서 아예 사회적 생산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경쟁의 폐해보다는 개인 혹은 특정 세대의 도덕적 해이로 여겨지곤 한다.      


이렇게 가랑비에 옷 젖듯 쓸모 있는 사람의 기준이 슬슬 높아지고, 노동하는 손이 왜 쓸모 있는지에 대한 확신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대안을 생각하기 어렵게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두 책은 경각심과 함께 후련함을 남겼다. 남겨진 질문 앞에 답이 궁색해서 불안하고, 한국 사회를 수년간 뒤흔들고 있는 공정성 논란 앞에 혼란스러웠던 생각을 능력주의라는 표제어 아래 정돈하게 되어 후련하다. 어떤 선조들에게는 당연했을, 함께 먹고사는 것에 대한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서, 아마 꽤 오랫동안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능력주의》. 마이클 영 씀, 유강은 옮김. 이매진.

읽은 날짜 : 2021년 1월 5일~16일

한 줄 평 : 60년 전 40대 영국 좌파에게 - 아마 서툴었을 글쓰기 실력을 포함해서 - 친밀감과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책.

책 속의 한 문장 : 무릇 현명한 통치자는 야당을 물리치는 최선의 방법이 야당 지도자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라는 사실을 안다. (83쪽)


《능력주의와 불평등》. 박권일 외 씀. 교육공동체 벗.

읽은 날짜 : 사실 교정교열에 참여했음. 이 책의 판매고와 이해관계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겠음. 한 마디만 더 하자면, 이 책은 《공정하다는 착각》보다 먼저 출간되었음. 유행에 편승한 책이라는 평에 대해 편집부는 분개함.

한 줄 평 : 시민운동 활동가, 사회 비평가 등이 주축이 되어 현상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고 깊이 천착하지 않은 것이 장점이자 단점, 후속 기획이 기대된다.

책 속의 한 문장 : 보수 엘리트를 진보 엘리트로 대체하는 상층부의 권력 교체에 그치는 일은 정치에서도 교육에서도 이제 끝나야 한다. (129쪽, 채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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