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좁은 것'을 가리키는 나만의 비유가 있습니다.
간장 종지가 그것입니다.
내 마음이 유난히 좁게 느껴질 때
별거 아닌 일에 내 감정이 유난히 예민하게 요동칠 때
나는 이를 일컬어
"속이 간장 종지만 하다"
라고 말하곤 합니다.
나 못지않게 속이 좁은 사람을 만날 때 꽁꽁 숨기고 머리속으로만 가끔 생각하기도 하지만,
주로 나 자신을 자책할 때 흔히 쓰는 나만의 언어입니다.
조금만 들이부어도 넘쳐버리는 간장 종지 같은,
이 마음의 그릇을 온전히 비우지 못해 고이다 썩어버린 마음들이 지금도 그 좁아터진 공간을 잔뜩 차지하고 들어 차 있습니다.
썩고 썩어 악취까지 풍기는 마음들을 굳이 이 공간에 덜어놓자고 결심한 이유, 있습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홀로 속만 끓이고 있을 나와 같은 간장 종지들에게
당신의 감정은 틀린 게 아니라고, 잘못된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굵직하게 보도되는 온갖 뉴스와 미디어 드라마에서는 갖은 극단적인 사연들이 '유난히 착했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멀쩡하게 잘 살 수도 있었을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려 놓곤 합니다.
그런 극단적인 사건들 앞에서 간장 종지의 마음은 거듭 움츠러듭니다.
'내가 겪은 일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저런 일들에 비하면 내가 겪은 것은 새 발의 피만큼도 되지 못하는, 평범하고 사소한 일이구나.'
'쿨하게 넘기지 못하고 상처받은 내가 문제구나.'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마음이 어렵구나.'
'지금도 극복하지 못하는 내가 문제구나.'
그렇게 작은 그릇 안으로 온 힘을 다해 욱여넣고, 누르고 삼키며 버텨보다가
그 하찮은 그릇마저 깨져버리고 나서야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어.. 이게 아닌데..
깨진 그릇이야 빗자루로 툭툭 쓸어 쓰레받기에 담아 신문지로 고이 싸서 버려버리면 그만인데
이 마음의 그릇은 깨져도 버려지지도 않고, 그 조각들이 내 안을 마구 헤집고 돌아다니며 자비 없이 온 가슴을 찢고 썰고 베어내곤 합니다.
몇 갑절의 시간을 들여 접착제든 아교든 온갖 수고를 동원해서 열심히 이어 붙여보지만,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한 조각이 어디선가 불현듯 나타나 다시 내 속을 긁어놓기 일쑤입니다.
근래 유행하던 밈 중에 이런 게 있었다죠?
"사.과.해.요. 나한테!!!!!!!!!!!!!"
아무래도 우리 간장 종지들의 내밀한 마음을 정확히 겨냥한 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나도 사과받고 싶었습니다.
미안했다고.
사과받으면, 훌훌 털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누가 말끝마다 일일이 신경 쓰고 사과하며 사나요. 나조차도 그게 안될 때가 태반인데.
조금만 짚어서 생각해 보면 이것도 웃긴 노릇입니다.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그깟 일'에 옹졸하게 삐져있는 사람으로 사회적인 낙인이 찍힐 것이 자명합니다.
또 한 편으로는 '이 사람에게도 이유가 있겠지.' 하는 애처로운 자비심이 멍든 가슴을 억지로 다독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금 간 종지를 조금이라도 소생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를 골든타임을 깡그리 뭉개버리고 맙니다.
나는 드라마에 나오는 '착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몇 년 동안 억하심정을 품고 때로는 가슴 치며 통곡하기도, 때로는 벽에 머리를 박으며 자해하기도(이건 지금은 안 합니다. 걱정 마시길.), 때로는 온갖 과격한 복수를 상상하며 나란 존재는 말끔히 잊었을 '그 사람들'을 향해 섀도우 저주를 퍼붓...기까지 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지금도 꽁해있는 간장 종지만 한 속을 지닌 한낱 인간입니다.
이 글을 읽을지 모를 모든 이들에게 내 지난 감정을 동정받거나 위로받거나 인정받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위에서 얘기했듯 다 썩어 문드러져 악취까지 풍기는 기억들.
뭐 대단한 게 있다고요.
다만,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일로,
또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말로
좋은 것만 쌓아도 모자랄 그 작은 종지 안에 나쁜 기억들을 켜켜이 쌓아야 했을 모든 간장 종지들에게
'그런 마음이 비단 당신만의 탓이 아니다'라고,
내 이야기를 들어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밥그릇, 국그릇을 넘어- 200리터짜리 장항아리보다 더 큰 그릇을 지닌 분들은
그저 '이런 삶도 있구나'라고 여겨주세요.
'저런 말도 안 되는 걸로도 상처받는 사람이 있구나' 그러고 가볍게 넘겨주세요.
싫은 소리 한마디를 하지 못해서,
그 간단한 "사과해요 나한테." 이 한마디를 끝끝내 하지 못해서,
타인을 치지 못해 스스로를 쳐야만 했던 모든 이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아마 '이런 것에도 상처받았다고??!!!' 도리어 기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그래도 쟤보단 내가 훨씬 낫구나!'라고 여겨주시길 바랍니다! :)