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너무 빨리 결산해 버린 사람들에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내 유년 시절의 꿈은 만화가였고, 청소년기에는 배우를 꿈꿔 대학교는 관련 학과에 진학했다. 2년이 채 안 되어 학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연기의 꿈을 내려두고 잠시 시선을 돌린 건 한복이었다.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겉핥기에 불과하겠으나 내 나름 꽤 진심으로 파고들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1년 조금 몰두하다가 이건 영 내 길이 아니다 싶어 20대 중반쯤 번역이라는 업으로 진로를 틀었다. 그로부터 8년 정도 자칭 타칭 번역가로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삶은 불안정하다.
건드린 건 많지만 뭐 하나 진득하게 탐구하지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닌 인생을 살아왔구나. 그렇게 자조적으로 삶을 회고하는 일을 습관처럼 반복했다. 30대 초반이 끝나가는 지금껏 정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만족스럽게 자리 잡지 못한 건 은연중 내 안에 콤플렉스로 박혀버렸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30여 년 평생 이룬 것 하나 없는 인생'이라고 한탄하기에는, 미성년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지 이제 고작 14년이다. 14년 전, 나는 스무 살의 성인이 되었다. 유치원을 시작으로 10대 시절 동안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인 분을 해내기를 요구하는 이 사회의 기준에 맞추기에 스물은 너무나도 미성숙하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 자신에게 그 잣대를 적용하지 못하는 성인들이 많은 것 같다.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라는 말까지 나오는 세상인데, 고작 30년 조금 살아놓고 여태껏 이룬 게 아무것도 없다고 불안해하는 건 너무 시건방진 생각이 아닌가. 여느 때처럼 진로 고민에 잠겨있다가 번뜩 그런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오만에 갇혀있었는지 모른다.
나의 어린 시절에 90세 노인의 정정한 모습은 TV 특종으로 다뤄질 정도로 기상천외한 일이었다. 90이란 경이롭다 못해 경외심마저 드는 숫자였다. 그래서 당시의 30~40대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충분히 갖추고 있는 안정적인 삶이 당연한 것이었다. 평균 수명의 3분의 1, 이르면 반을 넘기는 시기에 해당했으니 말이다. 그런 부모 세대를 보고 자란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지금 주변에서 90대 어르신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의학과 과학, IT기술 등 근 10년간 많은 것이 빠르게 발전했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그 속도를 미처 따라잡지 못해 숨이 차도록 달리다가 인생의 반도 채 되지 않은 지점에서 좌절하고 만다.
사회에 발을 디딘 지 고작 10여 년 만에 120세까지 지속 가능한 안정된 삶을 바라는 건 분에 넘치는 욕심이다. 백지상태로 세상에 태어나, 본인을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다고 판단되고 자유 의지를 인정받아 법적 성인으로 분류되는 데도 만 19년이 필요한데 말이다.
지금이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건 때 이른 욕심 때문이다. 인간은 욕심 때문에 불행하다. 미숙함을 인정하고, 자기 연민에 침전하지 않고 차근히 삶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 지금의 내가 오를 계단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