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로빈>

공인인증 싸패 등극 후기

by 채서하

내 주변 지인들이 백이면 백 울고 나왔다는 극.

나는 극을 버석하게 보기로 유명하고...

과연 나도 울릴 것인가? 하는 궁금증에 총막공을 보고 왔다.


그리고 결과는...공인인증 싸패가 됨.

울컥하지도 않음...

미동도 하지 않음...

가족 이야기로 나를 울리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SF적인 요소가 가미되면 나의 심장은 더욱 차게 식는다.

그런 점에서 <로빈>은 나를 울리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우선, 이 극에서 가장 큰 반전 요소는 현재의 로빈이 '진짜' 로빈이 아니고, 이미 한 번 복제된 로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밝혀지는 순간부터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포인트인 것 같았다.(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이 장면 즈음부터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이 반전 요소가 주는 감동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줄거리를 요약해보자면, 방사선 물질로 지구가 뒤덮인 디스토피아에서 6살 루나에게 남은 유일한 보호자인 아빠 로빈이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으로 복제인간 '뉴빈'을 만들어 루나, 레온과 함께 우주 벙커로 보낸다.

그런데 기술력의 부족 탓인지 우주 벙커의 수명이 끝나는 10년 후에 '뉴빈'도 죽게 되어 있다. 그래서 10년이 지난 뒤, 벙커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맞이할 처지에 놓인 '뉴빈'은 딸 루나를 위해(자신이 '진짜' 로빈이라고 생각했기에) 또다시 복제인간 '뉴빈'(두 번째 '뉴빈'이니 나는 '뉴뉴빈'이라고 부르겠다.)을 만들겠다는 선택을 한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서사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중 어디에서 나는 눈물을 흘려야 하지?


애초에 복제인간인 '뉴빈'이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서 슬퍼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뉴뉴빈'이 공백없이 그 자리를 메워줄 것이 확실했고. 실제로 지구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뉴빈'은 '뉴뉴빈'으로 교체되었지만, 루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신나게 지구로 향한다.


그리고 나는 이 과정에서 되려 진실을 알지 못하는 루나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나는 평생을 '뉴빈'과 '뉴뉴빈'이라는 복제인간들이 자신의 진짜 아빠를 대체했다는 것을 모르고 살지 않겠나. 그게 과연 행복한 일일까? 복제인간이 원본을 완벽히 재현할 수 있는가?


특히 루나는 극중에서 아빠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한다. 나는 이것이 단순히 사춘기 소녀와 아버지 간 갈등이라기보다, '뉴빈'이 복제인간이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뉴빈'이 '뉴뉴빈'을 만들면서 제일 고민했던 것이 감정을 갖게 하는 방법이었고, 레온은 그 힌트를 주기 위해 '뉴빈'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전했다.

그리고 그 힌트는 바로 '기억'이었다.

이미 로빈이 '뉴빈'을 만들기 위해 한 차례 고민하면서 자신의 기억을 통해 루나를 사랑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난 이 부분을 복제인간 스스로 감정을 자아낼 수 없기에 기억을 통해 주입시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로빈의 감정들이 아닌, 루나의 감정들을 이해하는 것이 서툴렀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벙커 안에서 생활하며 루나의 불만이 쌓여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루나와 로빈의 갈등 과정도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루나는 아빠한테 빠락빠락 대들지만, 곧장 미안함을 느끼고 사과하려 한다. 여기서부터 이해되지 않는다. 물론 극이라는 것은 한정된 시공간 안에서 표현하다보니 그 표현이 완전할 수는 없지만...그래도 이걸 갈등이라고 표현할 수 있나?


그냥...사춘기 소녀 루나의 감정기복에 맞춰주는 로빈 정도로밖에 안 보였다. 그렇다면 이게 왜 문제가 되는가?하면 큰 갈등이 없다보니 이 인물들이 서로 화해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와닿지 않는다.

이렇게 쉽게 화해하고 화목해질거면 앞선 장면들은 뭐하러 보여준거니? 싶었달까.

물론 이건 내가 너무 자극적인 것들에 익숙해져서 그런걸지도.


하튼 친구들에게 이런 후기를 전했더니

사이코패스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모두 농담이다)

그들이 눈물을 줄줄 흘린 이유를 토대로 이 싸패 이슈를 한줄로 요약해보자면, 나는 짭로빈의 희생과 사랑에 슬퍼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었다.


넌 어차피 짭이고. 대체품이 있고.

너가 희생해서 사라진다고 해도 슬퍼할 사람도, 아쉬워할 사람도 없다. (유일하게 짭로빈을 인지하고 있는 레온도 로봇이니까.)


내가 너무 갇힌 사고를 하고 있나?

그래도 극 자체는 재미있었다. 넘버도 정말 좋았고.

내 앞자리에 어떤 아버지와 루나 또래의 어린 딸이 함께 앉아 계셨는데, 그분들은 어떤 감상이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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